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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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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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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진가


BY ggoltong 2001-12-09

내 나이 열여섯.
너무나 힘들었던 가정형편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뿔뿔히 흩어져 살아야 했다.

오빠는 학교기숙사,나와 동생은 외할머니댁,
엄마와 아빠는 두분이서 나란히 누우면
맞춘듯이 딱맞는 쬐그만 방을 얻어 사셨던 때가 있었다.

생활이 그러해서 일까..
한참 예민한 시기일때 나는 애어른같은 생각과 근심에
늘 사로잡혀있었고 명랑하던 성격이 조금은 숨바꼭질하는
복잡다난한 시절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외할머니댁은 시골중의 시골로
내가 다니던 학교와 무려 한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새벽 다섯시반에 일어나 나와 동생은
꼭지 빠진 냄비뚜껑에 기름둘러 계란 후라이 해주시는
할머니의 정성을 먹으며 부지런한 통학을 했었다.

당시 동생은 초등학생이였고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하차했었는데 동생의 먼저 내리는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차창 바라보며 훌쩍거렸던 적이
셀수없이 많았었다.

그날은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다.
하늘은 온종일 먹구름을 몰아서 곧 장대비가 내릴듯한
좋지 않은 날씨를 하고 있었다.
그런 날은 조금 일찍 끝내주면 시골사는 나같은 사람은
좋으련만 어김없이 아홉시가 넘어서 자율학습이 끝났다.

내가 타는 유일한 막차.
그 차를 탈 무렵이였다.
갑자기 땅을 뚫듯이 떨어지는 소낙비에
몸이 젖은것은 물론이거니와 차안에서 차창밖을 쳐다보는
심정은 너무나 불길하고 초조했었다.
혹여 버스가 할머니 동네까지 안들어가면 어쩌나..
늘 불길한 예감은 잘도 맞추던 나..그날도 그 예감이
적중했으며 나는 시골길 입구에서 몇몇 아주머니들과
차에서 내리게 되었다.

우산도 없이 걸어서 두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데
그 첫발 내딛는데에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과연 저 깜깜한 산속길을 잘 걸어갈수있을까..
혹여 가다가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귀신이라도 나타나면 어디로 내빼지?

바로 눈앞에 주먹을 갖다대도 보이지 않는
천둥번개치던 그날..
아무도 걷지 않는 그리고 아무 불빛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두시간 남짓 걸었었다.

걷는 내내 나는 별의 별 생각을 다했다.
돈이라고는 딸랑 승차권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형편이라
할머니에게 전화도 못하고 또 전화를 할만한 곳도
없어서 우선은 할머니가 걱정하실까봐 그게 가장
염려되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그 빗속을 푹푹 빠지듯이 걸으며
어쩐지 처량한 내 십대가 미치도록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날 자정을 넘어서 할머니 집으로 갈수있었고
다행히 길을 잃는다던가 못볼것을 봤다던가 하는
불행이 없이 할머니의 품에 잘 안길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때를 생각할때가 종종 있다.
원래가 겁쟁이라 소문 자자한 나에게 훈장처럼 가슴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 단하나의 일이 지금은 슬픈 자랑거리가
되어버렸다.

엇그제 마트에 처음으로 야간 장을 보러 갈때
나는 어두운 거리에서 그때를 떠올렸다.
좀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왕년에 그런 경험을 한 내가 이까짓 걸로
무서워한들 말이 될까 싶어
어깨펴고 씩씩하게 마트로 향했었다.

그리고 남편이 야근하는 밤.
겁쟁이 나는 어깨가 움츠려 들다가도
그때를 떠올리며 겁쟁이속의 또다른 나를 끄집어 내린다.
비록 눈물이 날때도 있는 슬픈 기억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담담히 산길에 발을 내딛였던 내 자신이
어느때는 스스로 놀랍기만 하다.

절대로 내 남편은 믿기 어려운듯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