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평소에는 그리 말이 많은것도 아니고 요란한 편도 아닌데......... 뻔뻔하게 무대에 서는것을 좋아했다.
한 두명을 앉혀놓고 쇼를 하는것보다는 몇 백명, 몇 천명 정도 앞에 서는 자리는 아주 뻔뻔하게 떨지도 않고 잘 나갔다. 초등학교때 학교별로 테레비 출연하게 되었을때 말도 더듬는 애가 마이크 잡고 카메라 앞에 섰고, 초등학교 고적대 지휘봉, 소풍가서 쇼하기, 나이 좀 먹어서는 치어리더 등등, 나갈수 있는 무대란 무대는 다 나갔다.
어느 학교 마다 그런 애들이 몇명씩은 있는것 같다.
초등 학교때 친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튀지 못해 안달이 나서 라이벌로 있던 친구가 있었다. 절대로 서로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도리어 좋아하는 사이지만), 춤이면 춤, 공부면 공부, 심지어는 외모 가지고도 경쟁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때도, 요즘은 각광을 받지만 당시에는 별볼일 없던 가수 백댄서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사실은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노래가 영 내 뜻을 따라와주질 못해 백댄서로 방향을 잡았었는데.
실제로 방송국에 시험도 보러 갔는데, 미성연자라고 쫓겨났다.
대학에 다닐때만 하더라도 연극판을 흘깃 흘깃 넘보는 등, 방송국에 백댄서 면접을 보는등..........
근데, 무대가 내게는 인연이 아니였나 보다.
무대의 기회만 생길듯하면 일이 꼬였다.
그리하여, 무대와는 전혀 상관없게 살게 되었는데.
재작년.
참 큰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 끝나는것은 아니지만, 나름되로 나도 좌절이 심했고 주위 사람들 보기에 참 망신스러워서 도망을 간 적이 있다. 저기 멀리 멀리 살고있는 친구집에.
그 친구집에서 하루는 T.V.를 보는데.
앗!
테레비에 나와서 마이크 잡고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여자는 바로!
초등학교때 나의 라이벌이 아닌가!
난 한 눈에 그 아이를 알아볼수가 있었다. 그 아이는 본명을 쓰고 있었다.
아.
그때 내 심정이란.
난 동네 창피해서 귀향을 와 있던 상황이였고, 무대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친구는 유명 연예인이 되어있었고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아이가 진작부터 테레비에 나온걸 다 알고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어쨌든, 난 이제 망신스러워서 도망갈 처지에서 벗어났는데, 그 아이는 여전히 T.V.에도 나오고, 잡지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심지어는 인터넷에서도 뜬다. 아직도 끼가 철철 넘쳐서.
남편에게 그 아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하하 웃는다. 인터넷에 뜬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음, 니가 더 이뻐." 하다. 순 거짓말.
인터넷에서 그 아이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문뜩.
고적대의 하나밖에 없는 지휘봉을 잡겠다고.......... 서로 고적대 아이들에게 떡복기 사주던......... 비리가 생각이 난다.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그때 지휘봉 그 아이에게 양보하고, 난 작은북이나 치고 있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