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사십이 넘도록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이 없다.
남편은 추석과 구정 때만 되면
몇 년 전서부터 촌놈들이 모이잔다고
공식적으로 당당하게 나가는데
난 행여나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거다.
남편은 초등학교 때 6년 내내 전교 1등에
반장을 도맡아 했다면서 늘상 자랑이었는데
내심 그?? 120명 중에 일등이라니 하도 가소로워
'아버지가 그 학교 선생님이라서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겄지~'라며 비아냥거렸지만
나 역시 400여명이 넘는 아이들 가운데에
전교 일, 이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터라
그렇게 옛일로 잘난 체 할 기회가 영 안 오는 거였다.
마침,
내 강의를 듣는 4학년 생 중에
초등학교 동창회장이란 녀석이 편입생으로 들어 와
기회는 요 때다싶어 강의가 끝나고 복도로 불러 냈다.
어이~ 우린 동창회 없어?
조만간 한 번 모여봐.
그리고 한 달여 쯤.
드디어 모였다.
하필 시골에 무슨 쓰레기 하치장 문제가 생겨
청장년 대부분이 군청으로 몰려 가는 바람에
몇 명이 못 나왔댄다.
그러든지 말든지
홍일점으로 참석한 내겐
정말 듣기 좋은 옛 기억들만 맛깔스럽게 되새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동창 모임이 끝나고서
남편에게 상황을 낱낱이 설명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 시절,
꽤 공부를 잘 했던 한 친구가
(솔직히 나의 라이벌이 되진 못했지만)
지금은 꽤나 이름 있는 기관장이 되어
그 자리에 나와 있었다.
유난히 나에 대한 기억만 또렷이 하고 있던 그 친구는
요즘 같으면 왕따였을 나의 옛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주었다.
감히 쳐다 볼 수 없는 존재였고
늘 도도하고 오만한 자태였고
먼 발치에서나마 보고 싶어
철 들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
대여섯이서 십여리 길을 달려 갔던 기억.
이름 한 번 불러 보지도 못한 채
뒷 산 묘 옆에 서서
우리집 마당을 기웃거렸다던 고백.
그리고 칭찬인지 흉인지 모를 기억들...
정말 흡족한 기분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 섰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한 친구와만 같이 오게 되었다.
그런데...
널 정말 좋아했었어.
감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
6학년 말 이사 간 이후의 네 소식들까지
모두 듣고 있었다는 그 고백은
왜 그렇게도 가슴이 아려 왔는지...
아니, 그럼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거야?
이십여년 전 쯤 해 줬더라면
우리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지 모르는데...
(사실 나도 걔가 싫진 않았었기에...)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어?
학교 때도 잘 나갔지만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자네가
내 고백을 그 때 들었더라면 날 받아 주었겠어?
아~
맞아, 난 인간성 드러운 아이였지...
이젠 친구의 아내가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못내 아쉬워하던 그 말에
왜 내 가슴이 저려 오는지...
그래서 난
삼십년만의 그 고백을 듣고
남편에게 절대, 절대로
동창회 경과 보고를 할 수 없었다.
아~ 옛날이여~
난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목숨 걸고 날 쫓아다니던 한 남자와 함께
국립공원 등산로를
사이좋게 거닐고 왔다.
인생은 참으로 오묘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