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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또, 동물보호소 가다


BY 이화 2001-11-23

지난 토요일 점심 때였다.
아이들 데리러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웬 강아지 한마리가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 뒤돌아보니
조막만한 털북숭이가 코를 땅에 박고
연신 킁킁 대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짠하게 가슴에 박혀 뒷일 생각도 못하고
강아지를 덥석 안고 말았다.

안고 보니 보기와는 달리 꽤 묵직한 것이
몸집이 오동통 하였다. 잡종인지
귀와 등, 꼬리털은 베이지 색이고 군데군데
노란 털도 섞여 있는 것이 정체 미상의
종류처럼 보였다.

안된다고 펄펄 뛸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날도 꽤 쌀쌀한데 이왕 내가 안아든 생명체를
도로 내려놓을 수 없어 집으로 데려 왔다.
낯선 손님이 나타나자 우리집 강아지들은
텃세를 하는 듯 마구 짖어대는데 이놈은
그저 눈치만 슬슬 볼 뿐이다.

물과 사료를 주고는 학교로 가
아이들을 데려오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먼저 앞뒷발의 털을 깍고 얼굴도 대충 깍아서
(우리집 강아지들 미용은 내가 직접 한다)
목욕을 시켰다. 집 나온지 얼마나 됐는지
그 지저분함이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여서
샴푸칠만 두번을 하였다.

그런데 목욕을 시키다 보니 이상했다.
허벅지에, 젖꼭지에, 귀에...
예감이 이상하여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면서
자세히 보니 오, 하나님 이럴 수가......

이빨은 치석이 끼고 다 ??어서
입에서는 시궁창 냄새가 나고
귀는 청소를 한번도 안해 주었는지
까맣게 때와 분비물이 끼여 귓속이 퉁퉁 부어 있었다.
여덟개의 젖꼭지 중에서 세개는 발갛게 부어
주변까지 몽우리가 잡히고.

항문도 비정상적으로 늘어져 있는 것이
기생충이 있어 보였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생식기를 들여다 봤을 때였다.
생식기 안에서 발갛게 살덩어리가
밀려나오는데 자궁인 듯 했다.

그렇지
이렇게 병들고 더러워졌으니 버렸겠지
어리고 건강할 때는 이쁘다고 키우다가
늙고 병드니 귀찮아서 살그머니 내다 버렸겠지
이 강아지의 주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퇴근해서 온 남편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의외로 별 난리를 치지 않았다.
키울거냐 어쩔거냐 묻는 남편에게
우선 병원부터 갔다 와서 결정하자고 미루었다.

검사결과는 참담 하였다.
우리집 강아지들에 비해서 너무도 순한 성격이
신기했는데 그 이유는 귓속이 오염되어
아마 귀가 안 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귀검사를 할 때 비로소 낑낑대며 떤다.
왼쪽 귓속은 얼마나 부었는지 내시경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젖꼭지는 예상했던 대로 유방암이었다.
생식기에서 삐져나온 것도 암덩어리-
이것들은 수술도 못한단다.
귀만 치료하는데 두달이 걸리고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먹이고
청소를 해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이빨은 상태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
스케일링하고 뽑아내는데만 이십만원이 넘는
경비가 들고 그나마 여덟살이 넘어 보이는
이 늙은 강아지가 이를 뽑고 난 뒤
사료를 얼마나 섭취할 수 있을지는
의사 선생님도 알 수가 없다 한다.

이미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입장인데
주워온 강아지를 완치 시키려면 거의 백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갈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도 자궁암은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한다.
한부분도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해도
이대로 한 이년은 생존할거라 하지만...

망연자실해 있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씀 하신다.

지금 푸들 임신하지 않았어요?

임신한 거 같아요

그럼 이 병든 강아지랑 같이 키우시면 안되요
말티즈랑 푸들한테 옮길 수도 있구요

네...

그냥 동물 보호소에 넘기시면 어떨까요?

동물 보호소요?

네, 제가 전화번호 알려드릴께요
전화 하시면 다음날 바로 데리러 와요
거기서 치료도 해주고 완치되면 일반 가정에
분양도 해 주거든요

네...

우선 기생충 약을 먹였다.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집에 오니
새삼 땡그라니 크고 까만 눈이 가슴에 박힌다.
얼마나 순한지 더욱 사랑스럽고
애잔한 마음에 정이 더욱 갔다.

주인이라는 사람은 강아지를 키우면서
사료 한번 주지를 않았는지 이놈은 사료를
먹을 줄 모른다. 사람 먹는 음식을 마구 주었으니
이빨이 저렇게 되었을테지.

잡종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말티즈 순종이었다.
괴상하게 보였던 털색깔은 염색이었고
의사 선생님 말로는 털 상태로 보아 버려진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다 하였다.
귀청소 한번 안해주었으면서
망할 놈의 염색은 뭐 하러 했을까?
얼굴도 모르는 주인의 면상을 한대 갈기고 싶었다.

동물 보호소 전화 번호가 적힌 쪽지를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할까...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데
이놈은 내가 가까이만 가면 배를 드러내며
벌렁 드러눕고 벌렁 뒤집어진다.
그렇게 내가 좋은 모양이다.
면봉으로 귀를 닦아주자 아플텐데 잘 참는다.
밥 주고 이뻐하기만 하면 주인이냐......
생각할 수록 욕이 절로 나온다.

이틀을 고민하다가 동물 보호소에 전화를 했다.
언제 이사를 갈지도 모르는데다가
지금 기르는 강아지도 아파트로 이사 가면
한마리는 누굴 줘야 할 판인데 병든 강아지까지
도저히 기를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푸들이 임신 중이니 더욱...

결국 화요일에 아이들과 나는 강아지를 안고
동물 보호소에서 나온 아저씨를 집 앞에서 만났다.
유독 눈물이 많은 큰 아이는 강아지를 꼭 그러안고
그예 눈물을 보이고 만다.
강아지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에게 안긴채
덜덜덜 떨고만 있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먼저 집으로 가란다.
아이들이 가고 나자 아저씨 왈,
이렇게 상태가 안좋은 강아지는 주인 찾는 공고를
며칠 하다가 안락사 시킨단다.
예상은 했지만 가슴이 쿵...

갈수록 고통은 심해지고 귀 상태로 보아
평형감각도 곧 없어질 것인데 안락사가
강아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한다.
치료 시켜서 기를 수가 없는 나는 그저
네...하며 고개만 끄덕이었다.

그래도 멀리서 미적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들리도록 나는 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아저씨에게 눈을 찡긋찡긋 해가며.

아저씨!
우리 강아지 데려 가시면 수술도 시켜주고
귀랑 이빨이랑 치료도 다 해주시는 거죠?
이 강아지는 이쁘니까 완치되면 우리집 보다
더 좋은 집에 입양도 되겠죠?
그럼 아주 귀염 받고 잘 살겠죠?

바보처럼 나도 눈물이 자꾸 나왔다.
안고 있던 강아지를 건네 주는데 죄를 짓는 것 같다.
자주 전화 해서 강아지 치료가 잘 되가는지
꼭 확인할 거라는 공수표 같은 말을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큰소리로 한번 더 하였다.

나를 쳐다 보는 눈동자,
나는 마지막으로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기도를 해 주었다.

강아지야, 다음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알았지? 아줌마가 기도해주께
다음 생에선 꼭 사람으로 태어나라
관세음보살...

그리고 강아지를 실은 차는 떠났다.
집까지 오면서 우리 셋은 엉엉 울었다.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낮에 강아지를 안고
차례로 사진도 찍어 두었는데...

다른 강아지들을 위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사람들 사는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지만
강아지를 안락사 시킬 권한이 사람에게 있을까?
병들어 고통스러워도, 길거리를 떠돌며
쓰레기통을 뒤져도 강아지는 살기를 원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들로 오늘까지 나는 마음이 어지럽다.

누구도 생명을 앗을 권리는 없을 터인데...
집에 오니 여전히 천방지축인 우리집 강아지들이
새삼 다시 보인다.
내가 저 강아지들을 기르는 것이
저 강아지들에게는 행복일까?

생명을 기른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 버거운 일인줄
내 미처 몰랐다.
기쁘고 즐거운 줄만 알았지
고통스럽고 슬픈 때도 있으리란 걸 몰랐다.

어디 강아지들 뿐이랴.
겸허하게 생명에 대해 생각한다.
죄 짓지 않고 살아야지...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