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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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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하는 동생과 혀 깨무는 언니


BY 공주 2001-02-07

사람들은 내 동생이 내 동생인것을 알면, 일단 놀란다.
같은 부모, 같은 조건,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이 얼마나 틀릴수 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는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이 인간이 첨에 시집을 갔을때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남편이 참 똑똑하게 잘 나가서 이다. 근데, 잘나가다 못해 교만을 얼굴에 문들고 살았던 부부가 제부가 사업을 한답시고 뛰어다닌 이후로 완전히 쪽박을 차게 되었다. 인간들이 무지 겸손해졌다.
그리하여, 식비를 걱정하며 살게 되었다.
나는 퇴근후, 울 집에 몰래 들어와서 울 냉장고를 뒤져 아구 아구 먹고 있는 동생 부부를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 인간들의 사랑이 식어가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위대하시고 똑똑하시고 전지 전능하시던 신랑을 동생이 드디어 따까리 (요것이 뭔지는 모르는데, 울 삼촌이 잘 쓰시는 단어다.)로 보게 된것이다.
그 뿐만 아니고 종종 내게 동생이 흐흐흐흑 흐느끼면 전화를 해서
"이 넘이..... 흑흑...... 이 넘이....... 나를 무시해. 난 이러고는 못살아...... 흑흑흑" 하는 일이 생기는것이였다.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설움과 생활고에 못이겨 동생은 취업을 결심했다.
결혼전, 남들은 취직을 못해서 난리인데, 이 여우는 한 3일이면 거뜬히 취직을 하고는 했다. 한번도 3개월을 넘겨본적이 없는것이 탈이지만.
하지만, 결혼을 한 아줌마가 된 동생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근 1 여년을 열심히 이력서를 보낸 끝에 동생은 드디어 한 중소 은행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동생의 얼굴에서는 다시 그 가소로운 교만의 빛이 생기기 시작했고, 덩달아 제부도 신났다.

그리하여 현제 취업 3주째.
다행히 동생은 아직 때려치우지 않았다.
문제는 그 동안 동생은 응급실에 두번 실려갔다는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따르릉 전화가 와서는
"언니, 언니, 나 지금 기절해. 나 지금 어디 있어. 언니...... 빨리 와."

눈섭을 휘날리고 뛰어가보면, 동생은 나뿐만이 아니고, 지 남편, 아빠, 오빠, 심지어 내 남편까지 다 불러놓고 엉엉 운다. (엄마만 안 부르는데, 내 동생은 엄마만 무서워한다.)
동생은 너무나 서럽게 울었다. 증상은 가슴이 몹시 빨리 뛰고 숨이 턱턱 막힐것 같다는것이다.
병원에 실려가서 검사를 해봤더니, 진단은 '너무나 말짱'이였다.

두번째 "언니, 언니, 나 기절해."에서는 아주 정밀 검사를 시켜버렸다. 그리하여 진단은 다시 '아주 말짱.'
저도 염치가 없는지 한다는 말이, 생전 열심히 뭔가 해본적이 없는데, 열심히 일을 하곤 피곤한것을 아픈것을 착각을 하게 되었다 란다.

요즘 동생은 맨날 운다, 피곤하다고.
이 인간은 피곤해도 울고 배가 아파도 울고 머리가 아파도 울고, 제부의 말에 의하면 심심해도 운단다.

저번에, 울 부부와 동생 부부가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화제가 동생의 일과 건강이였다. 물론, 진짜 화제는 그런 때려주고 싶은 어리광장이 동생과 같이 사는 제부에 대한 위로였다.

평소에는 여우같이 히히거리는 동생이 한다는 말.
"근데, 말짱한것도 같은데, 그때는 정말 나 기절하는줄 알았어. 이러다 기절하는구나, 기절하기 전에 도움을 청해야지, 그래서 그런거야."
"근데, 울긴 왜 울어?"
"응, 난 원래 눈물이 막 나와. 울고 싶은걸 어떡해."
"그래도 울면 안되지."
"막 울음이 나오는걸 어떡해?"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다음에는 울것 같은면, 혀를 콱 깨물어버려. 그럼, 정신이 번쩍 들꺼야."

내가 그 말을 하자, 내 남편과 제부는 순간 멍~~ 하더니, 갑자기 으하하하 배를 잡고 웃는것이였다. 왜 웃을까?
그러면서 묻는다. 울고 싶은면, 진짜 혀를 콱 깨무냐고.
동생은 울고 싶은면 울지, 왜 죄없는 혀를 콱 깨무냐, 이 바보야 하면서 혀를 날름거린다.

돌이켜 보니,
대학교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난 한번도 학교나 직장을 아파서 못간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마징가 제트도 아니고......... 감기 몸살같은것에 안 걸려본것은 아니다. 아무리 몸이 힘들고 고달퍼도.......... 난 버텼다.
아파서 못간적이 두번인데, 두번 다 기절을 가장한 말짱한 상태가 아니였고, 진짜 기절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곱게 기절을 한것이 아니고, 천장이 시꺼메진 상태에서 최소한 3,4시간은 버티다가 기절을 했다.
남들 앞에서 울어본적이........ 도대체 언제인가............

남편과 심하게 싸움을 하고도 난 남편 앞에서 울어본적이 없다. 점잔게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울지. 눈이 시뻘게져 나와서야 남편이 내가 운것을 알지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인적, 없다.

언제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서 울어봤는지.
기억이 안난다.

울고 싶을때.
혀만 깨문것이 아닌데.

가끔 고달프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일을 망친 어제도 그랬다. 퇴근후 집에 오니, 창문의 불이 켜져 있었다. 남편이 집에 있구나.
현관문을 안 열고 그 앞에 잠시 쭈그려 앉아있었다.
울고 싶었다.
그냥.
이것도 속 상하고, 저것도 속 상해서.
동생이 생각났다. 동생같은면 엉엉 울겠지......... 지 남편, 아빠, 오빠, 언니, 형부까지 전화질을 해가며 울겠지.
나도 돼지 어깨에 머리를 박고 울어버려?

기운없이 현관문을 열고 머리를 내미니 돼지가 내다 본다.
"왔어?"
남편이 물어본다.
숨 한번 휴 내쉬고 나 한다는 말.
"배고프다! 뭐 먹지!"

그럴때가 있다. 가끔씩.
철없이 바보같이 징징 우는 동생이 부러울때가....... 가끔씩 있다. 아주 가끔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