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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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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웃음의 반란...


BY 지란지교 2001-02-05

잘 웃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건강이 유쾌하고 밝다는 것인지..
지금은 지나간 일이라도 웃어서 낭패본 일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다시 웃음보가 터지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웃음이 터진 일로 겪은 일화를 얘기해 본다.

1.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날..
우리 학교는 역사가 깊고 오래되어서인지 가끔 쥐들도 수업중
출몰하기도 하고 마루바닥은 삐걱이고...화장실은 말그대로 푸세식..
그땐 '승공통일의 길'이란 이상한 과목이 있었다.

일주일 한번정도 들었는데 담당과목 선생님은 덩치가 산만하고
연세도 많이드신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는데 무섭기가 말도 못했다.
당시 반장을 맡고 있던 나는 그 과목이 되기 전이면 반아이중 한명을
시켜 미리 배울 단원의 내용을 읽게 하고 기다려야 했다.

수업종이 울리면 소란하던 교실이 정적이 감돌고 때론 긴장감까지...
꼭 수업종이 울리고도 5분후쯤 선생님은 들어오셨는데...
복도를 걸어 오시면서 쿵! 쿵!발자국 소리를 내셨다.
어쩜 일부러 그렇게 하시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면서
오시면 우리는 발자국 소리에 맞춰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겁을 먹곤
했다.

어느 정도로 무섭냐 하면...눈이 선생님과 마주치면 마주친다고 한대,
볼펜을 딸각거리면 집중안한다고 한대, 필기도 선생님과 거의 동시에
마쳐야 하는데 늦으면 딴짓했다고 한대....

그러던중 선생님은 느닷없이 얘기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무서운 선생님이 해주시는 얘기를 정자세를 하고 긴장하면서 듣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더구나 이상한 영어 발음을 곁들이면...프라자 호텔을 브라쟈호텔이라고 하시고 프랑스를 프랭~스 하며 이상한 억양으로 말씀하시는데
갑자기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학교에 운동부 선수생활을 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필기하시려 뒤돌아 계신순간 살며시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나랑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나에게 윙크를 하더니
엉덩이를 일부러 흔들면서 자기자리로 태연히 가서 앉았다.
어쩔수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참으려면 참을수록 웃음이 멈춰주질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거의 경악하는 수준의 시선으로 날 쳐다보고
선생님은 필기를 하시다가 나를 보시더니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럴땐 웃지 말아야 하는데 이놈의 웃음이 멈춰주질 않는 것이다.
무서움에 질려서도 계속 터지는 웃음...
선생님은 잠깐 복도로 나가시고...애들은 왜그러냐고 난리고..
내짝은 내손을 꼭 잡고 울먹이고....
그러던중 마침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복도에서 들어 오셨다.
웃는 이유를 물으시는데 그 운동선수친구얘긴 의리상 절대 할 수 없고
겨우 웃음을 참으며 선생님의 영어발음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한참 뭔가 생각하시던 것 같던 선생님은 그냥 앉으라고 하시고 나가셨다.. 그일은 당시 2학년 전체로 소문이 퍼졌는데..
그선생님에게 걸려서 안 맞은 최초이자 최후의 제자가 된것이다.
걸렸다면 사정없이 뺨을....음..생각만 해도...


2.
여고 시절...합창부이던 나는 무슨 대회 준비로 매일 연습을 했다.
지정곡, 자유곡 이렇게 2곡을 가지고 나갔는데 합창부를 이끌던
선생님은 굉장히 열정적으로 지도를 하셨다.
전날 대회장에 도착해 리허설도 하고 자리위치도 다시 확인하고..

드디어 대회 당일..
우뢰와 같은 응원과 박수로 시작되었다.
지휘자 선생님의 지휘봉만 열심히 쳐다보며 시작 싸인만을 기다리며...
선생님이 입모양으로 지정곡인 '꽃파는 처녀'하셨다.
시작은...진달래 꽃 이고 팔러온 처녀...가사가 그렇게 된다.
그런데 잔뜩 긴장한 내 옆의 친구가 '꽃파는 처녀....하면서 시작
하는게 아닌가...음율은 그대로 하면서 가사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제목으로 부르는데 목소리도 작은게 아니라...
난 다시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맨 뒤 중앙자리라 눈에도 얼른 띄는 자린데...웃음이 터져나와
참으려고 하니 눈물까지 나오고, 선생님은 계속 지휘를 하시면서
표정으로는 난리도 아니고...내 옆에 친구는 손으로 쿡쿡찌르고...
에휴~ 그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암튼 난 그날 웃다가 죽는다는걸 체험했다.


3.
7년전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연세는 있었지만 가족모두
놀라고 애통한 분위기였다.
나역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슬펐다.
우리 시댁은 시골인데 아주 옛날식으로 초상을 치뤘다.
머리에 새끼꼰거 같은걸 쓰고 짚신도 신고...
조문객들을 대접하느라 부엌과 한쪽마당에서는 며느리랑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정신없이 바빴다..

밤이 되면 몇시 몇시 마다 마당으로 나와서 맨 앞줄엔 아들들..
그 뒤엔 사위들 ..그 뒤엔 며느리..딸...손주들...
이렇게 서서 지팡이를 앞에 쥐고 그 복장으로 곡을 하는 것인데...

우리 큰 형님...(젤 맏동서)
방금 전 부엌에서 '동서, 국좀 더 앉히소..나물 무치소...' 하시면서
진두지휘를 막하시다가 1분도 안돼 갑자기 곡을 너무 구슬프게 곡을
하시는게 아닌가...
살짝 옆에 세째형님을 쳐다보니 나랑 눈이 마주쳤다.
그 형님도 나처럼 곡을 할 줄 몰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 순간...무슨 미친 사람처럼 대책없이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아닌데...아..이러면 정말 안되는데..
내 마음과는 정말 다르게 왜이러는 거야...
난 고개를 아예 허리까지 숙이고 들킬세라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어느 며느리가 곡을 잘하나 보려는지 죽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캄캄한 밤이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들키지는 않았는데...나중에 입술을 보니 얼마나 웃음을 참으려고 깨물었는지 피가
나왔다...

어머니...죄송합니다...저 정말 왜이런건가요...?
어머니...슬픈데...왜 이런건가요....
정말 이번처럼 멈춰지지 않는 웃음이 미울때가 없었다...
어머니...다시한번 용서를 빕니다..
제 의지와는 정말! 전혀! 별게의 웃음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맘대로 안되는 내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이건 우리시댁식구들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아뭏튼 웃지 말아야 할 곳에서 쓸데없이 터져나오는 웃음..방지할
수는 없나요...
제발 누가 나 좀 말려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