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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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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조상이 아니다.


BY dansaem 2001-11-16

오늘 시어머님과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어머님의 어머님,
즉 시외할머님 얘기가 나왔다.

올해 87세가 되셨는데
지금 혼자 살고 계신다.
아들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 살고
제일 가까이 계신 어머님이
요즘은 매일 거기 가서 주무시고 오신다.
시골에서 평생을 사신 분이라
아들네 가서는 감옥살이 하는 것 같다고
며칠을 못 계시고 집에 데려다달라 성화시니
항상 혼자 계실 밖에.
그래서 외삼촌과 어머님이 교대로
다녀가시곤 한다.

"어머님, 그렇게 왔다갔다 하시느니
차라리 여기로 모시고 오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어머님께선 같이 살고 있는 아주버님 눈치가 보여
안 된다고 하시는 거다.
"늙으니 엄살이 많아져서 얼마나 앓는 소리를 하는지...
나도 듣기 싫고 신경질 날 때 있는데 가는 더 하제."

"아이, 어머님두. 외할머닌데 뭐 어때요?"
"그래도 그런 게 아이다. 즈이 할매라면 몰라도."

그러자 같이 계시던 친척 할머니 한 분이 거드신다.
"그러엄. 저희 할매랑은 틀리지."

우리 어머님,
"그렇지. 즈이 조상하고는 틀리제."

"외할머니는 조상 아닌가요,뭐? 어머님을 낳으셨는데."

그러자 두분이 약속이나 하신 듯 말씀하신다.
"아이지. 외할매는 그 집 조상이지, 즈이 조상은 아이잖나."
"그럼, 아이고 말고."

난 두 분의 단호한 말씀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조상이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분들이 아니신가.
어째서 친가 쪽 조상만 조상이고
외가쪽 조상은 조상이 아니란 말인가.
세상에 친가 조상만으로 이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생각의 벽,
난 가끔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벽에 부딪힌다.
어떠한 말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하고 거대한 인습의 벽,
그 벽 앞에서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또한 억울하기도 하다.

나의 친정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나의 외조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없을 것인데,
그래도 그 분들이 우리 아이들의 조상이 아니란 말인가.

성(姓)과 집안(가문)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로 인해
엄연한 조상이 부인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 땅에 있는 성씨 중 피가 서로 안 섞인 성씨가 과연 있겠는가?
대대로 동성동본 혼인만 해 온 게 아니라면 말이다.

누구나 엄마, 아빠의 피를
반반씩 받아 태어났건만
엄마의 혈통은 철저하게 부정하는 나라에
우린 살고 있다.

언제쯤이면
여자도 남자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결혼을 하고 나서 더더욱 절실해지는 문제이다.
아, 억울하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아줌마로 산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