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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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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망신살


BY 이화 2001-11-15

어제저녁 뉴스에
내일 첫눈이 내리겄습니다...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첫눈 내리믄
회사에서 뭘 하고 있든지간에
바로~ 나한테 전화해야 해
알았지?

작년에
첫눈 오던 날
기다려도 당신이 전화를 안해줘서
내가 먼저 했던 거, 기억하지?
올해도 그랬단 봐라...

작년 그날도
남편은 나에게 열나게
핸드폰을 때렸다고 한다.
그런데 삼천리 강산에
첫눈 내린다고 애인에게 마누라에게
전화해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통화연결이 안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었다.

남편은 하필이면
그때 그 순간에
핸드폰을 두들겨대서
일년내내 첫눈 이야기만 나오면
나에게 씹히는 꼬투리를
잡히고 만 것이다.

그런데 오늘 첫눈은 커녕
하늘이 쨍쨍한 것이
영 아니올시다...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첫눈이 내린다 했음 내릴 것이지
혼자서 어쩌고,,,하고 있는데
우울한 나의 기분을 달래주기라도 하듯이
전화벨이 경쾌하게 울려댔다.
전에 살던 아파트 아랫집 여자였다.

키...엄청 크다
미모...미스 코리아 뺨치게 생겼다
성격...화끈하다
술...한술 한다
나와의 궁합...찰떡이다

시간 되면 놀러 오라는 그녀의 말에
그냥 놀러나 갈 것이지
벌건 대낮에 집에 있던 소주는
왜 챙겨서 나갔는지
내가 한 짓이지만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가지고
소주병 두개를 한병씩
신문지에 돌돌 싸서
자그만 쇼핑백에 넣고
(병끼리 부딪쳐 소리 날까봐)
버스를 탔다.

그리고 누가 볼새라
쇼핑백을 발치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누가 내 옆에 서게 되면
쇼핑백 안이 들여다 보일까봐)

그런데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끼~~이~~~익~~~~하더니
왈칵 하는 요동과 함께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꽝!......
하는 소리가 버스 안을 울렸다.

처음에는 타이어 펑크가 난줄 알았다.
그런데
뭐가 둘둘둘...구르는 듯 하더니
분명 내 발치에 놔둔
쇼핑백이 엎어져 있고
신문지로 감싼 소주병 두개가
서있는 사람 없는 버스 복도를
힘차게 굴러 운전석쪽으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소주병은 구르면서
몸에 감았던 신문지가
두루말이 화장지 풀리듯이
풀리면서 마침내
참이슬 22도
초록색 소주병이
드러나고야 말았으니...

앉아있던 승객들의 시선은
졸지에 나타난 소주병으로 향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득함 속에서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쇼핑백에 소주병을 주워 담았다.
옆얼굴에 뒤통수에 등허리에 어깨에
날아와 꽂히는 따가운 시선...

내린다던 첫눈은 아니 내리고
오늘따라 햇빛은 왜그리 따가운지.
연초에 토정비결을 보니
크게 망신을 당할 일이 두번 있으니
그저 말도 조신, 행동도 조신
얌전하게 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말을 무시하고
얌전치 않게 산 것도 아니었건만
전날의 화장실 사건에 이어
며칠도 안돼 두번째 망신살이 뻗치니
이것으로 올 한해도 다 갔다는
증거로 삼아도 될 것인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는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버렸다.
나를 기다리는 그녀에게는
첫눈 내리면 남편에게서 걸려올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변명을 둘러대고
방망이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해가 저물어감을 증명하는
나의 2대 망신살,
그것도 함께 마무리한다.

이것으로 정녕 끝이지요?
신이시여,
저를 보호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