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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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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선호사상에 찬물을 끼얹기


BY ns05030414 2001-11-15

"아이고, 저 녀석이 아들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꺼나?"
시어머니는 티비 속의 손녀 딸을 보면서 한 숨을 쉬었다.
딸만 둘인 둘째 아들의 큰 딸이 출연한 프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티비 속에서는 자기 지방을 대표하는 학생들이 나와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똑똑한데...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같이 보고 있던 시아버지도 맞 장구를 쳤다.
저녁 준비를 하던 큰 며늘도 조카딸이 티비에 출연하였다니까 잠깐 일손을 놓고 와서 같이 앉아 티비를 본다.
평소에 공부도 잘 하고 똑똑하다고 들어왔지만 티비에 나왔다고 하니 더 잘나 보이고 똑똑해 보였다.
큰 며늘도 티비에 나온 조카 딸이 신통하고 이뻐서, 마치 자신이 게임을 하는 사람인 양 티비 속의 게임에 빠져든다.

"정말 아깝다, 아까워!..."
옆에서 열심히 손녀 딸을 응원하던 시어머니가 또 다시 아들이 아닌 것을 아쉬워 한다.
손녀 딸이 맹 활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아버지도 질쎄라 시어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나 달고 나왔으면 좀 좋아..., 아무리 똑똑하면 뭘해!..."
옆에서 듣고 있던 큰 며늘은 마음이 불편해진다.
평소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남아선호사상을 잘 아는 지라 더욱 불편하다.
그래서 한 마디 끼어 들었다.
"아이, 어머니 아버지도 요즘 세상에 아들 딸 구별이 어디 있어요? 아들 딸 상관없이 똑똑하면 좋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딸이 어디 아들만 하냐?"
시어머니는 결코 아쉬움을 털어버리지 못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슬슬 미워지기 시작한다.

큰 며늘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사람이 밉고 싫다.
어려서 부터 보고 듣고 겪으면서 큰 며늘의 마음 속엔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분노가 쌓여있다.
결혼하고 그로 인해 남편에게 당하고 산 것을 생각하면 남편을 그렇게 키운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밉고 싫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살던 세상은 다들 그랬으니까 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겉으로 들어날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꾸 그러시면, 저도 남의 집 딸이고 여자인데 듣기 싫잖아요."
큰 며늘은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묻어나는 소리로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항의하듯 말한다.
아들과 딸이 다를 게 무엇이냐는 큰 며늘의 말이 마뜩찮던 시아버지는 이 말에 화가 난다.
그래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며느리를 야단치듯 말한다.
"그 걸 말이라고 하냐? 어떻게 딸이 아들하고 같단 말이냐?"
시아버지는 어른이 큰 소리로 야단치면 아랫사람은 잘 잘못에 상관없이 다소곳이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것은 오산이다.
적어도 당신의 큰 며늘에게는 커다란 오산이다.
큰 며늘은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 오르는 용수철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큰 며늘은 마음이 느긋해지도록 잠시 뜸을 들인다.
흥분하면 안된다고 자신에게 주의를 준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를 지으며 시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무리 그러셔도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가진 부모는 자동차 탄다던데요?"
그리고 잠시 시아버지의 반응을 살핀다.
시아버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며느리를 바라본다.
그래도 큰 며늘은 자기가 할 말을 끝까지 다 한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칭찬받을 말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멍청이 처럼 말한다.
"우리 미국에 있을 때도 그랬잖아요. 우리 친정 아버지는 미국 구경하셨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아직 못 하셨잖아요."
사실은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미국 구경하러 오라고 몇 번을 얘기했어도 시아버지가 싫다고 해서 못한 것이지만...
어떻든 친정아버지는 미국 구경하고 시아버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

며느리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그 후 더 이상 '아들이 더 좋다'는 말을 큰 며늘이 듣는데서 하지 않았다.
큰 며늘은 자신이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살면서 사람에게 선한 사람 역할만 주어지는 것이 아님도 안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질지도 모르지만 필요하다면, 악역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해 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큰 며늘은 시어머니 시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혼자말을 하며 씻는다.
"내게 선한 역할이 주어지면 그 것도 열심히 할께요. 섭섭하셨어도 이 번엔 참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