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페지 뒷면이 아까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옷장에다 붙여 놓을 글을 마음판에 써 붙였다.
나는 이제 이 옷장안에 있는 옷으로 족하다.
더 이상은 옷을 맞추거나 사지 않겠다.
이 옷장안에 있는 옷을 죽을때까지 다 입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옷들이 낡아지지 않을 것이다.
유행이 조금 지나겠지만 복고풍으로 멋진 코디를 연구해?
더 이상 옷을 맞춰입거나 사입는것은 사치요 허영이요
신앙적으로 범죄이다. 어떤 유혹에도 더 이상은 넘어가지 말자.
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나의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옷치장에 시간과 세월을 낭비할건가?
더구나 새옷 입는 즐거움 정도의 수준으로 내 삶의 만족을 삼을건가?
이렇게 마음판에 쓰면서 어느새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가을에 코발트색 하늘을 닮은 발끝까지 내려닫는
후리어스커트를 입고 겨울바다로 달려가볼꺼나?
아니지! 아무도 입어보지 않은 나만의 도톰하지만 가벼운
코트의 깃을 세우고 낙엽진 거리를 걸어봐?
어쩜! 속내가 들여다 보이는 seethrough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커피향 깊은 카페에서 벗들과 인생을 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