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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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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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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야기 [모의 재판]


BY Suzy 2001-02-02

"피고는 변호인의 단순한 의뢰인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란 말이죠?"

날카로운 검사의 심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지금껏 변호인이 주장하신 피고의 인간성은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이겠군요?"

그러자 피고가 두 손을 저으며...."아~아니 그저 쪼끔 아는 사이........"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방금 전 변호사와 친한 사이라고 했다가 번복하는 피고에게 야유가 쏟아진다.

내가 다니는 영어학원 우리 반에서 하는 모의재판 과정이다.

역할을 나누어 각자는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최대한 유리한 판결을 기대하며 열변을 토한다, 적당한 표현이 생각이 안 날 때는 '에~~ 그게 뭐더라?'를 연발하면서---

"에~ 이제부터 오늘의 법정은 사건 xxx를 다루겠습니다."
K의 낭랑한 목소리로 문을 연 오늘의 재판은,
원고, 피고 그리고 그들의 변호사와 증인들, 검사와 판사 배심원 등 열 명이 진행했다.

바이블에 손을 얹고 "진실을 위해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도 했다.

우리는 재판절차도 잘 모르고 어떤 형식의 진술이 유리한지도 잘 모른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모든 진술이 영어로만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우리 반 학생들의 얼굴은 즐거움과 기대로 상기된다.

A4용지 서너장 분량의 빽빽한 사건 파일을 독해 해야하니 집에서 공부를 안할수가 없다.
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기대하며 어려운 법률용어도 예습해 준비해 둔다.

상대의 허를 찌를만한 예리한 질문이나 감동할만한 표현도 생각해 둔다.
가끔 엉뚱한 질문이나 답변에 폭소도 터지지만 우리는 진지하게 임한다.

진행도중 소란이 일거나 순서가 뒤바뀌면 판사가 정리에 나선다.
"경고합니다, 더 이상의 소란은 퇴장시키겠습니다!"
물론 판사의 위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겁먹지 않으며 사방에서 킥킥거린다.

오늘의 사건은 이 만 불의 돈을 훔친 혐의를 받는 피고 톰과 그의 변호사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사 측과 공방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벙벙한 증인들의 알송달송한 증언도 빼놓을수 없었다.

피고측 증인으로 나온 톰의 어머니와 그 아내의 진술이 엇갈리자
"이의 있습니다! 저들은 내 편이 아닙니다"
톰이 피고인 자신의 신분을 잊고 반기를 들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검사측 증인은 톰을 봤다고도 했다가 안경을 안쓰고 봐서 키만 비슷하다고도 했다가 횡설수설 해서 우리를 웃겼다.

그들의 진술과 확보된 물증, 알리바이 그리고 증인들의 심문 등을 통해 배심원과 판사는 진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나는 제비뽑기로 판사 역을 맡았으나 평결은 배심원 몫이었다.

"그날 밤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머리를 기둥에 부딪혀 다쳤을거라고 검사측에서 주장했으나 그의 모자를 벗기고 확인한 결과 상처는 없고 얼굴에 여드름만 많더라" 나의 최후 판결을 들으며 또 폭소가 터졌다.

"이렇게 여드름이 덕지덕지 난 귀여운 젊은이는 도둑질 따위는 절대 꿈도 꾸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사방에서 "판사가 뇌물 먹었다" 고 쑥덕거렸다, 그래도 판결은 계속된다.

"양쪽 모두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뚜렷한 확증도 없이 젊은이를 희생시킬 수 는 없다, 그의 삶은 이 만 달러보다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고로 Not guilty!!!"

"우우~~" 야유가 그치지 않는 방청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상을 치며 판결은 끝났다! 탕, 탕, 탕!!!

"너 여드름이 살려준 줄이나 알아!"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어느사이 아쉽게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된다.

모의재판을 하면서 사소한 문제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법 집행에 대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실감한다.

인권을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한 사람의 일생을 판가름하는 것인만큼 깊은 고뇌를 할수밖에 없는 체험을 하게된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무거운 의무감도 느낀다.

내가 얼마나 생각 없이 무지하게 세상을 살았는지도 반성한다.

다른 입장에서 보는 세상은 또 달라 보였다,
이제야 개안을 하나보다, 너무 늦은 것 은 아닐까?

딸 같은 푸른 눈의 이국인 선생님 앞에서 나는 속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어떤 것일까.........?

그들도 나처럼 너무 늦게 개안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기우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