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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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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리는 어느날의 일기.


BY 불루마운틴 2000-10-10

새벽부터 안개가 뿌옇더니 어느새 비가 내린다
쓰레기 봉투를 묶다 손가락이 뻐근함을 느낀다
검은 피가 순식간에 손가락위로 쏟아져 뒤덮는다
봉투안에 깨진 유리가 있었음을 난 또 잊었던 거다
둔하고 멍청하고 한심스럽기 까지한 내자신.
하지만 이미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게 솟아오르는 피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고 서 있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말이다 이럴때마다 내가 짜증스럽다
썅, 썅! 또냐? 또?
아주 오래전에... 그래 오래전이지...
테레핀 냄새가 너무 좋아 눈물 왈칵 쏟던 그때의 난, 서슬 퍼런
칼날처럼 신경이 쨍했는데...
언제부턴지 서서히 아주 서서히...
머리끝에서 새끼 발꼬락까지 마비되 버린것이다
철야에 지친 눈동자로 이른새벽 들은 김태화의 안녕에 콧잔등
뻐근해지도록 눈물 흘렸건만...
밤기차로 6시간이 넘게 달려간 속초 바다, 방파제위에 서서 차라리 뛰어들고 싶던 설레임은?
라이트 박스밑에서 잡은 바퀴벌레 한마리에 불을 지르던 그 가슴
후련한 잔인함은?
나의 무감각이 가슴시린 가을비 만큼이나 서글픈 하루의 시작이다 벽에 걸린 까만 모자를 눌러 쓴다
거울속의 내얼굴이 지겨워 보이는 날이면 난 모자를 쓴다
내 모든것을 모자로 뒤덮을듯.
되도록 깊숙히 눌러쓴다
시작도 끝도 없이 기분이 꿀꿀한 날이면 구석에 먼지 뽀얀 모자라도 툴툴 털어 눌러쓴다
반쯤 가려진 눈으로 세상을 보자.
남들이야 웃건 말건 내게 어울리건 말건...
지독히도 바다가 그리워지는 날엔 여지없이 모자를 쓴다
반쯤 가려진 모자속에 나의 고향 바다가 보일것 같으니까.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난 퇴근을 한다
내리면서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살핀다
혹시 누군가 날 기다려 주지는 않나...
낄낄...
나이를 헛 먹었어...
양옆으로 늘어선 호프집을 지나며 문득 술이 고파진다
난 술을 안마신다 되도록...
술취한 그 몽롱함이 싫어서다
보라빛으로 보이는 세상이 싫고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늘어진 느슨함이 난 싫다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차라리 웃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술을 마셨다
기분은 차츰 가라앉았고 깨진 유리조각처럼 곤두 서있었던 신경은 너울 너울 풀어져갔다
쭈그리고 앉은 바닷가 방파제가 벌떡벌떡 일어섰고 수평선에
걸린 작은섬이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더러운 기분이었다
마냥 침을 질질 흘릴것 같은 풀어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촛점없는 눈빛으로 바다를 보았다
바다가 온통 휘청거렸고 울렁거렸다
난 되도록 술을 안마신다
술에 지독히 취하면 가슴 저 깊은곳에 낄낄거리며 숨어있는
또다른 내가 툭 튀어 나올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딱 한잔의 술이 그리워 진다
조금은 아주 조금 이라도 느슨해 지고 싶은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