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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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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반성문


BY 마음 2001-11-08

요사이 흔히 돌아다니는 말 중에 왕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 말을 들으면 요사이 새로 생겨난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분명 이 세대가 누리는 정보통신 덕분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왕따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때도 지금하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마을을 몇 개씩이나 지나고도 또 다시 낮은 산 하나를 넘어가야만 하는 곳에 앞뒤가 온통 산으로 병풍처럼 둘려 처진 산속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 까지는 아이들 걸음으로 두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듯 했는데 그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는 같은 반 여자친구 한명이 있었다. 차도 다니지 않는 그 곳까지 친구네 집이라고 놀려를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었다.

친구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살고 있었다. 아버진 일찍 돌아가셨고 위로 언니 오빠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 사는 모양이었다. 친구의 어머닌 같은 반 친구들이 멀리도 왔다며 내심 찬 걱정을 하시는 눈치였지만 우리는 그날 저녁, 상을 앞에 받아 놓고 제각각 아이의 그 철없음을 그대로 보여 주기 시작했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젓가락을 빨고 있는 아이부터 일찍 숟가락을 놓아 버리는 아이도 있어서 사실이지 난 안절부절 친구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룻밤을 그렇게 함께 모기장 속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은 아침까지 얻어먹고 친구 집을 나서면서 우리는 여전히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고 잘살지 못하는 친구네집에 대한 호기심이 전부였다. 그 친구의 집사정이야 우리가 어찌 알았겠느냐마는 눈에 보이는 친구네의 초라함은 우리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올때 쯤이었다. 불우이웃돕기로 학교에선 쌀 한 봉투씩을 가지고 오라고 했고 그 쌀 한 봉투를 내지 못하는 아이는 없을 거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다 잊어버리고 안 가져온 아이는 있어도... 담임도 안 가져온 아이들에 대해서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 다시 주의를 줬던 걸 보면 아마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때 담임선생님이 그 명단에서 한명을 제외시켜 준 것이다. 그 친구였다. 지난 여름에 놀려갔던 그 친구에게 너는 앉으라고 했고 친구는 갑자기 홍당무가 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친구의 집이 그렇게 까지 사정이 좋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임은 그 아이의 사정을 그리 생각해 주셨던 것이다. 담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이상해 졌고 그 몇몇의 여자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내 자리로 몰려 든 것이다.

아이들 입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거침없이 나오는 아이들의 말속에는 대부분이 그 여름날의 기억들을 들먹였을 뿐 아이가 왜 다른 아이들하고 차별을 두느냐 등의 얘기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수근거리는 재미에빠져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더이상 견뎌 낼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갑자기 일어났다. 그 친구의 꽉 다문 입만 봐서도 우리가 한 행동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를 예감할 수 있었다. 친구는 담임이 다시 교실로 들어오고 난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1교시가 다 되어 갈 무렵에야 돌아온 친구는 하얀 쌀 한 봉투를 기어이 선생님 코앞에다 내밀어 놓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럴사이도 없이 친구엄마의 모습이 뒤이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정미소에서 마침 정미를 하고 있었다면서...

담임은 이성을 잃어버린 듯 했다.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진 않았지만 우리는 그 댓가를 받기 위해 하나 둘씩 자리에 일어나야 했고 그 때부터 우리는 사정없는 몰매를 맞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말도 안 되는 오기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담임한테 그처럼 정신없이 맞아놓고도 나는 그 반성문에다 억지 소리를 썼다. 친구가 왜 부당하게 다른 친구들과 다른 대접을 받느냐는게 내 반성문이었다. 그 날 이후로 담임은 아마 날 완전히 제외시켜 둔 모양이셨다. 문제아로...

친구는 그 날 이후로 우리와는 놀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겨울이 지나고 우리는 그 친구가 거의 대부분이 다 간다는 중학교 진학을 그만 두고 가까이 있는 공단에 취직을 했다는 소릴 풍문에 전해 들었다. 그 소리에도 그다지 그 친구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를 못했던 것은 그때까지도 내 마음에는 친구가 받은 상처보다는 내 진실이 그렇게 전해지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내질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가. 나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 오해를 풀어 주고 싶다. 오해가 아니더라도 이해를 구하고 싶어진다. 우리의 철없음을 이해해 주고 또 용서해 달라구...

너는 어쩜 다른 아이들 보다 나한테 더 화가 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는 다를거라 생각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네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아이때였으니까 이해해야 하지 않겠냐구...

지금 내 아이가 이런 억지 소릴 해대며 내 속을 썩인다. 그 옛날 내 엉덩이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렸던 담임이 꼭 내 아버지 같다는 생각도 문득 해 본다. 어떠한 만남도 믿어주는 것이 그 기본에 서 있다면 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도 함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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