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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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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같은 이모이야기


BY 들꽃편지 2001-02-02

내겐 이모가 세분 계십니다.
그 중에서 둘째이모 이야길 하려 합니다.

나이는 쉰 두 살.마음은 열여덟 소녀같은 이모는 머리에 꽃핀을
꽂고선 "이쁘지?"그러더니
어느날은 달랑달랑 흔들리는 나비핀을 달고선 "너무 이쁜지?"
그런답니다.

애로 배우같이 가슴이 풍만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모들중에서
제일 큰 가슴을 가진 둘째이모는 제 딸 아이 어릴때
"삐쩍마른 니 엄마보다 이모 할머니 가슴이 크지?"
단풍잎같은 딸아이의 손을 끌어다가 만지게 하더니 아이는
그것이 좋았던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이모할머니만 보면
가슴부터 만져보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어젠 중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쑥스럽게 웃으며
요번 구정 땐 이모할머니가 손등을 만져 보라고 하더니
"맨질맨질하지?" 그랬다고 하더군요.

13평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살아도 마음은 부자인 둘째이모.
친척들 궂은 일에 소매 걷어 부치고,
치마 치켜 들고 사방으로 뛰어 다니는 이모.
손님이 오면 반찬값이 없어도 외상 달아 놓고
상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푸짐하게 음식을 차리는 이모.

시골버스 안에서 군인이였던 이모부를 만나 몇년동안 편지를 쓰다가
이모부보다 이모가 더 좋아해
방 한 칸 달랑 얻고, 이부자리 한 채와 그릇 몇개로 시작한 결혼.
지금껏 이모부 하시는 일이 잘 되지 않아서 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했지만, 아직도 이모부를 감싸주고 다독여 주는
착하고 현명하고 어진 이모.

저번엔 내게 전화를 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요.
"나 요즘 시 쓰고 있다"
하루에도 몇편씩 쓰고 있다며 베시시 웃으며 나만 살짝 보여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직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구정 때.
이모가 쓴 시를 보았습니다.
작고 얇은 공책에 빽빽히 써 놓은 시들....
그 중에서 한 편의 시를 적어 왔습니다.

제목; 들국화

따스한 산기슭에 곱게 핀 들국화.
초가을 늦가을 초겨울까지
찬서리 된서리 오도록 피어
은은하고 진한 향기 풍겨낼적에
하나에 화단을 만났다 하네.
따스한 들녘이 차가운 산기슭이
어느날 들국화를 두고 간다면
그대의 화단에 곱게 옮겨
눈만뜨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앞뜰에
흙하나 흘리지 말고 옮겨다주오.

보라색을 좋아하고
시 쓰기를 좋아하고
나이가 먹을수록 소녀가 되어 가는 이모.

이모 처녀 때 시를 한창 썼었고,
당선이 되어 책에 여러번 실린적도 있었답니다.
이제껏 쉬고 있던 글 쓰기를 쉰이 넘은 뒤에 다시 시작 했지만,
이모의 꿈은 시집을 내는 거랍니다.
꿈은 깨어지는 거라지만...
깨어지기 전은 참 행복하잖아요?
행복한 꿈을 꾸는 소녀이모 이야기.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