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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57) *군고구마*


BY 쟈스민 2001-11-03

어제 저녁 아이들과 난 이른 저녁을 먹고서
깊어가는 가을 밤을 이야기꽃으로 보내다가
초가을 시골집에서 가져다 놓은 베란다의 고구마를
생각해 내었다.

무어 그리 바쁜지 여태 맘놓고 앉아서
그 고구마 한번을 못 먹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간식을 만들어 주겠노라
거창한 포부를 안고서 사들인 오븐은
어쩌다 피자 한번 만들고, 아주 가끔씩 오븐구이
통닭을 만든게 전부이다.

가스불을 지피고 호일을 깐 뒤 고구마 몇개를 씻어 얹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니 집안이 온통 구수한 냄새로 가득해 졌다.

몇번 나의 손길로 뒤척임을 한 뒤 고구마를 꺼내어 보니 껍질이
먹기 좋게 벗겨지며 노오란 속살의 달콤한 맛에 아이들과 난
감탄을 했다.

한 쟁반 놓고 먹기 시작한 고구마는 저녁을 언제 먹었는가 싶게
금방 바닥이 났다.

아이들의 눈은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TV에 머물고 있었지만
나는 먹는 내내 시간여행을 즐겼다.

내 어릴적 방 한구석에다가 둥그렇고, 높이가 꽤나 되는
지금은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고구마를 보관하던 곳 ...
겨우내 삶고 ... 화롯불에 구워 내어 살얼음이 동동 뜨는
동치미와 함께 먹던 그 맛이 생각난다.

소죽 끓이는 아궁이 장작불 더미에 파묻어서 구워낸 고구마의
숯검뎅이를 털어내며 호호 불어 먹던 그 고구마의 맛이
이렇게 바람이 차가워지는 날엔 그리움처럼 일었다.

고구마의 단맛의 깊이에 반하여
고구마로 엿을 만들어 내던
내 어릴적 할머니의 손길까지도 무척이나 그리웠다.

눈이라도 내리는 저녁이면
아이들과 난 또 이렇게 가슴한켠에 자리잡은 내 어릴적 향수를
더듬어 가며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군고구마로 추억을 매만질수
있겠지...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만큼
나이를 더해간다는 일에 초조해 지지 않을 수 있는
내가 되어 보고 싶어진다.

내 어렸을 적 처럼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하고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느긋하게 앉아 있어보는 즐거움을 가져보리라...

어릴적 고향의 풍경들이 삭막하기만 한 아파트에서도
살아 숨쉴수 있음에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저녁이었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에는
다정히 팔짱을 끼고 걸으며
곁에선 이의 호주머니에 따끈한 군고구마라도 하나
건네어볼 수 있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