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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만도 못한 남편


BY ns05030414 2001-11-02

여편은 남편에게 이불을 펴고 개키는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훈련은 벌써 몇 년 째 별 성과가 없이 지지부진하였다.
여편은 나름대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우 짓도 해 보고 호랑이 노릇도 해 보았으나 통하지 않았다.
여편은 차츰 지쳐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까짓 것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남편의 돌대가리를 탓하였다.
남편에게 그 정도의 것도 가르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기도 하였다.
남편에게 집 안에서 손끝도 까닥하지 않도록 키운 시어머니를 미워하였다.
남존여비의 문화를 물려 준 조상을 미워하기도 하였다.

텔레비젼에서는 '동물은 살아있다'가 방영되고 있었다.
새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숫컷이 열심히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었다.
온 가족이 '오!' 하고 '아!'하며 새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동물은 살아있다'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이다.
여편도 좋아하지만 자주 보지는 못 한다.
늘 무슨 일인가로 분주한 여편은 한가하게 텔레비젼을 볼 새가 없다.
이 날 만은 여편도 가족들과 함께 앉아 신비의 세계를 즐기고 있었다.
숫컷은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름다운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숫컷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니 여편의 심사가 슬슬 꼬여오기 시작했다.
여편은 심사가 꼬여오면 자신에게 경고의 사인을 보낸다.
특히 말투에 조심하라고...
이런 때는 말 소리에 콧 소리를 좀 더 섞어 나긋나긋하게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때론 짐승이 사람보다 나을 때도 있지요?"
십 년을 넘게 살아도 남편은 이런 여편의 수법을 눈치채지 못 하고 여편이 드리운 낚시 밥을 덥썩 문다.
"그럼, 짐승 만도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지."
여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만 그 것을 지긋이 누르고 다시 한 번 달콤한 목소리로 계속한다.
"사람이 참 미련한 동물이지요? 저런 것을 보면 깨달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예요."
"뭘?"
남편이 무슨 눈치를 챈 듯하다.
여편은 이런 때는 낚아 챌 순간임을 직감적으로 안다.
콧소리 따윈 아무래도 좋다.
빠르게 속사포처럼 쏟아 놓기 시작한다.
"당신 말이예요.
새 만도 못하잖아요.
저런 날짐승들도 암컷을 위해 저리 정성을 다 하는데 당신은 여지껏 이부자리를 펴고 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하잖아요?"
"......"
남편은 할 말을 잃었다.

이 후로 여편은 이불 개키는 일로 남편과 더 이상 씨름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