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이 11월이야.
낙엽이 차에 깔리고 잊으려했던 기억이 서글픔으로 되살아나는 계절.
10월의 마지막 날이야.
고운 단풍이 서서히 마감하고,
지울 수 없는 가을의 상흔이 땅바닥에 휴지처럼 너덜거리는 계절.
메일를 받고 너를 보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알지.
너 뿐만 아니고 다를 친구들도 살아 있음을 아는 거..
목소리는 들을 수 없고 얼굴은 볼 수 없어도 메일을 읽으며
자잘한 글자로 찍히는 살아 있다는 증거.
치악산은 붉게 빛을 내고 있었어.
막바지의 가을 산. 연기 내음이 저무는 저녁을 알게 했어.
저녁 냄새.나무가 타는 냄새.연기가 뿌옇게 하늘로 올라가고,
안개가 고속도로를 감싸안고...
왜 그곳에 아직도 있냐고 집에 안가냐고 야단치는
너의 전화를 받고...
너가 뭐길래 날 구속하는거지?
나를 버려 놓고선 이제와서 어쩌자는거지?
아주 늦은 시간에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들어 갔지.
들꽃 이야기란 찻집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 남아 있어.
난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
소박하고 투박하고 아기자기 하게 말이야.
들꽃을 키우고 들꽃을 그리고 들꽃이야기를 쓰면서....
많이 바빠.
낮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고 살림하고 그러다 보면 10시야.
글 쓸 시간도 없지만 메일을 열고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곤 하는거야.
그리고 이렇게 답장을 쓰고 있어.
잊혀질까봐.
난 왜 그런 잊을까봐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지?
날 잊어버릴까 봐...
다들 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이 무서워.
난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고..
미련이 남아 있고...
꿈이 남아 있는데...
날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그저...잘 살고 있는 거..
내가 없이도 잘 살고 있는 그런 너...
어려운 이야기지? 머리 아픈 생각이고?
시험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그래서 부담스럽다고?
너는 그저 지켜 보면 되는거잖아.
시험은 학생들이 보는거지.
가을이 떨어지고 있구나.
나뭇잎이 노랗게 떨어져 걸어가는 사람 머리위로 날리고 있었어.
오늘 나가면서 노란낙엽이 떨어지는 길을 걸었거든.
환상이였어.
꼭 현실세계 같지 않고 딴 세계인 듯 했어.
자연이 만들어 논 다른나라 세상 같았어.
너가 살고 있는 남쪽엔 비가 내린다고 했지.
넌 언제나 다른나라에서 사는 사람같아.
날씨도 계절도 생각도 느낌도 다른 세상의 다른 남자인 것 같아.
가을이 많이 떠나갔어.
두 달이 달려갔으니까 이제 한 달 남았구나.
다 떨어진 나무는 뭐고,
색동저고리처럼 색이 든 나무는 뭐고,
초록 옷을 아직도 못 갈아 입은 나무는 뭔지.
사람사는 일도 그래...
누군 태어나고 누군 살아가고 누군 죽어가고...
그래,그래, 너와 내가 바라 본 사랑이 다른 듯,
사랑하는 일이 다 그래...그치?
다 부질없는 짓이였는데 말이야.
그만 써야겠다.
자꾸 따질려고 해서 그만 써야겠어.
내 속에 볏단이 뭉텅이로 들어 있나 봐.
자꾸 꼬고 싶은 거 보니...
추수한 뒤에 외할아버지께서는
밤마다 사랑방에서 새끼줄을 꼬곤 하셨어.
난 아무리 침을 바르고 손 바닥이 빨개지도록 비며도 안되더구만,
말 꼬리를 비비 꼬는 건 왜 이리도 재미있고 잘 하는지...
그만 자야겠다.
안녕.
10월의 마지막 날 새벽에...
먼 나라 사람에게로 쓴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