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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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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49) *우리딸 수정이*


BY 쟈스민 2001-10-26

수정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맑고 까만눈동자가 매력적인 그 아이는 유난히 속눈썹이 길다.
눈썹은 마치 잘 그려진 섬세한 그림처럼 예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갸름한 얼굴을 한 그 아이는 참 애교가 많다.

무뚝뚝한 엄마를 닮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에게 착 안기어서 뽀뽀를 해대고 ...
학교에서 일어난 하루 일과를 빠짐없이 재잘거리며
늘 그아이와 함께 있으면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다음에 크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유연하고
호리호리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난다.

하긴 엄마의 눈에 비친 딸이란 누구에게나 그저 소중하고
아무리 미운짓을 해도 다 예쁠테지만 ....

첫정이라서일까 ... 유난히 그 아이에게 정이 간다.

어제는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4학년 언니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단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되면
너는 누구와 살꺼니? "

언니들이 그런 질문을 하더란다.

그래서 수정이는 엄마와 살꺼라고 했단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의 대화 내용에 스스럼없이 이혼이란 말이 오고 간다는
것도 그렇고 ...
아무리 생각해 내어도 누구와 살수있느냐 결정을 내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일것 같은데 ...

단번에 답을 내리는 아이들의 단순함이 우습기도 하고 ...
벌써 자신의 살 궁리를 해 내는 아이들에게서 당돌함도 느껴졌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느새 이혼이란 말이 아이들의 대화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만치 빈번한 일이 되었던가 ...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참 반성하여야 할 일 인것만 같았다.

혹 그 아이중의 누군가는 엄마와 아빠가 평소에 자주 다투는 모습을 보여준건 아니었을까 ...
은연중 심리적인 불안감이 그런 생각들을 하게 한 건 아닐까 ...

나는 그동안 어떠했을까 ...
새삼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는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 주고
엄마와 살겠다는 이유에 대하여 차근 차근 물어 보았다.

함께 대화를 나눈 언니 중 한명은 아빠와 살겠다고 했단다.

이유인즉 그 아빠는 자기가 사달라는 물건을 다 사준다는 거 였다.

수정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물건은 없어도 살지만 밥은 먹어야 하니까 ...
엄마랑 살아야 할 것 같아 ..."

그 아이에겐 의식주 중에서도 "식"의 비중이 제법 컸던 모양이다.

하긴 직장다니는 엄마들 퇴근후에 운동하러 다닌다...
취미생활하러 다닌다 ...
집에 일찍 안가는 엄마들도 많은데 ....

나는 언제나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뿌리칠수 없어서 그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야 하는
책임감으로 빠른 귀가를 서두르곤 하였으니
아이에겐 엄마의 따뜻한 밥한그릇이
그렇게 소중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남편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서운할 것 같아서
애써 말하지 않으려 했다.

요즘엔 일이 많아서 새벽에 올때도 많은 남편이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도 어려울만치 바빴던 탓에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혹 아빠에
대한 기대치를 체념하는 건 아닌지 내심 염려가 된다.

큰 아이라서일까?

나이에 비해서 참 어른스럽고 ... 속이 깊다.

학교에선 선생님 심부름을 거의 도맡아 한다고 했다.

나는 늘 그 아이에게 말한다.

공부를 잘 하면 좋겠지만 그것 보다 소중한 게 있을거라고...
다른아이들이 하기 싫어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집에 오면 엄마에게는 늘 어린아이처럼 굴지만 학교에서는 늘
언니같고, 큰 키만큼이나 의젓한가보다.

언제부터인가 그 아이는
엄마가 골라주는 옷에 만족하지 못하고 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도 아이 나름의 생각이 있을 터이니
어렵지만 그리해야 할 것 같아
나는 나의 생각을 꾹꾹 누를 때가 있다.

엄마의 생각을 입고 있는 아이 보다는
스스로의 생각을 입고 있는 아이가 더 자연스럽고 아이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스스럼없이 엄마에게 그 어떤 이야기든지
다 털어놓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 때가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랫동안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그 아이에게 난 언제까지나 친구같은 엄마이고 싶다.

늘 사랑스럽고 귀여운 웃음으로 엄마, 아빠의 희망이 되고 있는
그 아이가 참 고맙다.

그저 건강하고 ...
여자아이지만 모든일에 씩씩했으면 ...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