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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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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그릇.


BY 봄비내린아침 2001-10-25

세자매는 어찌하다보니 이웃하여 살게되었다.
걸어가면 10분안팎의 거리에 살다보니, 누구 한사람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거나 기뻐하는 일이 있을때 마다 모여앉아 나누기를 잘 한다.

기쁨도 나누고, 슬픔도 나누고, 제부든 형부든 닥치는 데로 함께 씹어대기도 하다보니 그 무엇보다도 피붙이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 날도 그냥 아침커피나 한잔 하자며 세자매는 막내네에 모여앉았다.
친정에서 하나뿐인 아들, 남동생 결혼식이 이 달말로 다가오고있었으므로 동생댁 될 이에 관한 애기가 그 날은 맨 위 도마위에 올랐던 셈이다.

한시간쯤을 그러고 앉았던 언니가 먼저 일어섰다.
언니는 사는 곳에서 한시간쯤의 거리에서 팬시매장을 하고 있는터라, 백수인 우리랑 장단맞춰 궁뎅이 붙이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며 조바심을 냈다.

"나, 먼저 갈테니..재활용품 좀 갖다버리줘~~~"
언니의 끝말에 약간의 애교가 묻어나는 걸 보니, 부탁인가부다.

손으로 가리키는 문앞에는 버리려고 언니가 3층에서 들고내려오다가 도중하차시킨 재활용품이 거득했다.

"언닌, 바로 앞인데 자기가 버리면 될낀데..."

투덜대면서도 성격이 워낙이 사근하고 여자다운 막내는 빠른 손놀림으로 재활용품을 분리하고 있었다.

"언니야, 이거 봐라~~"
동생은 연한 핑크색의 반원형 플라스틱대야를 번쩍들고 함박웃음을 띄며 나를 불렀다.
"이거, 멀쩡한데 언닌 왜 버릴라고 가져왔지?"
정말 멀쩡한 대야였다.
아줌마들이란 남의 집에가면, 대야하나 소품하나 수저하나까지 유심히 보면서 이쁜건 눈독을 들이는 법..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저걸 내집에 가져다 놓으면 얼마나 빛나고 어울릴지에 관해서..

특히나 언니는 생긴것만큼이나 아기자기해서 어디서 구해오는지 이뿌고 특이한 용품들을 곧잘 사다놓곤했다.

그 반원형 대야도 막내랑 나랑 첫눈에 무척이나 이쁘다고 입을 맞추던 물건이었다.
모양이 반원형이라 욕조안에다 넣어도 딱 맞고, 색깔 또한 은은한 핑크에, 즈음 유행하는 래빗캐릭터가 붙어있어 참 이뿌다 했었던 것이다.
따라하기는 물론 아니지만, 눈독을 들였던 물건인지라 언젠가 마트에 갔을때 가격을 본 적이 있었다.
입을 딱 벌렸다.
수입캐릭터여서 생각했던것보다도 그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언니야~우리 언닌 정말 버리기도 잘하고 사기도 잘해. 그치?"

"응. 정말 멀쩡한 대야를 왜 버릴라고 갖다놨지? 더 이뿐 거 샀나보다 야아~"
"언니야, 나 저거 씻어서 우리집에다 둘래"
"그래라"
"언니쓰던 것이고, 더우기 세수할때나 쓰는 대얀데..뭐 어때?"

동생은 그 대야를 깨끗이 씻어서 욕실에다 넣어두고는 너무도 뿌듯하고 행복해했다.
몇번인가를 들여다보면서 행복해하는 동생모습이 몇일을 어른대었다.

며칠후
외출해서 돌아오는 길에 언니네 가게에 들렀다.
언니랑 나란히앉아 이런 저런 애기 끝에, 생각난듯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그제의 그 애기를 하게되었다.

푸하하..
언니가 배를 잡고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왜?"
"ㅋㅋㅋㅋ...그 대야 깨졌어 야~"
"멀쩡하던데?"
"아냐..그게 워낙이 두꺼워서 그렇지 가만 들여다보면 바닥에 금이 제법 갔는 걸"

언니도 첨엔 표시도 안나고 아깝기도 해서 버리지않고 한참을 뭉기적거렸었는데, 중학생인 조카가 머리를 감거나 교복이라도 빨라치면 밑으로 새어나는 물을 그냥 무심히 넘기면서 물낭비를 하길래 큰 결단을 내려서 내다 버렸던 것이라한다.

"헤구, 그런줄도 모르고 혁이에미는 룰루랄라 신났던 걸"
"히히, 가만 내비둬라..모르고 있으면.."

언니와 나는 입을 맞추기로했다.
동생이 먼저 알아채기전에 그 대야가 깨졌다는 것을 말하지않기로..
깨진것을 안후의 그 대야는 동생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않을테지만, 적어도 지금 동생은 그냥 얻은 이뿌고 맘에 드는 대야로 하여 마냥 행복할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