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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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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BY 이화 2001-10-25

주차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우리집 골목도 예외는 아니다.

몇달 전 일층으로 이사 들어온 새댁네는
차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었는데
어느 날 빨간 소형차를 한대 달달달...
끌고 오더니 며칠 뒤에는 큰 트럭 하나가
집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길래 물어보니
그 역시 새댁네 것이라 했다.

승용차 서너대 주차시키기에는 그저 그만인
골목이었는데 새댁네 차 두대가
가세되고 보니 졸지에 서로 눈치보며
신경전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골목 첫번째 집 주인 아저씨(MR. MAGNUS)는
얼마전에 구입한 새하얀 차를 골목 밖에
세워두었다가 범퍼를 찍히는 사고를 당했지만
늦은 퇴근시간으로 인해 골목 안 주차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입장인지라 불만은 있으되
말은 못하고 얼굴이 떨떠름한 것이
우리들 눈에도 보였었다.

새댁네는 차를 한번 주차시키면
삼일이건 사일이 되든 나가는 법이 없고
골목 안이 소형차와 트럭으로 채워지면
우리를 포함한 네대의 차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였다.

새댁네는 이웃들의 원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상
해맑은 얼굴로 아이처럼 웃음짓고 다니니 거기다 대고
차마 주차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는 것이다.
얘기를 한다 해도 누가 한단 말인가?

터질듯한 불만과 긴장을 참지 못한 MR. MAGNUS 가
드디어 결단을 내렸으니 그것은 자신의 집 대문과
담장을 헐어내고 마당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마당에는 멋진 원탁과 의자, 흐드러진 등나무 넝쿨,
축사처럼 튼실하게 슬라브 지붕까지 얹어 지은
콘크리트 개집이 있는데 그걸 다 허물겠단다.

그의 결단이 알려지자 골목 안은 한동안 술렁이었다.
골목 쪽으로 주차장 입구를 내면 그 앞은
늘 비워두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차를 댈 수가 없고
그러면 골목 안은 겨우 한대 밖에 주차시킬 수 없는
최악의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당장 피해를 보는 것은 두번째 집 주인인
세피해 아저씨와 우리다.
소심하지만 고집도 있는 세피해 아저씨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MR. MAGNUS 에게 얘기를 했지만
오늘 아침부터 드디어 공사는 시작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골목으로 나가 MR. MAGNUS 에게 물어 보았다.
마당에 있던 원탁과 의자는 벌써 철거되고 없었다.

저...테이블이랑 의자도 없애셨어요?

네...일산에 있는...거기 집이 하나 더 있거든요
거기는 217평이에요...(언제나 묻지 않아도 친절히
대답해 주는 아저씨) 거기 마당에 갖다 놓을까...
하다가 그냥 없앴어요.

그럼...저 개집도 없애나요?

아니죠 저기엔 이제 새를 기를거예요
저기...새 보이죠?

공사는 언제 끝나나요?
저희 집 차를 빼드릴까요?

아니아니예요...이틀이면 끝납니다
미닫이로 문을 만들고 저기로 샛문을 내고...

나오는 한숨을 거두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 앞에 세워진 우리차가
마음에 좀 걸리긴 했었다. 나의 예감은 불길할 수록
빗나간 적이 없었는데 그때 차를 골목 밖으로
뺏어야만 했다. 그러나 후회는 이미 부질없느니...

일단 TV를 켜고 오늘 신문을 들고 나는 욕실로 갔다.
우리집 욕실은 현관과 마주보고 있는데 나에겐
욕실 문을 열어두고 볼일을 보는 버릇이 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욕실문을 열어둔들 어떠랴?
TV 를 보면서 신문을 보면서 하는데......

우리 말티즈가 왈왈왈 짖는가 싶더니
갑자기 서늘한 아침공기가
욕실 안으로 밀려드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MR.MAGNUS 집 일층에 세들어 사는
소나...타 아저씨가 뻥~~~~해진 표정으로
우리 현관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말티즈는 미친 듯이 짖어대고
훤한 햇살 아래 나의 허벅지와 알궁둥이는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어머어머어머어머어머.......

소나...타 아저씨는 황급히 현관문을 닫고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욕실문을 잡아 간신히 닫고
말티즈는 여전히 짖어제끼고......
살다살다 세상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

소나...타 아저씨는 나의 예상대로 차를 빼달라는
말을 하려고 우리 집에 온 것인데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말티즈가 짖으면서 현관문에 두발을 턱 갖다대는 순간
힘없는 문이 대명천지에 활짝 열리고 만 것이다.

후~~~~~~~
욕실에서 나와서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편은 푸하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
으흐흐흐흐흐.....

남편이 웃는 내내 억장이 무너지는 나의 심정이라니...

아...
이제 얼굴 들고 나가긴 다 글렀다.
골목 안에서 어떻게 사나?
소나...타 아저씨랑 마주치면 어떡하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겨야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