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하고 채팅을 하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골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하셨다고 하니 슬프단다.
재래식 화장실이 싫긴 했지만 그래도 시골집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프단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찡하다.
그 곳이 딸에게 마음의 고향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스무 번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아이들도 자기 나이 수 만큼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 사이 친정 부모님은 돌아 가시고 친정 집은 남의 집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찾아 갈 시골 집이 있었다.
우리는 스무 번씩 이사를 다녀도 시부모님이 지키고 있는 시골 집은 변함없는 우리의 고향이었다.
서울이 답답해지면 남편을 졸라 찾아 가곤 했던 그 곳은 우리 집이었다.
외국에 살 때도 그 곳은 우리 집이었다.
우리나라, 하면 떠 오르는 곳이었다.
고향, 하면 떠 오르는 곳이었다.
우리 집, 해도 떠 오르는 곳이었다.
감 나무가 있고 앵두 나무가 있고 친정 집에서 옮겨다 심은 꽃 나무들이 있고 푸성귀가 자라는 텃 밭이 있던 그 곳은 떠돌이 삶을 살아 온 우리 가족에게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딸이 말하기 전까지 나는 마음의 고향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그만 떠돌이 삶을 청산하고 한 곳에 남은 삶의 뿌리를 내리고 싶다.
과일 나무도 심고 텃 밭도 가꾸고 마당 가득 꽃도 피우고 싶다.
그래서 우리 처럼 떠돌이 삶을 살지도 모를 우리의 아이들과 또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마음의 고향이 될 집을 가꾸고 싶다.
우리 부모들이 늙도록 지키셨던 시골 집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