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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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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날 한양갔다가 강릉 돌아 오는길??


BY 김해자 2001-01-12

나는 강원도 강릉에 살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밤 서울 친구 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울 친구들이 지난해에 망년회도 못했으니
내일 모두 만기로 했으니 꼭 올라 오라는것이었다

뒷날 토요일 아침
모처럼 서울 올라가니 목욕도하고 미장원에가서 머리도하고
멋내라 뽐내라 하고 집을 나섰다
내일쯤 눈이 올거라는 기상 예보는 있었지만
퍽이나 맑은 날씨 였다

서울서 오랜만에 만난 열명의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고
서울서 혼자 살고 있는 딸내미 집에 일찍 귀가 해서 그날밤 딸내미와 같이 자고 뒷날아침 일요일이라 느즈막이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게 아닌가

눈이 오는데 싫어 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꺼다
나도 눈이 오니 괜히 기분이 좋고 신이나서
오랜만에 온 딸내미 집이라 밥하고 청소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데 강릉에 있는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금 강릉에도 눈이 많이 오고 있으니 길 막히기전에 서둘러 빨리
내려 오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서울에 몇일 있으려 했었는데..

눈이 오니 혼자 두고온 남편이 걱정도 되고 해서
서둘러 고속 터미날로 달려갔다
서울서 오래 살았지만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을 별로 본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낮 12시45분에 출발하는 강릉행 고속 버스를 탔다
나는 제일 앞좌석에 앉아 눈내리는 차창밖을 마치 소녀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날씨가 폭은해서 중간에 소사 휴게소에
한번 들르고 별일없이 4시간만에 월정 톨게이틀에 도착했다
월정 톨게이틀를 통과해서 횡계근처에서 차가 섰다
그때 시간은 오후5시경

잠시후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어디에선가 전화를 받으시고는..
마이크를 잡더니 "서울서 전화가 왔는데 대관령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차가 막히니 다시 서울로 돌아오라는데 손님들께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탄차에는 모두 열일곱분이 타고 계셨는데
어떤 한아줌마가 원주로 돌아가서 기차를 타자고 했지만
손님중에 강릉이 집인분들이 많아서 그냥 강릉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차는 그대로 강릉으로 가기로 하고 우리는 차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차는 움직일줄을 몰랐다
9시 뉴스를 들어보니 내일 아침에나 길이 ?돋굅?같다나..

10시쯤 되었을때 어떤 젊은 남녀(부부인것같음)는 더이상 못기다리겠다고 횡계에서 자고 가겠다며 차에서 내려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컴컴한길을 걸어 갔고 어떤 아저씨는 서울로 다시 가겠다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 차안에는 14사람이 남아있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지만 차는 움직일 기미도 보이질않고..
배도 고파오고 차에 기름이 떨어질까봐서 걱정도 되고..
특히 생리적인 현상??이것이 대단한 문제였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여기저기에서 가족들한테서오는 전화 벨소리는 빗발치고 차안에서 잠이올리는 없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그러다 보니 새벽녘이 되었다 차는 여전히 그자리에 서있고..

춥고 배고프고 허리아프고 다리아프고...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날이 밝아오니 이차저차에서 사람들이 나와 야단들이었다
어디서 기름을 사오는지 기름통을 들고 오는사람 어디를 가는지
사람들이 어디론가를 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가는곳은 멀리 횡계마을까지 가서 밥을 사먹고 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그자리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차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나니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다
날이새고 10시가되고 12시가 되어도 차는 그자리에서 꼼짝도 하지않고 사람들은 걸어가겠다며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걷는게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차안에는 몇사람 남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났다 이러다가 나 혼자 남는게 아닌가하고..
눈치를 보니 모두다 걷고 싶은 것같았다
그래서 내가 아줌마 두명 아가씨 두명에게"우리도 걸어 갈까요?"
했더니 그러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여자들 다섯명이 걷기 시작했다
우선 횡계에서 대관령 휴게소 까지 걸어가는데..
난리가 그런 난리가 없었다
차에 기름이 떨어지니 아예 버리고 간 차들때문에 제설작업이
늦어지고 차들이 빠지질 않는걸 알게되었다

도로공사에서 긴급 식량을 나누어주고 있었고
각 방송국마다 헬리곱터를타고 다니면서 촬영을 하고..
어떤방송사에선 아줌마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고
군인들이 여러부대가 와서 눈을 치우고 있었고 그야말로 난리였다

횡계에서 대관령 휴게소 까지는 약간 오르박길이라..전날 점심부터
먹은게 있나 잠을 제대로 잤나 그렇다고 내가 걸음 잘걷나
너무너무 힘들어서 하늘이 빙빙 도는것같았다

우리는 한시간 반만에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우선 화장실 부터 해결을하고 휴게소 안에 들어가 따끈한 국수와
김밥을 사서 허겁지겁 먹고나니 정신이 나는것 같았다

밥을 먹고 난후 우리는 다시 의논을 했다
대관령 고개를 걸어서 내려 갈것인가 아니면 버스를 탈것인가를
다들 걷는게 너무 힘이 드니 버스를 타자고 했다
우리는 대관령 정상에서 전날 오전 10시에 서울을 출발한 버스를 탔다

이제 밥도 먹었겠다 버스안도 뜨뜻하겠다 그제사 잠이 솔솔 오는게 아닌가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차는 그자리에 서있었고 여전히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시간은 4시가 약간 넘어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걸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어떤 여자가 뾰족한 하히힐을 신고 대관령 고개를 내려가는것을보고
우리는 또다시 의논을 했다
한 아줌마만 빼고 모두가 걸어가자는데 합의를 봤다
나는 핸드폰으로 남편에게 지금부터 대관령고개를 걸어서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남편의 말은 새끼줄을 구해서 신발에다가 동여 메라는 것이다
그래야 미끄럽지가 않다나
그러니 요즘세상에 어디서 새끼줄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것이 월요일 오후 4시33분
우리는 열심히 걸었다 내리막 길이라 숨은 가쁘지 않았지만 다들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다리가 무척 아팠다
조금 내려와서보니 도로공사에서 제설작업을 하느라고 상,하행선 모두를 통제를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대관령길에는 차 한대도 다니지를 않았다
중간에 버려진 차들은 있었지만 차한대도 다니지 않는 대관령길을 걸어서 내려오는데 온통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그 절경이란 너무 아름다워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걸으면서 옆의 아가씨를 보니(관동대 학생)청바지가 많이 젖어있는것을보고 신발을 보니 목이 긴 부스가 아니고 그냥 신발이었다

모두가 다 길고 짧은 부스를 신고 있는데 그학생만 그냥 신발이었다
나는 마침서울서 발목에닿은 부스를 하나 샀는데 그것이 발에 맞는지 신어 보라 했더니 맞다는 것이다 그럼 신고 내려가서 강릉 가서 벗어 달라고 했더니 감사하다며 얼른 신었다 나는 모처럼 좋은 일을 한것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반쯤내려오니 날씨가 어두워 지면서 또다시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지런히 열심히 걸었다 캄캄해지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서나 보는 그런 길같았다
옛날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다녔겠지...

어흘리 까지 내려오니 강릉 시청에서 나왔다며 빵한개씩을 주었다
우리는 빵한개씩을 받아가지고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눈까지 맞으면서 걸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거지 행색으로 구산 휴게소에 도착한것은 저녁 일곱시쯤
구산 휴게소에 도착해보니 상행선 차들을 올라가지못하게 통제를 시키고 있었는데 서울로 가겠다는 차들이 끝이없이 줄을 서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토요일날 놀러 왔다가 일요일날 서울로 가야 하는것을
월요일에도 가지못하고 있으니 출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애가 타겠는가? 저 위에서만 난리가 난게 아니고 아래에서도 난리가 그런 난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침부터 기다리다가 지쳐 강릉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차를 얻어 타고 강릉 시내에 도착했다 시내에서 같이 동행한 사람들끼리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다들 너무도 피곤한 까닭에 그냥 아쉬운 작별을 했다
잠시후에 남편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기나긴 31시간만의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왔다

끝으로 강릉에사는 내친구 수니아우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
수니아우덕에 대관령오솔길,태백산,오대산노인봉엘 다녀 왔기 땜에내가 이 엄천난 일 해낸것이 아니었남..
그래도 그중에서 내가 제일 잘 걷더만잉~~
아무튼 나를 튼튼하게 만들어 줘서 수니아우야 고마웡~~~

지금 나는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길에서 내 일생에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고생도 했지만 느끼는것도 많았고 재미도 있었다

같이 고생했던 많은 사람들이 별 사고 없이 무사히 귀가들 하셨다니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는 이런일이 없도록 도로공사측에서나 여러 관청들이 신경들좀 많이 써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