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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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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간의 조리원 체험기


BY 해든아 2001-10-07

이제 중,고등학생이 된 두아이와 늦은 귀가의 신랑덕분에 하루해가 몹시 길어져 기나긴 한낮의 무료함을 벗어나고파 하던중,

단지 집에서 5분거리라는 이유와 토요일과 일요일엔 일하지않는다는 조건에 귀가 솔깃해져

그 일의 내용이 어떤건지도 자세히 모른채 마지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의 어느날 난 고등학교 급식소에서 조리원으로 일하게되었다.

하지만, 급식소 조리원이란 우리식구 4명을 위해 쪼물락쪼물락 소꿉장난처럼 집안살림만 하던 깜냥으론 어림도없는, 정말 어림도없는 감당하기 힘든 노역이였다.

1명의 영양사와 10명의 아줌마 조리원이 고등학생 1600여명과 교사 80여명분의 점심식사를 만들어야한다는것은

시간을 다투는 긴박함과 맛이 있어야하는 책임감과 많은 분량을 다뤄야하는 탓에

조리기구의 대형화와 그 무게로 인해 이루말할수없는 고통스런 힘든 작업이었다.

아침 8시30분이면 하얀모자와 하얀까운 그리고 뻣뻣한 비닐의 길다란 앞치마와 시커먼 장화를 신고 손에는 토시와 길다란 고무장갑을 낀채

밥짓는 사람, 주반찬 만드는 사람, 부반찬 만드는 사람, 국끓이는 사람, 김치와 과일을 챙겨야 하는사람으로 분류된

오늘 자기가 어떤일을 해야하는지 명시된 게시판을 살펴보는것으로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자기가 맡은 분야의 재료를 챙겨서 재빨리 다듬고, 썰고, 무치고, 지지고, 볶고, 튀기고, 끓이고 해야하기 때문에 몹시 분주하다.

조리실 한켠 대형 개스버너에선 무거운 무쇠솥들이 밥이 되어가느라 도르래에 실려 연신 차례대로 떨그럭 거려대며 다된 밥이 내려오면

밥당번 조리원은 힘겹게 무쇠솥의 밥을 커다란 보온밥통에다 오전내내 하나하나 퍼담아 33개의 보온밥통이 산을 이루고있다.

그옆 대형 스팀솥 두개에선 그날의 국거리가 한솥가득 펄펄 끓고있어

그 국이 다 끓으면 국담당 조리원은 또 여러개의 커다란 보온국통에 담아 배식대로 옮겨놔야했다.

그 옆엔 보기에도 무서운 시커먼 대형튀김솥에서 그날의 튀김거리가 뽀글뽀글 진한 튀김냄새를 풍기며 기름솥에서 아우성쳐대고 있고

그보다더 튀김담당 조리원은 그 많은 양의 주반찬을 밑간하여

튀김옷을 입혀대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손가락이 얼얼한채 빨개진 얼굴로 더 힘겹게 튀김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했다.

한켠에선 일반가정의 욕조 두개쯤을 붙여 놓은것같은 크기의 커다란 스테인 무침기구에서

그날의 부반찬 나물이 소금에 맥을 못추다 참깨와 참기름에 다시금 되살아나며 조리원의 손가락에 휘둘려 무쳐지고 있었다.

한켠 수돗가에선 천 몇백개의 과일을 씻어 오존 살균기로 살균하고 큰그릇에 담아내느라 역시 분주했고

1700여개의 식판과 수저 그리고 국그릇을 끌차에 실어 배식대로 옮겨내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조리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꼭 흰개미 농장의 한때가 연상되어져 일하다말고 잠시 관망하며 힘든 와중에도 슬금슬금 웃음이 나와 혼자 실없이 웃기도했다.

드디어 점심시간...

길다란 앞치마와 고무장갑은 벗어놓고 배식앞치마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학생들을 기다린다.

이어 배고푼 학생들이 우르르 들이닥치고 정신없이 배식이 시작된다.

밥 더달라 조금달라 밥은 주문대로 줄수있어 밥배식은 그런대로 순조롭고 그다음의 주반찬에서 아우성이 시작된다.

맛있는 반찬이 나올때면 영양사가 정해준 권장량에서 더달라 아우성쳐대는 바람에 조리원들이 아주 곤혹스럽다.

아무말없이 주는대로 묵묵히 식판을 옮겨가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어린애마냥 더달라 계속 보채는 학생,

반찬이 맘에 안든다고 씩씩대는 학생,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서 재잘대는 학생,

다 자기 엄마뻘되는 조리원 아줌마들을 하녀부리듯 손가락 춤을 추며 " 이거 더 더!, 이거 고만! " 하며 반말 찍찍해대는 학생.

다 내 자식과 같은 또래여서 엄마같은 마음으로 더 주고싶고 반말도 대충 들어넘기지만

달라는 대로 다 더 주다보면 그날의 배식량에서 턱없이 모자라 뒤에오는 많은 학생들이 주반찬을 못받게 되니 그렇게 맘놓고 더 줄수도 없었다.

꼭 조리원들의 맘대로 더주고 덜주고 하는것마냥 원망을 해대고 반말을 쉽게 내뱉는 몇몇 학생들을 보노라면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들 모습에서 오히려 웃음이 나고 결코 밉지가 않았다.

부반찬은 주는대로 진행이 되니 배식하기 수월하고 셀프인 김치와 과일도 수월하고 그다음의 국배식이 또 힘겹다.

그 많은 양의 국을 같은 자세, 같은 속도로 계속해서 빠르게 푸다보면 어느새 손목이 시큰거리고 마비가 올 정도였다.

휴~~~~~~~

배식이 끝나면 영양사나 조리원들은 모자람이 없이 무사히 배식이 끝난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게다가 그날 반찬이 다 맛있으면 참 흐믓하기까지 한데, 어느 한가지라도 맛없게 요리되면 그렇게 미안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자람이 없이 무사히 배식이 끝난것만으로도 안도하며 영양사와 조리원들의 늦은 점심식사가 시작된다.

점심식사를 하며 잠시 쉰다음 산더미같은 뒷설겆이가 기다리고 있어 또 한바탕 흰개미농장의 한때가 연출되어지며 몹시 분주해진다.

1700개의 물컵과 수저는 손세척후 스팀솥에서 펄펄 삶아 다 열탕소독되면 꺼내어

물컵은 청소가 된 자외선 살균기에 넣고 수저는 수저통에 차곡차곡 넣어 온열기에 보관한다.

1700여개의 식판과 국그릇은 끌차로 식당에서 조리실로 옮겨와 대충의 손세척후

자동세척기에서 완전세척이 된 다음 수저처럼 차곡차곡 온열기에 넣어 보관해둔다.

무치고 튀기느라 사용한 모든 대형그릇과 기구들, 무쇠솥, 보온밥솥 그리고 보온국통등을 닦아 제자리에 놓고

음식찌꺼기와 쓰레기등을 치우고 하수구청소, 조리실청소, 식당청소 등이 끝나면 비로소 그날의 급식소일이 모두 끝이나게된다.

아침 8시반에서 저녁 5시반까지 푸른하늘 한점 살펴볼 겨를없이 허리한번 펴볼새없이 정신없이 일만한 댓가가 26,400원이였다.

일의 내용으로 봐선 일당 50000원도 부족했지만 단순노동의 댓가는 그만큼 값어치없이 적은 액수였다.

열흘간 피땀어린 노동의 산물인 264,000원이란 돈은 나에겐 한푼도 헛되이 쓸수없는 아주 값진 돈이었다.

늦여름인데도 40도가 넘는 조리실안의 열기속에서 흘린 땀방울을 결코 잊을수가 없을것같다.

이렇게 힘겹게 일하면서 비록 일의 내용은 다르고 강도는 다를지언정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밖에서 고생하고 있는 신랑이 언듯언듯 생각났다.

우리신랑도 이렇게 맘고생, 몸고생해가며 힘들게 돈을 벌었겠구나......

20여년을 한결같이 아무말없이 묵묵이 새벽부터 출근하는 신랑이 새삼 고마워지고

또 통장에 찍힌 264,000이란 숫자가 어떤 큰 숫자보다도 내겐 귀하고 값진 숫자가 되어 돌아왔다.

살아가면서 힘겹고 고될때마다 이번일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어야겠다.

나이 마흔을 넘어 새삼 세상구경을 하고푼나는 다음엔 또 어떤일에 도전해 경험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