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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84

내탓이라꼬


BY 양파속 2001-09-02

쌍춧잎,깻잎,배추잎,그러고도 모자라 호박잎에
케일, 등 등 쌈으로 쌀수있는 종류는
두루 두루 좋아한다
밥상머리에서 잎사귀 ?p개씩 포개놓고
쌈장 찍어 푹 밥 한숟갈 얹고
갈치속젖 얹어 볼이 미어져라 우물거리고
있으니
건너쪽에서 말없이 숟가락질을 하고있던
남편은 황당+어이없다 는 표정으로 딱 던지는 말

"그렇게 쌈을 좋아하니 딸만 낳지"

이 무슨 실겅에서 호박떨어지는 소리
그게 우찌 내 탓이던고
쌈좋아하는 내 탓이라꼬
그라모 나물 두어개만 상에 올려도
양푼이에다 참기름에 고추장까지 가져오라고 해서는
쓱쓱 비벼서 잘 먹는 사람은 누군데
하도 밥을 잘 비벼먹으니까
시할머님께서 그러더마
"비빔밥을 좋아하니 딸만 낳았다" 라고
누구한테 지금 뒤집어 씌우노

양볼에 넣은 밥은 생각도 않고
"우찌 그기 내 탓인디"
그 말 할때 벌써 밥알이 사정없이
장전된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듯
튀어나오고
"콩심어 놓으면 콩 나고 팥심어 놓으면 팥 나오는거 아녀"
이러고 을러대니
입안에 있던 밥알들이 폭죽같이
흩어지더라 이말씀이에여
실없이 한마디 했다가
가차없이 응수하는 내 몰골에 기가질렸음인지
" 하따 고마 밥이나 삼키고 말해라 이거 원 더러워서"
세상에나 더럽다이
입안에 밥알이 튀어나왔기로소니 그게 뭐 그리
더럽는고
그 보다 더한것도 거시기 하더만도
참 참 참 진짜 더러워서
눈앞에 환장할 만큼 쌈 재료를 두고
참담해진 심정으로
숟가락을 탕 하고 상위에 놓고는
씽크대에 하릴없이 서있으니
왜그리 빙충맞게 눈물은 나오노
지가 내 쌈 먹는데 보태준기 있나
쌈 이파리 한 장 씻어준게 있나
내가 쌈을 잘 먹어 딸만 낳다니
온 세상에나
지 기술 모자란건 생각도 않고
아니지
지 잘못을 와 내 한테 덮어 씌우노
티브이에서도 유명한 박사가 그랬제
남자한티 99%는 책임이 있다고
지도 들었으면서
꼭 그렇게 말해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뒤범벅되어
속만 상하는데
딸들과 맛있게 저녁을 마친 인간이
크윽 트림까지 하면서
"얘들아 오늘 저녁은 특별히 더 맛있는거 같제"
이구 저 웬수
상을 들고나와 주방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억울해서 어구 어구 밥을 쌈에 싸서
체하도록 먹어 제꼈다
"먹고 체해서 며칠을 앓아야지"
속으로 독하게 맘먹고
자꾸만 자꾸만 밀어넣고 있는데
눈에서는 와 자꾸 눈물이 나오노
정신없이 밥을 싸서 먹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마저 없었다
"에이그 체하겠다 물 좀 마시거라"
언제 왔는지
남편이 물한그릇을 쑥 내밀고는
등을 툭 툭 두드려준다
"치아라 마 병주고 약주나 내 이것먹고 아플란다 마"
"에구 그러모 안되제 이제 쌈 좀 그만 묵어라 또 딸낳겠다"
킥 킥 킥
참말로 몬산다 저 문디 인간이
이 나이에 무슨 저주받을 소리고
하얗게 눈 을 치떠 올려다보니
벌써 방으로 들어가고 없다

사랑스런 내 딸들이 뭐가 어쨌다고
배부른 소리는
내사 그래도 쌈이 젤 좋은데 우짜겄노
내가 나이가 쪼맨만 젊었어도
쌈을 많이 먹고
딸을 한타스는 낳을수있는건데

참말로 싱숭생숭한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