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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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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라의 달밤이여!


BY 꼬마주부 2001-08-05

주유소 습격사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얼마나 배꼽을 쥐며 발을 굴렀던가!
정말이지 주유소 습격사건만큼 요절복통하게 만들었던 한국영화는 없었다고 장담할 만큼 이 영화는 걸작급이었다...

그리고, 2년뒤.

"신라의 달밤"

'주유소 습격사건'의 메가폰을 잡았던 김상진 감독은 다시 한 번 관객들의 배꼽을 빠뜨리겠다고 선언했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2배쯤 웃음보가 뻥뻥 터지게 해주겠다고 얼마나 기세등등하게 나왔던지 나는 그런 잘난척은 필요도 없고 다만,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주유소 습격사건'만큼만 되도 영화비 아까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신라의 달밤'을 내걸은 우리 동네 극장들은 연일 매진 사례를 빚었으며 '엽기적인 그녀'까지 상영하는 어느 극장은 개관이래 그런 대박은 처음이었을거다.

어쨌든, '신라의 달밤'을 극찬하는 주위 사람들의 적극 추천을 들으며 드디어 오늘 보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라의 달밤은 어디로 갔나? T.T
내가 본 "신라의 달밤"은 신라의 달밤이 아니라 영화 '친구'에 열받아 내놓은 '너도 친구가!" 쯤 되는 영화였다.

우리 터프가이 시동생은 영화 보는 내내 쏟아지는 웃음때문에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고 하던데 나는 '뭐야, 저게....'를 연발하다 가끔 한 번씩 밖에 웃었을 뿐이었다.

줄거리야 뭐, 차승원.김혜수.이성재가 티비에 줄기차게 나와서 조목조목(?) 떠벌리고 다녔으니 다 아실테고... 주제는.... 그래, 바로 주제가 문제다. 대체 주제가 뭘까....

'주유소 습격사건'도 현실성이 없이 무쟈게 웃긴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이유있는 항변" 정도의 주제는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달밤은 도무지 무얼 말하려 하는지 읽어 낼 수가 없었고 간신히 머리 속에 남아있는건 '친구.....'라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감독이 정말 '친구'라는 것을 말하려 했다면, 이건 쫌 어거지가 심한 것만 같다.

영화 '친구'에서의 그 네 친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있었던 정말 친구지만 신라의 달밤에서의 그 친구들은.....고딩때는 말도 제대로 해 보지도 않은, 단지 같은 학교를 다녔을 뿐인 사이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났다고 해서 갑자기 불타는 우정이 생기다니??? 그런 설정은 솔직히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최기동과 박영준이 서로를 모델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긴 했지만, 그런 사이가 '친구'라는 의미로 해석되기에는 오버일 뿐이다...내가 보기엔 상당히 영화 '친구'를 머리속에 집어 넣고서 만든 영화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가 영화 '친구'와 자꾸 비교를 하는 건 주인공 '최기동'과 '박영준'이 친구 사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직들의 싸움질...조직들의 싸움질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직이 등장했으니 당연히 칼이 나오고 칼이 누군가의 목을 위협하는 장면도 당연히 등장한다.
'신라의 달밤'에서는 조직의 캐릭터들을 희화하기는 했지만 상대 조직에 친구가 위험에 처하고 구하러 하고 싸움질하고..그러는 통에 깡패들에 식상해져버렸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받는 '김상진 감독'의 아이디어가 벌써 바닥난 것일까...

그 다음은 캐릭터.
'주유소 습격사건'을 본 사람들이라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등장인물들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한 놈만 패는 '무대포',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미술학도 '뻬인트',머리 풀어헤친 락커 '딴따라', 그리고 차갑고 빈틈없는 '노마크'...
캐릭터가 강해서 그들의 대사나 성격은 지금까지도 흉내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의 달밤에서의 최기동과 박영진은 그럴 만큼의 성격은 가지지 못한 것 같다. 극중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성격으로 뚜렷하게 비교되긴하지만 그들이 과연 영화 밖에서도 흉내의 대상이 될 만큼 강한캐릭터일까? 난 벌써부터 그들이 기억나지도 않는데 말이다.

김혜수가 열연한 '주란'이라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씩씩하고 거침없는 그녀. 그것만으로도 분명 매력적이긴 하다.
또한 김혜수는 얼마나 아름다운 배우인가...정말 너무 예쁘다.
그런데, 그러기엔 또 뭔가 부족하다.
주란이라는 여인은 씩씩해서 좋긴 하지만 너무 드세다...
드센게 뭐가 어때서..당연히 드센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드센 여인이 주인공이라서 박수라도 쳐 주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엔 주인공의 매력이 조금 애매모호하다는 거다. 대체 어느 모습에서 끌려야 할지를 모르겠다. 이런 비교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스칼렛 오하라는 약아빠지고 못되고 이기적이라서 욕먹어도 쌀 여자이지만, 그런 것들을 한 번에 덮을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느낄 수 있는 어떤 매력. 18인치밖에 되지 않는 허리사이즈가 아니라도 말이다.
주란이 스칼렛 오하라를 닮은 매력은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드센 여인이었다면 좋았을 거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김혜수를 넋을 잃고 볼 정도로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김혜수 특유의 그 동그랗게 뜨는 눈은...이 영화에서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고, 그 눈밑의 주름들은 차승원과 이성재보다 김혜수가 누나뻘이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뭘 여배우의 눈 밑 주름까지 흉보느냐고 하시겠지만, 극장 화면에서 줌인으로 커다랗게 잡히는데 안 볼 재간이 없었어요....)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기대를 많이 한 탓 일까, 이렇게 길고 긴 혹평을 하는 걸 보면.

신랑은 그냥 한 번 웃고 말면 될 영화를 뭘 그렇게 분석해 가며 어렵게 보느냐고 핀잔이지만, 난 "주유소 습격사건"을 걸작이라 여기며 그 감독을 아끼는 관객 중에 한명이 되었으므로 이 정도의 감상문은 혹평이 아니라 감독에 대한 관심임을 누구라도 알아주길.....

-아, 남들은 다 재밌다고 난리인데 나 혼자만 재미없다고 하니...갑자기 왕따가 되어버린 듯한 꼬마주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