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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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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누리 2001-06-21

< 배 울음>


반쯤 열려있는 미닫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 술청은 흐릿한 불빛이 아스름했다.
밤 늦은 시간 탓인지 술청은 휑하니 비어 추수가 끝난 들판 처럼 쓸쓸했다.
가게 안쪽의 살림방에 알록달록한 치마를 입은 중년 여자가 맘부석 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말려 올라간 치마 자락 사이로 설핏 보이는 빨간 팬티가
그를 섬뜩하리만치 전률케했다.

여자의 몸에선 덜큼한 살냄새가 났다.참 오랫만에 맡아보는 냄새였다.
그는 아내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와 향수 냄새가 떠올랐지만 그것은 이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여자의 손이 배암 처럼 스멀거리며 배꼽 아래를 타고 내려와서
그의 남성을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것은 이미 여자의 빨간 속옷을 본 순간 부터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 일어서 있었다.
그는 진저리를 치면서 여자를 안았다.잡초 처럼 부대끼며 살아온 여자는 이미 몸의 탄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여자의 몸이 뿜어내는 뜨거움은 그를 숨막히게했다.
손바닥만한 창으로 부서져 들어오는 달빛이 작고 너저분한 방안을 어슴프레 비췄다.
희고 둥근, 익을대로 익은 여자의 둔부가 그의 시야를 가리는가 싶더니 그는 어느새 구름 위에 누워있다.
여자의 손길은 슬프리만치 부드럽고 셈세하게 때로는 성난듯이 격렬하면서
그를 높고 낮게, 넓고 좁게, 부풀렸다 오므렸다, 폈다 접었다하며 아코디언 처럼 연주했다.
그는 연주자의 손놀림에 따라 절절한 음색을내며 울었다.
어릴적 동네 공터에 천막을치고 저녘 으스름속에 들려오던 곡마단의
구슬픈 아코디언 소리 처럼.

사십 중반의 나이이긴하지만 그의 남성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아내와의 사이도 점차 소원해졌다.
언제 부턴가 그는 나날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이 왕성해지는 아내 앞에서 주눅 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것은 그의 남성까지 기죽게했다.
아내의 밤 외출이 잦아지고 그를 바라 보는 시선이 냉랭해졌다.
" 남자는 그저 밤일을 잘해야 마누라한테 제대루 대접 받는다구..."
술자리에서 친구가하던 말을 상기하며 그는 날이 갈 수록 힘들어졌다.
산다는게, 가장 노릇, 남편 노릇한다는게
숨차게 버거워져서 질식할것만 같았다.
대책없이 차를 몰고 도시를 떠난것이 밤 늦은 시각에 강원도 동해안의 어느 비린내 나는 포구에 도착한 것이다.

다시금 훅 끼쳐오는 여자의 땀에 절은 살내음.
그는 풍만한 젖가슴을 한입 가득 베어 물며 아주 옛적 들일에서 돌아와 그에게
젖을 물려주던 어머니의 내음을 떠올리며 산산히 부서지기 위해 우주 저편으로 끝없이 떠내려 갔다.
무수히 스쳐가는 아름다운 별들을 보면서.

새벽녘 그가 심한 갈증에 눈을 떳을 때 옆자리는 어느새 비어 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질 소리.
여자는 아침 일찍 귀항하는 오징어배 어부들을 맞기 위해 해장국이라도 끓이는지
구수하고 얼큰한 음식 냄새가 방안까지 말려왔다.
아침 햇살이 퍼지기전에 일어나 나가야겠다고 옷을 챙겨 입다 그는 잠시 난처함에
망설였다.그냥 떠나기에는 간밤의 잠자리가 마음에 걸렸다.
지갑속의 지폐를 떠올렸지만 그것은 여자의 부박한 삶에 상처가 될것 같아
그는 그냥 방을 나왔다.
" 벌써.....가시게요?'
여자의음성에 서글픔이 베어있다.
" 저기...아침이나 들구 가시드래요."
" 아니요. 바쁜일이 있어서요 지남밤엔 고마웠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말한다. 여자는 대꾸없이 고개를 숙이고 김이 올라오는 커다란 국솥을 국자로 휘저었다.
그는 무어라 더이상 말을 해서는 안될것 같아 가볍게 목례를하고 출입문을 나섰다.
이른 아침의 짭쪼롬한 갯바람이 상큼하니 그를 감쌌다.
" 우~웅~~~~~~~~~~~~~~~~~~~~~~~~~~~"
부둣가 저 멀리서 항구를 떠나는 화물선의 배 울음 소리가 그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 하나를 만들며 바다 저편으로 울려 퍼졌다.
그는 도시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비수를 갈고 또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