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임시공휴일 어느 날이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3

거울이 生을 다하던 날...2


BY dlsdus60 2001-06-13

어머님께서는 삽을 들고 마당을 고르고 있는 우리를 보시더니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형은 내 얼굴을 쳐다 보며 눈짓을 보내더군요.
그 눈짓은 쥐도 모르고 새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교감이였습니다.
뻔하지요, 어머니께 자기가 못한 말을 나보고 해 보라는 거였죠.
나는 형과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 뒤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 갔습니다.
어머님은 뭐하러 부엌에 따라 들어 오냐며 궁굼해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마당에서 공차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어머니는 내 속내도 모르고 마당 정리를 다 했으면 발 씻고 들어가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려고 해도 지금은 책을 펼치면 거울이 잉태한 죽음의 형상이
떠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밖에 계시는 아버지의 위치를 재빨리 파악하고 나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머님의
눈과 내눈을 맞추었습니다.
순간 어머님 눈과 내눈에서 스파크가 강하게 일어 났습니다.

"빨리 들어가서 공부 해!"
"엄마! 저기...안방에 거울이 오늘 죽어 버렸어요."
"뭐? 거울이 죽어! 무슨 거울이 살아 기어 다니야? 죽게..."
"그게 아니라 밖이 추워서 방에서 공 던지고 놀다 거울을 깨뜨렸다구!"

어머님은 한동안 어이가 없는 듯이 내 얼굴만 빤히 쳐다 보시더군요.

"오매! 썩을 놈들 내가 못살아!"
"...........!!!"
"아버지는 뭐라셔? 아버지가 거울 봤어?"
"아니!.....아직....."
"난 모른다. 느그들이 저지른 일인께 느그들이 거울을 살리던지 죽이던지
알아서 해라!"

어머님은 바가지에 담겨 있는 구정물이라도 버리 듯 말씀을 하시고는 이내
혼잣말로 이런저런 듣기 거북한 말씀만 토해 내고 계셨습니다.
더 이상 어머님 옆에 서 있기가 민망하기도 하고 잔소리만 더 들을 것 같아 부엌
문턱을 구렁이 담 넘듯 나왔습니다.
형이 궁굼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속으로 "뭘봐? 임마!"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잘 안됐다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순간 그렇게 낙심하는 형의 얼굴은 아직까지도 못봤습니다.
어머님의 꾸지람을 듣고 부엌을 나와 마당으로 내려 오는데 목덜미는 모래주머니
매달아 놓은 듯 하였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계셨습니다.
손을 다 씻으신 아버지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시고 안방으로 들어 가실겁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심장은 증기기관차 엔진처럼 심한 박동을 하고 그 소리는
귓전에 울려 퍼지는 듯 하였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거울이 살아나서 평상시 모습으로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이게 꿈이라면....
드디어 아버지는 신발을 벗으시고 마루에 올라 안방문을 열고 들어 가셨습니다.
거울의 조각난 몸들은 이미 뒷뜰에 사금파리 무덤에서 사금파리와 인연을 맺고
또다른 삶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벽에 걸려있는 것은 거울을 보호해 주었던 사각형 나무틀과 합판 뿐...

방에 들어가신 아버님의 신음소리가 잠시 후에 지렁이가 진흙을 뚫고 나오 듯
문틈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형제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레 서로의 얼굴을 마주쳤습니다.
이미 살아 있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였습니다.
죽음으로 핏기가 사라진 시체의 얼굴과 다를게 없었습니다.

"종근아! 종필아!!"
"옛!~~~"

둘은 0.001초의 엇갈림도 없는 완벽한 화음으로 동시에 대답을 하였습니다.
요즘 어떤 가수라도 그렇게 정확하고 명쾌하게 화음을 맞춰 노래하는 사람은
아직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방으로 들어 오라는 말씀도 안하셨는데 우리 둘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듯 반사적으로 방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릎을 꿇고 생을 포기한 채 저승사자에게
목숨을 내놓고 사지를 떨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 지고 있었습니다.
별똥 별과
셋째형 종근이 별과
막내인 종필이 별과
사금파리 무덤에 있는 거울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