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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모든것--제 생각은 다릅니다.


BY 사라 2000-06-11



이브의 모든 것...

저는 열 일 제껴 놓고 보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못본 부분은 인터넷으로 접속해서 대본이라도 꼼꼼이 읽어 보는 편이지요.

이 드라마에 대해 앞에 올린 두 분의 평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드라마는 분명히 권선징악의 상투적인 외형을 하고 있지만

저는 허영미를 욕망의 화신으로 몰고 가는 와중에도

곳곳에 허영미라는 인물에게 보여주는 작가의 애정에 참 놀라운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철저히 흑백논리 위에 서있다면, 그래서 영미와 선미를 완전히 이분법적인 구도 위에서만 전개했다면

굳이 그런 장치들이 필요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가령, 우진에게 매몰찬 말을 퍼부면서도 슬피 우는 모습, 스스로에 대한 가학적인 모습...

그건 허영미란 인물의 야망 뒤에 숨겨진 진실인 것이지요.

자기의 야망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은 당연히 용서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야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만으로 매도하는 건 단편적인 발상일 것입니다.

허영미가 가지고 있는 속물 근성은 허구가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들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사실.

솔직히 우리 자신들 모두 남의 불행에 위안을 삼고, 적당히 통쾌해 하는 속물들 아닐런지요.

게중엔 선미라는 인물처럼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고 선한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겁니다.

세상이 재밌는 것은 그런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펼치는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에 있는 거구요.

그리고, 작가의 역량을 문제삼는 발언들에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한때 드라마작가를 꿈꿨던 사람으로서 --습작은 많이 안했지만---

드라마 대본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브의 모든 것은 그야말로 대사에 군더더기가 없고 절제되어 있는 것이 제가 볼 땐 적어도 대단한 작가들이었습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드라마를 쓰고 있다면 그 사람의 학벌이나 실력은 이미 검증된 거라고 볼 수도 있지요.

저의 지론은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로 본다는 겁니다.

선택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요.

자기가 원하는 취향의 드라마를 보면 된다는 것.

저질프로라고 손가락질 하면서도 거기로 다시 채널이 돌아가는 우리의 아이러니는 또 뭘까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떤 작품이건 완벽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

하다못해 옥의 티라도 있을 겁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는 방송국에선 최대한 재미를 추구해야 할 것이고

저역시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일단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요.

다만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을 시청자가 갖고 있으면 되고,

때론 지나친 재미 추구로 정도를 넘어갈 때 그 드라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겁니다.

가령, 허영미란 인물을 악의 상징으로 몰고 가면서

정말 해도 너무 하고 애들이 봐선 정말 안될 위험수위의 도덕적 파탄자로 설정하고 있다면 그건 제동을 걸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현재까진, 제가 보기엔 허영미의 행동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들 누구나 한번쯤은 누군가의 밥에 코를 빠뜨려 놓고 싶은 정도의 애교단계라고 할까요.

우리들 본성 저 밑바닥엔 누구에게나 허영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가 허영미의 성장배경이나 성격 설정에 대단히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선미쪽 보다는--윤이사 쪽하곤 더더욱 거리가 멀고---

허영미 쪽의 삶에 더 가까운 서민이다 보니 그녀가 부리는 욕심들이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되지 않는군요.

우리들 누구나 신데렐라를 꿈꾸고, 부를 동경하는 마음 진정 없을까요?

그에 비하면 허영미는 그래도 노력하는 신데렐라 라는 겁니다.

어느 누구의 뒷받침 없이, 정말 혼자의 노력으로 그만큼 성을 쌓은 여자.

저는 선미 보다는 영미에게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지요.

그리고 드라마 외적으로는

선미 역의 채림은 완전히 미스캐스팅이란 점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연기자 입장에서도 자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배역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단 생각 듭니다.

봉선화 역의 채림은 정말 사랑스러웠으니까요.

이브의 모든 것은 허영미 역의 박소연에게 절묘한 캐스팅 같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돌아가면서 운을 만나야 겠지요.


두서없이 길었습니다.

앞의 두분이 너무 쉽게 작가를 매도하는 걸 보구..그건 아니다 싶어 써봤습니다.

대본 한번 자세히 보세요.

절제되어 있고 군더더기 없는 정말 잘 만들어진 대본입니다.

그렇게 되기 까진 수차례 수정의 과정이 반복되고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작업이었을 겁니다.

습작시절 저는 베스트극장 피디한테 원고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퇴짜였지요.

지금 다시 봐도 주절주절 뭔 사설이 그리 길었는지...

지금도 기억나는 허영미의 명대사가 있습니다.

날 때 부터 나하고는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 있어.

난 그걸 뺏을 거야. 그건 노력으로 안되는 거잖아.

윤이사를 둘러싼 허영미의 파워게임은

적어도 남자라는 이성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는 대사지요.

운명 자체를 뒤바꿔 버리고 싶은 처절한 사람들이 ...이 땅 구석진 곳곳에 지금도 많이 있을 겁니다.

지금 행복한 얼굴로 웃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어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건 너희들의 영역이 아니야...생긴 대로 살아라....

허영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더 나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