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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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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어느 날


BY my꽃뜨락 2001-05-09



떨어져 사는 관계로 나는 남편의 무용담을 뒤늦게 전해
듣고 가슴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워낙 술을 좋아하
는 남편인지라 그가 벌이는 무용담은 어떤 때는 신출귀
몰하고 어떤 때는 귀엽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내 속
을 사정없이 뒤집어 놓는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이러니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남편 생각하면 꼭 어
린아이 갯가에 내놓은 어머니의 심정, 바로 그 마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의 남편의 기행도 그 중
의 하나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었을까? 어슴프레 잠이
들었는데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웬? 놀라 깨어 수화기를 드니 아니나 다를
까, 우리 집 단골 손님 남편의 거나한 목소리가 시끌
시끌한 소음에 묻혀 왱왱 울려왔다. 여보, 나 말이야
승오와 국태 만나 한 잔 하고 지금 국태집으로 가는
중이야...


뭐시기, 국태집을?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도 그럴 것이 국태씨 집의 위기상황을 얼마 전
에도 남편에게 누누이 설명했을 정도로 그 집 사정이
말씀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세상에, 찢어지려고 이혼서류까지 갖추어 논 후배 집
에 어쩌자고 새벽에, 그것도 술에 떡이 된 세 인간이
처들어간단 말인가? 집으로 들어가라고 아무리 사정해
도 남편은 콧방귀도 안뀌고 평소 하는 대로 같이 있는
취객을 줄줄이 바꿔주기 시작했다.


아이구, 이 웬수들아 맨 정신에 들어 와도 이쁠까 말
까 하는데 술주정뱅이가 그것도 단체로 입장하면 마누
라가 뭐라 하겠냐? 얻어 터지기 전에 곱게 헤어져 여
관이라도 들어가라.


집주인 국태씨에게 소리를 지르니 혓바닥도 잘 돌아
가지 않는 소리로 국태씨가 홍알거린다. 형수, 나 여
자들이 무서워. 너무 무서워...이 대목에선 할 수없
이 나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구, 나도 모르겠다. 물바가지를 뒤집어 쓰든, 욕
을 터머지로 얻어 듣고 쫓겨 나든 자업자득이다. 포기
를 하고 전화기를 놓았다. 다시 살풋 잠이 들었는데
다시 전화벨이 내 잠을 깨웠다.


카! 양호하구만. 서방님 목소리 들으려고 발딱 일어나
고...여보, 제수씨 바꿔줄께. 내가 제수씨하고 내기 했
거든. 전화 건지 몇초만에 수화기를 드는지 말이야. 당
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험해 본 것이지...


아주 재롱도 갖가지로 떤다. 어이도 없고 부아도 치밀
지만 국태씨 부인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사설을 늘어놓
을 수가 없었다. 언니, 정말 대단하시네. 자다가 어떻
게 그리 벌떡 일어날 수 있어요? 야야, 너한테 미안해
내가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다.


걱정했던거와는 달리 취객 대접하는 안주인의 목소리
가 짜증기없는 밝은 목소리다. 광주에 한번 바람쐬러
오라고. 내가 구석구석 유람을 시킬테니 서방, 새끼
땡겨놓고 그냥 오라고 부채질을 한바탕 하고 전화기
를 놓으니 그 때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저것이 지금 화탕지옥에 잠긴 꼴일텐데, 그래도 씩씩
하게 버티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그 애의 처지를 미
루어 짐작하니 가슴이 아팠다. 세상에 빚 지고는 못
산다고. 빚쟁이에 시달리는 고통이 어찌할까 막막한
심정이었다. 병든 고통보다 돈고생이 한 수 더 뜰텐
데 어찌 견디고 있을꼬...


국태씨가 선배하고 동업을 한다고 빚을 키워 놨는데
어느 날 선배가 돌연사를 했단다. 무슨 까닭인지 죽
은 선배빚까지 떠안게 돼 부채총액이 5억이 넘는다
던가? 이자 연체하면 악다귀같이 달려 들고, 무엇보
다 보증 선 지인들에게 못할 일이라 내 배 째라 도망
갈 수도 없고. 완전 최악의 상황까지 간 상태였다.


마누라가 영어 과외해서 밥 먹고, 일부 이자 갚고 그
런다지만 그도 해결책이 아니었다. 괴로우니까 후딱
하면 술에 쩔어 들어와 이불 뒤집어 쓰고 울어 대거나
한 사나흘 일어나지도 못하는 서방 몰골 바라보는 마
누라의 절망감은 어떻겠는가? 견디다 못한 마누라가 이
혼선언을 했단다.


몇일만에 그 후배 부인한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 네
속이 말이 아닐텐데. 철딱서니 없는 영감탱구들 같으니
라구...언니 괜찮아. 처음엔 화가 나서 내다 보지도 않
고 악을 썼더니 그 인간이 뭐라는 줄 알아?


형 오셨는데 너 자꾸 그러면 나 이혼한다? 웃겨, 그 인
간 이혼이 내 바라는 바인지 모르는가봐. 히힛 그런데
형이 문밖에서 우리 싸우는 소리 들으셨는지 국태야
나 배 고프다. 나와서 라면 좀 끓여줄래? 이러지 않겠
어? 그 소리 듣고 누워있을 수가 있어야지. 라면 끓이
고 술상 봐서 아침까지 셋이서 부어라 마셔라 했지.


내가 형한테, 저 원래 이렇게 막 돼먹은 년이에요. 이
해하세요. 했더니 뭐란줄 알아? 별 말씀을요. 제일 지
랄맞은 여자는 승민이 엄마고, 그 다음이 우리 마누라
세번째가 제수씨에요. 하하하...


승민이 엄마란 칠년 전에 암으로 죽은 후배 마누라다.
옆 집에 붙어 살며 같이 서방 욕하고, 새끼 키우고 흡
사 한 형제같이 산 처지라 두 집 사이엔 내 것, 네 것
없이 산 사이였다. 그러나 그 후배 살아 생전 어찌나
부부가 티격태격했는지 후딱하면 마누라에게 쫓겨나
우리 집에 와서 하소연을 늘어 놓기가 일쑤였다. 몇
번 그 후배 쫓겨난 꼴을 본 우리 남편, 그 후배 마누
라 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았었다.


그러구 그 다음 웃긴 말이, 형이 언니한테 살면서 두
가지 큰 공헌을 했데. 지가 말입니다요. 우리 마누라
한테 두가지 공헌을 했는데, 하나는 마누라 암수술하
고 내가 솔 우거진 산을 데리고 다녀 살려 놓은 것,
그 다음은 컴맹인 마누라 컴퓨터 다루는 것 가르쳐
글 쓰게 만든 것...


가끔 글 써 놓은 것 읽어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한
60여편 읽었는데 그 반이 나 씹는 거라니까요? 나중
에 집에 내려온 남편에게 콩당콩당 잔소리를 해댔
다. 아니, 그 집이 엉망진창이라는 것 내 누누이 설
명했건만 그런 집에 쳐들어가 그 마누라 골을 때리
게 해? 이 사람아, 그럴수록 ?아가 봐야 돼는거야.
망했다고, 사람까지 끊어져 봐. 절망감에 아마 자
살할 걸...큰 도움은 못돼더라고 같이 걱정이라고
해줘야지. 자네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다니까?
미련퉁이 에편네!!!


꽃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