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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를 아시나요?


BY juice2 2001-04-22

희방사.
희방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소백산국립공원안에 있는 절이다.

올해 우리부부는 결혼10년차이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결혼을 전제로 처음 남편을 만났다.
결혼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며 침이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친정고모의
성화에 어쩔수 없이 마주 앉았지만 내겐 영 매력이 없었다.

"경상도가 고향이라 들었는데 사투리 별로 안쓰시네요"
"네 전 경상북도 사람입니다. 충청의단양과 강원도 영월,3도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아래 풍기가 제고향입니다. 그래선지 심한 억양의
사투리가 없죠.이북출신의 사람도 많이살고 있는 특이한 곳이기도
하고요. 소백산 아시죠"
"아뇨,잘 모르는데요"
"아니 그유명한 소백산 철쭉제를 모르세요"
"그건 들어봤네요"
"천문대도 있고,희방사도 있구요, 그절아래 희방폭포는 얼마나 운치가
있는데요"
"녜! 지금.. 희방사라 했나요?"
자기고향 얘기로 신명난 그의 설명끝에나온 "희방사"란 말에 난 깜짝
놀랐다.
그몇해전 ,아마 T.V 문학관 인듯 싶다.
그드라마 장면중 주인공인듯한 여자가 기차역에서 내리는데
기차는 지나가고, 화면은 "희방사역" 이라는 곳을 비추고있었다.
몇해전의 얘기라 내용은 잊었지만
그장면만은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고,
도대체 희방사역은 어딨고, 왜 역이름이 희방사 일까? 궁굼했었다.
그런데 바로 내앞에 별 매력없는 이 낯선 남자가 그 해답을 갖고
나타난 것이다.

희방사,희방사역의 장면을 잊지못하는 여자(10년이 훨씬넘었지만
아직도 그장면은 선명하다)
희방사를 고향으로 가진 그 남자
우리는 어쩔수없는 인연의 고리에 엮어져야 했다.

그 잊혀지지 않는 희방사 난 그곳을 꼭 구경하고 싶었다.
아니 꼭 구경해야만 했다.
그후 화창한 오월의 봄날 우린 결혼하였다.
짧은 신혼휴가를 제주도로 서울로 다시시댁으로 ,이동만하다,인사만
하다가 희방사엔 가보지 못했다.
남편은 시어머님 생신이 음력 7월초라 여름에 다시 내려올 기회가
있으니 그땐 꼭 갈수있을거라며 위로해주었다.

나는 여름만 기다렸다.
8월 ?째주 토요일 서울사는 손위시누 두집가족과
시댁으로 향했다.나는 소백산 희방사로 가고 있었다.
해마다 8월 ?째주 일요일은
5남매의 식구들이 토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다모여,일요일날
생신겸 가족행사를 치룬다. 명절보다 더한 시댁행사라 나는
서툰 부엌일에 시댁 예의범절 배우다 "희방사"라는 말도 못꺼내
보고 열심히 일만했다.
남편은 또 말했다. 여름 휴가일때, 다시 오자고 그땐 꼭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여름휴가일엔 나의휴가일과 맞지 않아 못내려갔다.

남편은 가을에,추석날에는 가볼수 있다며 위로해주었다.
기다리니 추석이 다가왔고,추석전전날이던가 우린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사실 희방사역은 간이역이다. 중앙선 새마을호를 타면 금방지나
버린다. 자동차로 소백산 죽령제를 굽이굽이 넘다보면 풍기읍네가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가을날 그제는 너무 ?C있다.
그정상에서 또구비구비 내려오다 보면 희방사 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민박집이 보이고,주차장(모두 최근에 생겼다)이 보인다.
그아래에 희방사역이 있다.
내발아래 한눈에 보이는 그 희방사역, 그것을 놓치고 싶지않다.
나만이 느끼는 어떤 소중한 풍경이다. 명절날 차밀리는 고생도 나는
감수한다.

어쨌든 희방사역은 그렇고...
결론적으로 그해 추석때도 희방사 절구경은 하지 못했다.
남편이 명절준비로 바쁜 나를 두형수님께 어찌어찌하여 빼내긴
하였다.
남편친구와같이 드디어 소백산에 올랐다.
차로 희방계곡까지 온것같은데 입구부터 비포장 도로라,걸어 올라야
했다.여기서 희방폭포까지 20분이면 도착한단다.
그때 큰애를 임신중이였지만 ,그깟20분 문제없을것 같았다.
20분이 지나도 아직 산속이다. 계곡도,폭포도 보이지않는다.
얼마를 걸어올랐는지,힘들고 지치고 ,가을해는 이미기울고 어둑해진
다.드디어 희방폭포까지 왔다.
그해,여름 수해로 폭포계곡은 망가져 있었고 물소리만 요란했다.

희방사는 폭포위에 있단다.
망가진 계곡을 더올라야 하는데 어둑해진 산속을 더는 갈수가 없다.
나와,뱃속의 아이를 위해
바로 앞에서 희방사는 포기해야했다.
커다란 아쉬움을 남긴채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다음해 설날로...
설날땐,산달이 다되서 못가고
또다음엔 일하느라,
아이때문에,
눈이많이와서,
또 배불러서,
그러다보니
희방사는 잊혀져 갔다.
가고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설때도 소백산 죽령제를 넘었지만
희방사입구 이정표를 봤지만 ,
남편에겐, 그저 "희방사 다왔네" 하고만다.
소수서원,부석사,죽계계곡,비로사 등은 여러번
구경했지만 희방사만은 아직 미지의 세계다
이상하게도...
문득 남편이 미지의 세계여서인가 라고도 생각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