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정부가 자녀 1인당 출산 양육비 1억 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54

철이생각


BY 프리즘 2001-04-20


수많은 네티즌들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쩐'도 좀 챙겼다는

대박터진 사이트가 있다. 바로 '알럽스꿀'.

일상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컴으로 해결하는 열린 386세대 프리즘도

당근일억개로 그곳 회원이다.

세상에나...80년생도 있건만, 80년에 그당시의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로선 회원가입을 하면서도 설마 그곳에서 동창을 만날지 상상도

안했었다.

허나, 나혼자만 열린 386이 아니었던 것이다.

동창생 명부에 올려진 낯익은 이름들을 훑어보며 그저 미소짓는

것만으로 넘겨버리던 어느날, 헉!하는 메일을 받게된다.




'최.상.철'



어찌보면 내 첫사랑이기도 했던 그 넘에게 메일이 왔다.





6학년 3반의 제일 앞자리에서 유명한 닭살짝꿍이 되어 뭇친구들의

염장을 있는대로 질렀던 그 아이(?)에게서 온 메일에는 오래도록

연락조차 없었던 반친구들의 근황이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하는 짓이 영감같던 넘은 벌써 빛나리가 되어버린지

오래라했고... 신발가게하는 넘, 커피숍하는 넘, 평범한 월급쟁이

하는 넘, 돈좀 벌어놓은 넘, 부모님 눈에 피나게하다 정신차리고

장교하는 넘 등등의 소식이 있었고 똑때기 전교 2등짜리는 사고로

하반신 불수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있다는 가슴아픈 소식도

접했다.

상철인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배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두 아이와

마누라 등쌀에 조용히 쉬지도 못한다고 징징대는 소리도 있었다.





짧은 답장을 보낸후 한동안 메일보내는데 재미붙인 이넘의 소식을

몇번 더 접한 어느날, 어릴때부터 나의 괴팍스런 성질머리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드는 질문을 받았다.

원문그대로 올린다.


"무슨 답장이 그렇게 짧냐? 누가 너 아니랄까봐...
그리고 네 아이디가 lovor던데 lover의 오타가 아닌지?
설마 철자를 몰라서 그렇게 지은건 아니겠지?
중학교가서 너에게 연애편지랍시고 썼다가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땀이 난다.
pen을 pan이라고 썼다면서 영어 제대로 못하면 아예 하지도
말라고 가슴떨며 받은 편지의 답장에 그 얘기만 써있더구나.
그때 이후로 난 영어만 보면 겁이나서 근처에도 안갔단다.
덕분에 지금도 영어라곤 완전 젬병이지.
아이디가 잘못된거 아니니?"




후....-___-;;

문디자슥......그렇게하면 더 힘내서 열라 공부할거라 생각했는데,

지랄같이 깨갱하고 꼬리말아 버렸다니 부작용도 단단히났다 싶다.

답장을 보내려다 말고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예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운동회날, 마이크로미니스커트 악대부 유니폼을 입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다가 맞은 편에서 날 훔쳐보던 그넘이 내 팬티를 봐버렸고

들킨(?) 나는 멀쩡한데 본 그 넘의 얼굴이 백짓장이 되어 도망가던

모습....

며칠동안 앓느라 결석한 나를 위해 반친구들과 문병오며 들고온

운동장에 구석에 핀 시들어빠진 코스모스 한뭉치....

학교앞 문구점 먼지앉은 떡볶이를 저녁시간까지 노느라 허기진

배로 아귀처럼 먹어대는 날위해 떠주던 밍밍한 보리차 한 잔....

꼴에 멋있어 보이려고 형의 은테안경을 훔쳐쓰고서 높은 돗수에

어지러워 넘어진 -_- 멍청했던 모습....

수업시간, 공부안하고 노트겉면에 쪽지써가며 얘기하다 들켰지만

난 말짱히 앉아있고 저혼자만 복도에서 의자들고 벌서던 일....

겁대가리 상실한 개구쟁이 한넘이 내 치마를 아이스깨끼하고

도망가다 상철이에게 잡혀 개박살났던 그 날의 통쾌함....

소풍날, 바쁜 엄마가 안싸준 김밥을 오이못먹는 나를위해 즈이엄마

졸라 오이빼고 싸온 기특한 녀석....






생각하면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의 반응은 '당근!'

이었던, 공주중에도 상공주를 받드느라 졸업식날까지 코피깨나 쏟았을

상철이.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로 한 여자의 동반자로 지내는 그를 한번

떠올리려 노력하지만 전혀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작은 키 깡마른 몸, 주근깨와 바가지 머리 상철이....

참! 내가 울산에서 직장다닐때 예고도 없이 회사에 찾아왔던 적이

있었다.

군대가기 이틀전, 얼굴이라도 보고가려고 집에 갔더니 엄마가 일러

주더라며 회사이름 하나만으로 무턱대고 찾아왔던 넘이었다.

그때 역시 10분정도 길커피를 마시고 길건너편의 시외버스정류장을

손끝으로 가리켜주곤 휭하니 회사로 들어가버린 내가...도대체

어디가 이뻐서 아직도 공주님으로 기억하며 미소를 보내는지 진정

궁금한 넘이다.





허나 아직 그 메일엔 답장을 안했다.

어쩌면 영영 안할지도 모르겠다.

난 그냥 계속 공주님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