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의 남편 오서방은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로 주로 사는 곳이
한적하고 뜸한 시골 아니면, 주소가 산 XX번지로 된 곳 이었다.
딱 4번 만나고 척 4개월만에 결혼한 자야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그들의 신접살림을 하게 된 곳은 전라도 어느 산중의 직장 사택.
차를 몇번이나 갈아타고 그 곳으로 도착한 때는 한 밤중이었다.
25여년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곤 이상스럽다
생각하며, 이렇게 물었다.
"와 건물이 이래 하나도 안 보입니꺼?"
오서방의 대답
"밤이라서 안 그렇나"
그럴까 싶었지만 결코 아니었다.
근처엔 다른 집들과 건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걸어서 5분정도
걸리는 일명 "점방(빵)"앞에는 자야가 지지리도 싫어하는 어마어마한
개가 턱 버티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점방유리문앞에는
"오늘은 헌금(현금), 내일은 외상"이라는 무슨 표어같은 말이 붙어
있었다.
자야는 겨울이 다 갈 무렵,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친정으로 전화를 하고 시장이 서는 읍에 가기로 했다.
전날부터 비가 왔고,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그쳤다.
사택에서 걸어 나와, 오솔길에 접어드는 순간, 자야는 생전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곳은 붉은 황토색의 아주 뭐랄까 차진 흙, 점토 수준의
흙길이었는데, 비가 와서, 완전 반죽처럼 되어 버린 것이었다.
겨울 샌달을 신은 자야! 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벌건 흙들은 쫀득쫀득한 떡처럼 신발에 붙어버려, 다섯 발자욱을
뗐을 땐, 마치 특수신발을 신은 듯 무겁고, 도저히 더이상 발을
옮길 수가 없게 될 지경이었다.
고무다라이처럼 당황한 자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저 앞에
아지메들은 그나마 잘 걸어가는 것처럼 보여, 눈나쁜 자야는
두눈 찡그려가며, 살핀 결과, 그 아지메들은 아예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양말채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야, 우째,맨발로 저래 갈 수가 있겠노... 보기 이상쿠만도...
아니야, 나도 저래 해 보까... 그라마 양말을 하나 더 넣어가야겠네..
하루에 몇번 안오는 버스시간은 이미 다 되었고, 아지메들은 벌써
정류장에 도착해 있었다.
자야는 우쨌거나, 있는 힘을 다해, 떡이 다 돼 버린 신을 신고,
다시 두세발걸음을 떼는 순간, 희비의 쌍곡선은 그려지고 만다.
버스가 도착하였고, 자야, 자야는 엄청난 신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끙하며, 그 질척거리고 싫은 땅에 퍽하며 넘어지고 말았지만
버스를 탄 아지메들은 오일장이 서는 읍으로 읍으로 가고 있는 중
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