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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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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터에 앉아 있는 나는 ... .


BY 김영숙 2000-05-21

아이들과 남편은 내게 어떤 존재일까?
그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은 돈 오천원을 들고 종알대며 신나라 밖으로 나갔다.
기구를 타고 오겠단다.
남편은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흥얼거리며 '다녀 올께'한마디
던지며 뚜벅뚜벅 발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빈 아파트 콘크리트 속에 혼자 남았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고요한 공간을 차지하고 앉았으면서
참으로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못한채
'나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그 생각을 하며 앉아 있는것이다.
아이들에게 늘 나는 말한다.
'엄마는 너희들 거름이 될거야. 그 거름을 양분삼아
너희들 씩씩하게 자라나야 한다.'
남편과 나, 참으로 묘한 관계다.
서로 원수처럼 들볶으면서 우린 참 친하다.
그러나 나의 고요한 섬에 그는 없다.
그는 우리들의 가정을 지키는 파수꾼일뿐.
나이들어 가면서
'우린 동지야'함께 동의 하며,
우린 목숨을 건 사랑 같은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전설이 되어버렸다.
사랑없이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버린 것이다.
사랑으로 눈물나게 만나 터질듯한 그리움안고
빛나던 아침을 기다리던 시절이 우리에게
없었던 건 아니다.
마흔이 멀지 않은 나이로 바라보는 내가
그리 여유롭지 못한 까닭은
참으로 내가 성실하게 살아내지 못한 탓이리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공터에 앉아
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아주 조금만 슬퍼해야 한다.
그들의 무사한 귀가가 아직도 내게는
기도의 전부이고,
삶의 팔할을 차지하고 있으니.
하나 이렇듯 나는
미세한 슬픔하나에 가슴을 곪아가고 있으니.
정말 내게 그들은 무엇일까?
내 전부를 바쳐 아낌없이 헌신하고 싶은 그들은
무엇일까, 내게.
적어 내려가던 가계부가 가끔 멎고,
아이를 바라보던 끈질긴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멎고,
그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던 마음의 갈피가
바람결에 떠 도는 때가 하나 둘씩 늘고
아, 나는 차마 고독하다고
불쑥 네게 말 할 준비도 되지않았는데... .
우리는 이렇게 준비도 없이 늙어 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