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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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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동화@@@ -선녀와 나무꾼-


BY 더기 2001-02-13

저는 하눌나라 7선녀중 막내로,
침선 수예에 음주가무(??)까지 아무튼 못하는게 없고
인물마저 출중해 하눌사상 유래없는 사랑을 한몸에 받고 살았답니다.

꽃도 시샘하여 나를 보면 시들고 온갖 잘난이들이 흠모의 연서를 보내와도 채워지지않는 무엇이 있었으니,
그것은 저 하늘아래 미지의 세상에 대한 동경.

인간세상 늠름한 왕자님과의 숙명적 사랑을 꿈꿔 보기도 하고.....

아바마마가 짝지워 준대로 안일한 일상속으로 몸을 던지는 언니들을 비웃으며 나는 뭔가 소설같은 삶을 살아보리라...

전용 옥욕탕에 부러 탈을 내고
급낮은 선녀들이나 떠나는 지상 목욕여행을 따라 나설 때만해도
내앞에 펼쳐질 인생은 상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사실 목욕중 한 사내가 다가와 내 날개 옷에 손을 대는 것을 보았을땐 잠시 고민도 했었죠.
그때 다른 선녀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젖은 몸을 감싸앉고 그를 보았습니다.
첫만남.
상상처럼 근사 하진 않았고 차림새도 남루 했지만,
기름기 좔좔흐르는 하눌나라 남정네들에 비해 뭐랄가 순수 같은거?
까만 눈동자가 마음을 끌었습니다.

사슴이 어쩌구 하는 내용은 잘 들어오지 않았어도 그감미로운 목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숲속의 밤이 깊어갈 무렵 난 그의 여자가 되었지요.
그때 귀기울여 들었다면 한때 혼담이 오갔던 산신령의 아들이 꾸민 계략이었다는 걸 알아차렷을텐데....

그가 벗어준 적삼을 걸치고 산을 내려오니 현실이란 놈이 떡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가세는 형편없고 탐욕스런 홀시어머니에.....그는 갈아먹을 전답마져 없어 나무를 해다 파는 나무꾼.
농토가 많아도 도시처녀들이 거들따 보지 않아 그 동네엔 널린게 노총각이 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사랑이면.... 이남자 성실한데....내가 잘 내조 하면....
사실은 내 선택이 무모했노라고 내패배를 인정하고 돌아가기엔 어린 자존심이 용납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난 여자로 ..... 부당함에 순응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달이 밝아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건네다 보이는 밤이면 홀로 눈물지으며....

나무꾼은 제가 지니고온 패물을 팔아 가세가 피는듯 하자 바로 손을 놓아 버렸습니다.
벌목사업을 한다고 일을 벌이더니 어느새 빚더미에 올라앉고,
밖으로 돌기 시작하더군요.

'기집이 잘못들어와 착하디 착한 내아들 저리 되었다.내 육지것도 아닌것 데리고 들어올때 부터 알아 봤니라.....'
시어머니의 구박에도 젖먹이 딸아이를 부둥켜 않고 우는것 외엔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던 어느날,
어머니가 다정스런 목소리로 절 부르더군요.
"아가! 친정에 다녀 오니라. 갑자기 딸잃고 어찌되었나 소식 끊겨 니 부모 얼매나 황망 했을꼬?"
하며 감춰둔 날개 옷을 내 놓으셨습니다.

이게 꿈인가 싶더군요.
그러나,
"먼길 아기한테 무리니 ##는 두고 가니라. 내 잘 봐줄 기구만."

그랬구나!
어린 손녀를 볼모로 잡고 내게 지금 친정에 구걸을 보내 시는 거구나!

하지만 너무도 그리운 맘에 앞뒤 잴것도 없이 날개옷을 줏어 입고 하눌로 향했습니다.

몇년만에 돌아온 하눌은 왠지 낯설었습니다.
모두들 나를 힐난하는듯 보이고...
부모님은 날보고 그저 울고만 계셨습니다.
금지옥엽 막내딸이 거지꼴이 되어 돌아 왔으니....

슬픔은 잠깐,
곧 환영 만찬이 베풀어 졌습니다.
아가 다시는 가지 말아라.
어머니는 우셨고 절 보고 우는 어머니를 보고, 두고온 딸 생각에 저또한 울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젖은 불고, 아이가 보고싶어 한나절이 지났을 뿐인데 그리움에 목이 메어 왔습니다.
이미전 7선녀가 아닌 ##엄마 였으니까요.

다시 가겠다는 말에 아버지 하눌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고,
어머니는 울면서 패물이며 보화를 챙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 다시 현실로 하강했습니다.

잠시는 행복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우리 보화덩어리 하며 입에 침이 마르셨고 ,남편도 예전에 다정한 눈빛을 되찾았습니다.

둘째 딸아이를 낳을때 까지 두고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제외하곤 별탈없이 무료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번 실패를 교훈 삼아 사업도 번창하였고 이대로 가면 해피엔딩이려니....

둘째가 아장아장 걸을 무렵 남편에게 여자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지만, 남편에게 대화를 청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너무 잘난 날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내앞에 있을땐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기만 했는데, 그녀 앞에선 자신의 자아가 보인다나요...
선녀출신의 아내와 선술집 여자.
그저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버선조차 제손으론 신지 않던 남편. 아이한번 안아 주지 않았고..
그 말끝에 토한번 단적 없었는데....
제 무엇이 그를 숨막히게 했을까요?

시어머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답은 이러 했죠.
"그럼 남의 집에 들어와 대 끊어 놓려 했냐? 딱 아들 낳을 상이니 간섭 말그라. 7선녀? 말이 선녀지.딸 일곱 아니더냐? 내 그때 끝까지 반대를 했어야 했지. 그나마 발길끊지 않으려거든 처신 잘하그라."

지난 세월이 억울 했습니다.
후회해야 소용 없겠죠.
내가 지금 하늘로 가면 동무들은,언니들은 뭐라 할까?
겉으론 측은한 눈길을 보내겠지만 사흘 낯밤을 씹으며 즐거워 하겠지?
그래도 돌아갈 수 만 있다면 이보단 낫지 않을까?

이생각 저생각으로 뒤척이는데 주인 잃은 남편 베겟속에 뭔가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날개 옷이었습니다.
어머님의 경솔함을 책망하며 손수 감추었던 날개옷.
남편은 베겟속을 빼고 그곳에 채워 놓았던겁니다.
그 빛은 제 인생에 실낱같은 희망이었습니다.

시누집에 다니러간 어머니,
첩에 빠져 자릴 비운 남편,
곤히 잠든 아이들.
하늘이 준 기회였습니다.
앞뒤 잴것도 없이 날개옷을 꿰어 입고 아이를 업고 안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다녀간뒤 어마마마는 알아 누워 계셨습니다.
못난 딸이 돌아오자 말없이 안아 주시며....처음본 손녀들을 부둥켜 안고 그저 울기만 하셨습니다.

상처도 가라앉고 아이들도 천상의 생활에 적응할 무렵에는 하늘의 법도 엄해져 땅과의 교류를 금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아빠를 찾긴 했어도 더 바랄것 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무렵.
날씨를 관장하던 우뢰대신의 실수로 비를 너무 많이 내려 하눌엔 가뭄이 땅엔 홍수가 벌어진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목욕물은 땅에서 길어다 쓰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산신령을 협박하여 정보를 얻고 물긷는 두레박에 몸을 싣고 하늘에 올라 왔습니다.
새로 얻은 부인이 재산을 모두 정리해 피덩어리 아들녀석만 남겨두고 도망을가서 노모는 병을 얻어 굶고 있다고....
목놓아 울며 매달렸습니다.
"내 사랑한건 너밖에 없었다. 내 못난 자격지심이 날 눈멀고 귀멀게 했다. 한번만 기회를 주면 남은 인생 널 위해 살겠다."
...

딸들이 지 애비를 알아보고 목에 감겨 좋아라 하는 통에 또 그만 그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불행은 신성한 하눌 마저 물들이기 시작 했습니다.
하눌님께 청해 시어머니를 불러 올리니 손자까지 떡하니 안고 올라 오셨고,-아프다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 시누에 시누네 시댁 식구들까지... 마구 불러 올려

"내가 하눌님의 안사돈이여. 딸가진 죄인이란 말 들어 봤는감! 하눌님도 즈그 딸 눈에 눈물 안짓게 하려면 내말 거역 못하지...."
그 위세로 대신들에게 문안까지 받으려 들고,
남편은 한술 더떠 육지서 하던짓 그대로 어린 선녀들을 건들고...

일은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아버지 하눌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불같이 노하시고,
불행의 근원인 딸까지도 매정히 버리 셨습니다.

이번엔 날개옷도 없이 세상에 동댕이 쳐졌습니다.
다시 돌아갈 희망조차 없어진 거지요.

돌아와선 시어머니 화병나 진짜로 몸져 누우시고 저만 보면 이를 빠득 빠득 가는 통에 잠든 연후에야 똥치우고 수발하고....
남편은 '잘난 니집이 날 버렸다'며 지옥이 뭔지 보여 주겠답니다.

딸아이 둘, 다른 여자가 낳은 아들아이.
이 아이들이라도 잘 키워 보려고 오늘도 손에 피가 맺히게 삯바느질을 해보지만, 돈냄새를 귀신같이 맞고 와선 돈을 내놓으라 하고 , 순순히 주지 않으면 닥치는대로 물건 까지 부수니....

노름에 술에 빠진 남편. 그도 평범한 과수댁이라도 만났으면 이리 망가지진 않았을까요?

하눌님 몰래 어마마마가 보내주던 곡식도 끊기고...
살아가야 할날이 막막 합니다.
이야기 처럼 인생도 그냥 이쯤에서 끝하면 좋을 텐데,
모진 목숨 붙어있는 날까진. 아직 끝나지 않을 이야기.....

어제는 빨래터에 갔다가 어렴풋 선녀들의 웃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구름위를 노닐며 별을 희롱하던....그게 과연 나였을까요?
내가 그랬었나요?
그럼 얼음을 깨고 다 터진 손으로 시어머니,배다른 아들,시누아이 똥걸래를 차례로 빨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요?

난 그저 사랑을 꿈꾸었을 뿐인데....
한남자를 믿고 선택 했단이유로 내가 살아낸 아니 살아가야 할 인생입니다.

구름밑에 내려와 '여자'가 되던날.
이미 정해져 버린.....

이시대에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이런건줄 알았다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어린시절 잠시의 오만이 너무 가혹합니다.

후세에 남자들의 손을 거쳐 "선녀와 나무꾼"이란 이름으로 미화된 이야기가 날 더욱더 씁쓸하게 하는군요.

내가 선녀였긴 했던가요?
물에 비친 내모습이 넌 원래 그러지 않았냐고 되묻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