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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8)


BY 영광댁 2001-01-31

변두리에서 겨울 아침의 회상 (8)

정잿간의 벅구

뻥새야
생각나지 벅구, 지금도 외할머니 집에 가면 변소 바로 앞 추녀밑에서 커다란 꼬리를 점잖게 흔들면서 웃고 있는 하얀 개, 귀가 쫑긋 섯고 앞발이나 뒷발이 두툼하고 후덕하게 생긴 작은 송아지만한 몸을 가진 ,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이 가는 벅구 말이야.
어제도 골목길에서 돌아 나오며 그랬던가? 지금 벅구 나이가 몇살이야 하고....몇 살이더라. 열살쯤 되었나, 엄마가 막내삼촌 자랄때의 얘기보다 더 많은 얘기 하는 벅구.
벅구는 한때 엄마친구였고, 형제였고 사랑이였으니까...

바람이 불고 거침없이 날도 추웠는데 벅구가 날마다 자리를 보고 다녔나봐
그 불룩한 배를 가지고서. 엄마는 새끼를 낳을려나, 하시면서 허청에 벅구가 새끼를 낳을 자리를 참 따뜻하게 만들어 주셨어. 어미닭이 알을 품는 퉁우리 처럼 동그랗게 말아서 아주
후툿하게 말이지.
새끼가 나오는 길을 자꾸 여러번 핥고 다니면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니던 짐승의 애미는
그랬단다, 눈이 맹렬하고 낯선 것도 싫어하고, 주위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 지...

그날 밤 엄마는 보았단다. 부러 보자고 날 잡은 건 아니였는데...
엄마가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선 때였는데, 정재에서 깨갱 하는 소리가 났었어.
깨갱. 그 소리는 고통을 참아내는 소리였나 봐. 깨갱.
그리고 벅구의 그 길에서 동그랗게 막이 씌워진 한 물체가 솟아나왔어,
새끼를 낳은거지. 숨도 못쉬고 엄마가 바라보고 있었을게야 문틈으로...
벅구는 제 몸에 딸려 나온 탯줄을 제 이빨로 자르고 막을 쓰고 나온 물체를 이빨로 잘라 새끼를 꺼내고 혀로
핥기 시작했단다. 피와 제 몸의 이물을 묻은 제 몸에서 막 나온 새끼를 그 따뜻하고 깔깔한 혀로 핥아서 깨끗하게 해놓고, 또 고통스런 깽. 소리를 내며 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았어.
또 그렇게 제 혀로 핥아서 깨끗하게 만들어 놓았고...
아! 생명은 그렇게 신비로운 것인가.
탄생은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다운 조화인가. 누가 알겠니. 그런 순간들을...
마지막으로 제 몸에서 나온 넓다랗고 시커먼 물컹한 것도 벅구는 제 목으로 다 삼켜 버렸단다.
재현되지 않은 한편의 신비로운 장면들이였지. 늘 어둠속에서 제 혼자 해냈던
그들의 습성을 엄마가 엿보았단다. 새끼를 핥으면서 고통스런 소리를 내면서 그 영리한 벅구가 엄마의 냄새나 흔적을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모른체 해 주었을 거야.

허청 시렁엔 삽이며 호미 당그래, 괭이,삼발이, 갈퀴. 홀태, 등등이 다 걸려 있었고,
안쪽으로는 땔나무가 가득 쌓여있고
입구에는 구루마와 자전거가 있었지만
정재문이 닫혔을 때는 벅구가 짚무덤이 켜켜이 쌓여 있는 허청에서 자주 나오곤 했으니까
그곳에 제 보금자리를 그토록 정성스레 만들어 주었는데 벅구는 사람냄새가 많이 나고 따뜻한 정재간 나무청에 자리를 잡아버리고 만 거였어.
새끼를 다 낳아 제 품에 말아 넣고 세상에 무슨일이 있었냐 싶게 깨끗하게 치워버린 벅구를 두고 짐승이 새끼를 그렇게 낳더라 하면 한번 말할때는 잘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게야.
엄마가 암컷으로 너희들을 낳을 때도 그랬단다 하면 실감이 나겠니?
잘 웃어서 뻥새, 손님을 이기고 하도 잘 먹어서 먹새라고 이름한 아이들아.
생명은 그렇게 피눈물을 토해내는 가운데 세상에 제 머리를 디밀고 나오는 거란다.
막을 쓰고 태어나는 아이들도 간혹 있었다니까. 엄마가 너희들을 낳으며 한편 짐승만도 못하다 느낀 것이 제속에서 나온 것(태반)들을 벅구처럼 처리하지 못했다는 거란다.
글쎄 둘러 먹어버려야 겠다는 건 아니였고 옛날처럼 싸와서 어느 산속에 네 에비의 손을
빌려 묻었다던가, 아니면 뜨거운 불에 깨끗하게 태워버리지 못하고 병원에 두고 왔다는
거지.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어. 그 집단으로 아기를 낳은 곳에서,
이미 기억에서 사라진 일들이였을 테니.
엄마가 너희들만 했을때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자란 그 태반을 그렇게 처리했었거든.
얼마나 경건하고 깨끗하고 짐승답니.

벅구가 새끼를 낳은 날엔 우리들이 먹었던 밥들에 건개(음식의 간)를 했거나, 된장국에 말아서 한그릇의 밥을 말아주었을 거야. 벅구가 그 밤에 그 밥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다음날 아침 외할머니는 첫차를 타고 읍내엘 나가셨어.
마른 명태를 한 보따리 사오셨던가. 사람이건 짐승이건 새끼를 낳아야 그렇게 우대를 받는게야. 하시면서 보리쌀에 명태를 집어넣고 작은 방으로 불이 들어가는 솥에 개밥을 삶아대기 시작했단다. 손톱만하게 퍼진 보리쌀에 섞인 명태를 퍽퍽 거리면 밥을 먹던 새끼를 낳은
짐승의 애미모습은 참 아름다웠단다.
제가 밥을 먹고 밥으로 길을 한 젖을 빨아먹던 새끼들.
짐승은 또 얼마나 사람보다 나은지 아니. 제몸에서 나오는 젖을 먹고 자란 새끼들의 똥과
오줌을 에미가 다 제 혀로 핥아서 먹어버리는 거야. 흔적도 없이,깨끗하게 씻어버리는 게지, 야성에서 살았기 때문에 , 아무 보호도 없는 곳에서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모든 흔적을 제 속으로 넣어버리는 거야, 뛰어난 후각으로 사는 게 짐승이니 그렇지 않고서는 제 새끼를 기를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일걸. 사람들은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말한 것은 암컷의 본능이
새끼를 낳는 자 다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비릿한 냄새가 맡아지는 것도 같다. 새끼를 낳은 흔적의 냄새...

시간은 참 물처럼 흐르는 거야. 허망스럽게. 밥을 하시던 어머니는 강아지 새끼들이 발에
밟힐까봐 걱정이셨지. 그새 자라 불불불 걸어다녔으니까, 새벽녘 제일 먼저 발길이 닿는
어머니의 발걸음을 짐승이 못 느낄라고...
새벽녘 우리는 강아지를 이불속으로 끌고 들어오곤 했어.
한집안 식구에겐 그렇게 관대하면서 딴 인기척이 느껴지는 때엔 벅구는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단다. 제 영역을....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면서. 눈에선 시퍼런 빛을 품어내면서
말이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너희들은 이불속에서 종알종알 다정스럽구나,
새벽녘에 정재깐에서 웅얼거리며 제 속살들로 파고 들던 대여섯마리의 강아지들 몸 비비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낮게 으르렁대면서 응얼거리면서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면서 사랑하는 모습들이라니....

햇빛이 고르던 아침 외할머니가 그 이쁜 강아지들을 다라이에 담아서 방으로 가져오셨어.
요것들 이쁜 것 봐라. 얼마나 이쁘냐.시던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명절이 다가오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귓가로 들을 날이
그 쪼그라든 손을 만져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아!
사랑이란 이렇게도 사무치는 것인가. 1/18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