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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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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엄마의 눈물


BY 예비엄마 2000-06-18


가만히 누워 배 아래쪽에 손을 얹어본다. 가장 아래쪽에 동그랗게 볼록~ 우리 아가의 예쁜 머리인가보다. 내 작은 손바닥으로 배를 쓸어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갑자기 목구멍이 울컥한다. 눈주위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그리곤 눈물이 터져버린다.

얼마나 답답할까? 좁은 엄마의 뱃속에서...

어제는 참 피곤했다. 토요일은 늘 그렇듯이 일주일의 피로가 몰려오기 마련이다. 남편과 함께 주말 식탁을 위한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난 정말 이름만 며느리다. 일주일 내내 집안 일은 시어머니 차지다. 새로 시작한 일 때문이기도 하고 임신을 하였기 때문에 시어머님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신다. 난 우리집 아파트 관리비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쓰레기봉투를 사본 일도 없다. 그래서 주말이면 뭔가 해드리고 싶다. 말씀이 없으신 시아버님께도 맛난 반찬으로 칭찬도 듣고 싶다. 피곤하니 집에서 쉬라는 남편에게 떼를 써 마트에 갔다. 고기도 사고 생선도 사고 소금, 깨소금, 어머니가 안쓰시는 다시다도 사본다. 양파도 한다발, 그리고 쪄먹을 옥수수까지...

걸음을 걷기가 힘들어졌다. 아래쪽에서 뭔가 뜨끈뜨끈한 액체가 흐른다. 갑자기 헉!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는다. 지난번처럼 금방 멈출 것이고 괜히 말해서 오래간만의 주말 장보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모처럼만의 주말 저녁상도 망치기 싫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난 뒷자석으로 옮겨 누웠다. 남편이 걱정스레 묻는다. 이제서 남편에게 말한다. '어, 그저 뭐가 흘러...계속...' 남편의 표정이 굳어진다 . 남편은 늘 그렇다.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이다. 오히려 내가 남편을 진정시켜야 한다. 산부인과에서 양수가 적다는 우려의 소리를 들었을 때도 남편은 그랬었다. 그런 남편이 안스러워 난 '괜찮아~ 우리 아가는 괜찮을 꺼야...옛날 우리 엄마들은 병원 한 번 안가고도 다 쑥쑥 잘 낳았는 걸 뭐... 양수가 적은지 많은지도 모르고 말야.... 울아가 괜찮을꺼야. 난 괜찮을꺼란 생각이 들어' 라고 계속 남편의 귀에 속삭였었다.

'혹 양수가 새는건가?' 나이 서른셋이 되어 아기를 가지면서 난 내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가 새삼 느낄 때가 많아진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학부모가 된 아줌마들도 많은데, 난 나이를 헛먹었다. 그래서 여자는 결혼을 해야 또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고 했는가!
임신을 하면 분비물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그 뜨끈한 것이 분비물인지 아님 그야말로 양수가 새는건지... 난 분간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친정동생의 생일선물을 사가지고 친정에 가기로 한 날이다. 하지만 갈 수가 없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되는 친?? 남동생... 언제 생각해도 마음 한구석에 싸~ 하게 뭔가가 밀려오게 만드는 그런 동생이다. 그 동생을 위해 마음에 드는 여름 샌들을 하나 샀다. 좀 비싸긴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동생에게 해주는 첫번째 선물인 것 같다. 동행해준 남편이 고맙다. 친정까지 가려면 왕복 2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난 지금 혼자 방에 누워있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전부터 하루에 2리터씩 마시던 물도 마시지 않고 있었다. 아기에게 미안하다. 임신 6개월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배를 손안에 넣고 한참을 울고 있다. 정말 양수가 새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아가는 얼마나 답답할까? 가뜩이나 엄마 뱃속이 좁고 답답할 텐데 엄마가 부실하여 놀 수 있는 공간 또한 부족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그래도 그 걱정스레 쓰다듬는 엄마의 손을 이따금씩 톡톡 건드리는 아가...아마도 괜찮다는 신호겠지? 아가의 꼼지락거림을 느끼면서 또한번 눈물이 터진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 철없는 서른셋의 여자를 이렇게 만든다. 나 또한 울 엄마에게서 똑같은 방법으로 하나의 생명으로 이 세상에 온거지...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기 위하여 지금도 내 뱃속의 아가는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모습이 하도 안타까워 또 눈물이 터진다.

내일은 병원에 가보아야지. 내가 조금이라도 아기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무슨 방법이 꼭 있겠지... 남편은 오늘 내게 아무 말이 없다. 아마도 미련한 이 예비엄마에게 화가 난 모양이다. 그런 남편에게 서운함과 함께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가는 나를 이렇게 성숙시키고 있다. 그 작은 생명의 움찔거림으로 나에게 용기를 넣어주고 있다. 어제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네가 아줌마를 다 이해한다구? 애 낳아서 키워봐... 애 기르면서 피눈물을 쏟아봐야...네가 진정 아줌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될꺼야~'

맞다, 오늘 난 작은 배 위에 손을 얹고 눈물을 쏟으며 내 엄마를 그리고 울 남편의 엄마를 ... 그리고 친구들을... 이 세상의 엄마들을 생각해본다.

이젠 눈물이 그쳤다. 물을 마셔야겠다. 내가 지금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누워야겠다.

- 임신 22주차의 예비엄마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