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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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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미소==


BY 리아(swan) 2000-09-26

내가 미진이란 아이를 만난건 약 삼개월 전인 7월초이다.
내가 가끔 들리는 보육원에 수녀님을 도우려 가곤 했는데
그곳에 그 아이가 있었다.미진이는 이제 다섯살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맺히던
그 날 몇몇 친구들과 함께 나는 보육원엘 방문했다.
먼저 수녀님이 일러 주는 대로 그 날 일을 배당 받고 먼저
아이들에게 줄 간식으로 감자를 쪄 주기 위해 감자껍질을 벗겨놓고
아이들 목욕시킬 준비를 했다.

우리가 가는 보육원은 어린애기부터 5살까지 아이들이
50명정도 있는 곳이다.
애기들을 씻길 때에는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오래 전에
어린 애기를 만져보는 거라 손에 익지도 않고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땀은 비 오듯이 흐르고 순한 아이들은 시원해서 가만히 있지만
성깔이 있는 애기들은 악을 쓰며 운다.
그래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손에 만져지는 감촉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예쁘지 않는 애들이 없다.
아이가 시원해하며 방긋방긋 웃을 때는 천사가 따로 없다.
깨끗이 닥아서 우유를 먹이고 나면 애기는 잠이든다.
잠든애기는 더욱 곱고 예쁘다

목욕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찐 감자를 먹이고
함께 놀아주면 오전일 이 끝난다.
그런데 아까부터 한 아이가 자꾸만 내 시선을 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와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앉아서
꼬질 꼬질 손때가 묻은 인형에게 쉴새없이 빗질을 하며
중얼 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서 수녀님께 여쭤봤다.
수녀님의 얘기로는 그 아이는 4월 중순에 이 보육원에
왔으며 아이의 아빠가 조그마한 가방과 함께 보육원 앞에
데려다 놓았으며 미진이의 가방 속에는 미진이의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짤막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돈을 벌면 꼭 아이를 데리려 올 테니까 아이를
어디 보내지 말라는 것과 자기를 용서해 달라는 내용
이 있었다고 한다

아빠가 나타나지 않자 미진이는 너무나 큰 충격에 말문을 닫아버렸고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울지도 웃지도 않는 아이가 되었다.
올 때 가지고 온 인형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미진이는 그렇게 매일을 보내고 있는 그런 아이였다.
그 후 미진이를 두 번 정도 더 보았지만 미진이는 별로 나이진 게 없었다.
오늘도 나는 보육원엘 갔다
미진이가 말을 해주길 그동안 많이 바랬었다.
수녀님도 미진이를 극진히 보살피며 아이가 좋아지길 정성을 다했다.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아이가 하루빨리 자신을 버린 아빠의
충격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수녀님의 노력도 대단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20여일 만에 미진이를 보았다.
지난 여름보다 많이 큰 듯 미진이는 조금 야위여보였다.
내가 다가가 미진이에게 아는 체를 하며 안아 주려하자
한참 나를 바라보던 미진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모"하는 게 아닌가
지난번에 왔을 때 그 아이가 듣건 말건 나는 미진이에게 말을 했었다.
"미진아 다음에 이모가 올 때는 미진이가 이모에게 꼭 이모라고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약속하자 그러면 이모가 올 때 예쁜 인형 사다줄텐데"
그리고는 난 억지로 그 아이의 새끼손가락을 걸었었다.
그랬는데 미진이가 날더러 이모라고 불러주었다.
난 순간 눈물이 솟아졌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애기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을까?
난 수녀님께 허락을 얻어 오후에는 미진이와 외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약속한 인형을 미진이에게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원장 수녀님께서 허락을 안 하신다.
여러 아이들 속에 미진이만 외출을 하고 편애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수녀님의 염려로 미진이와의 외출은
그만두고 대신 난 약속을 했다.
다음에 들릴 때 꼭 인형을 선물하겠다고......

미진이는 엄마를 모른다
단 한번도 엄마라는 그 숭고한 단어를 입밖으로 내본 적이 없는 아이다.
수녀님의 말씀은 아마 미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엄마라는 존재는
미진이의 기억에서 지워진 단어일지 모른다고
그런 아이가 이모의 존재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이모라고 불렀다.

요즘에는 제법 말도 잘하고 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린다고
수녀님이 귀띔해 주신다.
그것이 그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겹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아이의 몫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그 아이가 아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는 한 그 아빠도 미진이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하루빨리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리아=(2000.9.25)

http://www.hellonetizen.co.kr 편집책임 문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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