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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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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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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불행의 씨앗이라 생각했었지..은비를


BY 유수진 2000-06-14

은비가 잠든 모습을 보니 임신 8개월쯤 '오 유경의 가요산책'에
'그땐 미안하단말을 못했어요'코너에 편지가 채택되 구두티켓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물론 그 티켓은 시어머니 생신날 선물로 드렸다.

내가 은비의 실체를 처음으로 알았던 날.
그 이틀전날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폭탄주에 아뭏든 굉장히 과음을 했고 그 숙취가 이틀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하다가 갑자기 라볶기가 먹고 싶은거다.
'나 라?처?먹고싶다. 우리 시켜먹자.'
이 소리에 몇몇 직원들이 동요를 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이대리가
"유 수진씨 임신했어요? 갑자기 웬 라?처?"
하는거다.
총각 남자직원의 입에서 그런 발상이 나오다니....
순간! 난 안색이 변했다.
이대리는 말실수해서 내가 정색을 하는줄 알고 "에고~ 장난이야.
갑자기 이런 농담도 못받아"
"아냐, 아냐, 그게 아냐, 나 퇴근해야 겠다."
그 다음날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서 검사해본결과 임신 6주란다.
임신 6주라는 진단을 받고 정말 벅차오르는 가슴, 그 기분이란..
너무 놀랍고 기쁘기도 해서 벙벙하게 입만벌리고 선생님을 쳐다보는데, 옆에서 간호사가 불쑥 한마디 뱉는다.
"나으실 거에요?"
"에?"
"나으실 거냐구요."
"......."
엥 이게 무신소리? 나을거냐니.....
"아니, 당연히 낳아야죠.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까지 내 의료보험카드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미쓰-ㄴ줄 알았데나, 어쨌데나.

아뭏튼 은비는 그렇게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줬다.
회사에서의 잦은 회식으로 난 덜컥 겁부터 났었다.
'와~ 어쩌지. 술을 그렇게 진탕 마셔댔는데'

그래서 그랬을까?
난 임신 3개월때 난소에 물혹이 생겨 왼쪽 난소까지 떼어내는 아가에겐 위험한 수술을 해야 했다.
그땐 " 이 아인 불행의 씨앗인가 보다. " 라는 원망까지 은비에게 했었다. 수술이 끝나고 아이가 유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모진 생각까지 했었다.
몇칠 후 초음파를 찍었는데.... 그 반디불같은 심장이
" 엄마, 그래도 엄마를 사랑해요. " 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 했다.
"아유~ 아기가 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요."
흐느끼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는 의사선생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땐 미안하단 말을 진짜 못했었지. 우리 딸에게..
은비야 그땐 정말 미안했어. 엄마가.
요렇게 이쁜 내 아가를 엄마가 원망하고 나쁜생각까지 했으니...
사랑해.~


은비만의 엄마, 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