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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알.콩.달.콩 - 23. 시어머니가 사주신 신발


BY 꼬마주부 2000-12-10

23. 시어머니가 사주신 신발

지난 화요일은 함씨와 꼬마주부가 살림을 차린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친정엄마는 결혼 후 줄곧 그 쪼꼬맣던 아이가 언제 저렇게 자라서 결혼까지 했나, 신기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그 날은 철딱서니 없는 게 결혼까지 해서 벌써 1년이 되었다니 신통방통하기도 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어요. 그건 시어머니도 마찬 가지 셔서 정작 우리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두 어머니는 1주일 전부터
"느그 결혼기념일인데 뭐 해주랴?" 하셨어요.
저는 우리 결혼기념일을 부모님이 챙겨 주시는 게 괜히 쑥쓰러서
"아이, 신랑도 가만 있는데 어머니가 뭘 해주신다구 그러세요.호홍
홍~~"그랬죠.

그러나 결국 우리 친정 엄마는 얼굴 하얀 사위가 입으면 넘넘 잘 어울릴 거라며 핑크빛 와이셔츠에 자주빛 넥타이를 선물하셨어요. 게다가 친히 쓰신 축하카드는 무뚝뚝이 신랑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죠.

그리고 울 시어머니는 결혼 때부터 신발을 사 주고 싶으셨다면서 저를 끌고 백화점에 가셨지요.
엄니는 "결혼 때 신발을 해 주면 그거 신고 달아난다고 해서 안 사줬는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리더구나. 지금은 뭐, 사주면 달아날거냐? 갈 때도 없을테니까 사 주는 신발 신고 집(시댁)에나 와라." 고 하셔서 한참을 웃었지요.

백화점 신발 매장을 한참을 돌아다녔어요.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이틀에 걸쳐 신발을 골랐어요.
그러나 결국 사지 못했어요.
왜냐면요,....엄니께는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가격이 어마어마 했거든요. 뭐 돈 깨나 있는 사람들한테는 한 번에 두 세켤레라도 살 수 있겠지만 주구장창 지하상가 슈즈하고만 친했던 저로서는 기겁을 할 만한 금액이었거든요.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내내 왜 이렇게 지하상가에 널려 있던 신발들이 눈에 밟히던지...
엄니는 "너, 비싸서 그런거냐? 가격은 보지 말고 맘에 드는 걸로 고르라니까." 하고 꾸중을 하셨지만 저는 도저히 겨울에만 신을 신발을 2십여만원이나 주고 살 배짱이 안 생기는거 있죠.
그랬더니 엄니께서는 "그럼...돈 줄테니 니기 맘에 드는 걸루 사거라." 하셨어요. 저는 속으로 "오예!"를 외치며 감사히 받았죠.
저는 엄니가 십만원만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봉투를 열어보았어요. 그랬더니 .... 세상에 십오만원이나 들어있는거예요.
깜짝 놀란 저는 신랑한테 전화를 때려서 "엄니가 십오만원이나 주셨어" 했죠. 그랬더니 신랑도 깜짝 놀라며 "엥? 그렇게나 많이? 반 나 줘라." 하는거예요.

......그래서 오늘 신랑하고 신발을 샀어요.
송내에 있는 보세 패션몰에 가서 겨울 신발을 골랐어요.
발목까지 오는 게 따땃하고 좋더군요.
가격은 ? 5만원. 깎아서 4만 3천원.
그리고 신랑이 며칠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소금구이"를 시동생을 불러서 함께 냠냠했어요. 정신 없이 먹었더니..허걱. 5만 1천원.
신랑한테 2만원 내 놓으라고 공갈협박 해서 제가 쐈죠.

그리고 집에 와서 컴 앞에 앉았어요.
대차대조표를 만들었어요. 왠 대차대조?
결혼기념일이 우리 둘의 결혼기념일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부모님이 우리를 결혼 시킨 기념일이기도 하잖아요.
양가 부모님 다, 맏이를 시집장가 보내신 거라서 1년 동안 걱정 많이 하셨거든요. 이것들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나...하시면서요.
그래서 부모님께 저희가 그 동안 살림한 내역서를 보여드리면 한결 마음을 놓으실 것 같아서 한달 수입,지출,통장 잔고,저축 현황,할부금...등등을 빼곡히 작성했어요. 그리고 얼른 부자가 되어서 양가 식구들이랑 다함께 여행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쓴 일기도 첨부했어요.

그런데 아까 신발 사고 소금구이 먹으면 5만원가량 남잖아요?
생각 같아서는 그거 몰래 숨겨 놓고 내 재산으로 만들고 싶지만
내일 시부모님이 오랫만에 산악회에서 등산을 가시거든요.

그래서, 작성한 살림대차대조표를 편지 봉투에 넣고 남은 5만원을 엄니 등산 가셔서 친구분들과 식사 하시라고 슬그머니 넣어서 도련님 편에 보냈어요....

엄니가 주신 십오만원으로 신발 샀죠, 배터지게 먹었죠, 엄니 용돈 드렸죠...와, 그렇게 하고도 2만 5천원 가량 남았어요~~~

엄니는 "너 싼 거 샀구나."하시면서 속상해 하셨지만 전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 높였어요.

"아니예요. 비싸서 깎기까지 했는걸요. 백화점에서 봤던 것 보다 훨씬 좋아요. 안에 가죽으로 덧대서 따뜻하고 편해요. 어머니 신발 넘넘 감사해요~~~"

저 꼬마주부는 올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끄떡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