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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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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BY 임진희 2000-12-09

송이는 점심을 먹고 한잠 자려다가 백화점 전단을 보고 생각 난듯

몸을 일으켰다.

사은품으로 주는 주전자를 타려면 오늘 꼭 가야만 했다.

지금 사용 하고 있는 노란 양은 주전자는 언니가 사준 것인데 보리차

끓일때 마다 유용하게 쓰이는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얘 , 아직도 이런것을 쓰고 있니

양은으로 만든것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나는 예전에 쓰던것을 전부

버리고 요즘 새로 나온 것으로 다 바꿨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웬지 보리차를 끓일때 마다 나쁜 물질이 함께

녹아 나오는듯 해서 찜찜 하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신문사이에 끼어 있는 백화점 전단에서 본 하얀 스텐레스

주전자가 생각 났지만 기한은 오늘 까지 였다.

점심을 먹고 나른한 몸을 소파에 기대면 사르르 잠이 드는데 그 ?은

잠은 송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달콤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생돈을 주고 구입해야 되고 무엇 보다도

이십만원으로 사고 싶었던 모자 달린 잠바도 하나 사고 주전자는

공짜로 받을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혼잣말을 하면서 달려 갔다.


직접 운전 하고 갈테니까 옷도 바꿔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다

파마한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 왔는데 뒤로 묶고 집에서 입던 그대로

세타만 걸치고 갔다.

얼굴은 아침에 세수한 맨 얼굴 그대로 였다.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에레베타를 타지 않고 에스컬레이타를

탔다. 기왕이면 일층부터 구경을 할까 해서 였다.

지하 일층엔 사람들이 많았다 .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반찬은

사야 밥을 먹을수 있으니 다른층 보다 항상 식품 매장에 손님이

많았다. 옷을 산 다음에 다시 들려야 겠다고 생각 하고 일층에 있는

에레배타를 탔다. 칠층에 있는 행사 매장에서 고르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수 있을것 같아서 였다.

에레배타 문이 열리고 맨먼저 그녀가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 한사람과

여자 한 사람이 들어 오는데 송이는 갑자기 감전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부인인듯한 사람과 들어온 남자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십여년 세월이 흘렀어도 잊을수 없던 그 사람이었다.

친정 부모님의 반대로 그와 헤여져 지금의 남편과 결혼 했지만 그의

소식은 지금까지 들을수도 없었고 누가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얼굴을 돌렸다. 아직 그는 알아 보지 못했는지 , 아니면 퍼질대로

퍼진 중년 부인이 된 그녀를 차마 아는체를 할수 없었는지 뒤 돌아선

송이의 마음은 불안 하기만 했다.

그는 왜 내리지 않는가

그때 함께 탄 여인이 입을 열었다. 여보 칠층 행사장은 구경만 하고

사층으로 내려가요.

옷은 역시 본 매장에 있는것을 사야 오래 입지 싸다고 사면 결국

입지 않게 돼요.

??은 향수 냄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고 사근 사근한 목소리

역시 품위가 있었다.

에레베타의 속도가 이렇게 더딘것을 처음 느꼈다.

지갑을 쥔손을 가만이 내려 보았다. 뭉툭한 손가락에 거친 피부가

그녀를 슬프게 했다.

잠시 밖에 나갈일이 있어도 항상 단정하게 치장을 하던 친구를 비웃

기도 했었다.

마음속에 자신감이 없어서 저렇게 몸차림에 신경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송이 였는데 지금 이순간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집안일을 하면서 입던 바지라 무릅도 나오고 걸쳐입은 스웨타도 너무

칙칙 했다.

동창 모임이 있는 날은 그래도 멋을 내고 나왔지만 볼일만 보고 들어

갈려고 아무렇게나 하고 나온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한층 한층 올라 갈때마다 안내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결국

송이는 그사람과 함께 칠층 까지 올라 왔다.

행사 매장입니다 . 라는 말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그 사람과 부인은

내렸지만 송이는 내릴수가 없었다.

안내리십니까 , 상냥하게 직원이 물었지만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주전자고 뭐고 빨리 달아 나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조금이나마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그 사람은 이제 송이의

마음 속에서 지워질것 같았다.

너무나 고상한 그의 아내를 본 송이는 자신의 몸매를 내려다 보며

서글픈 생각조차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남편이 생각 났다. 지갑에서 전화를 꺼냈다.

남편은 이 시간에 왜 전화 했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지만 송이는

싫지 않았다. 이런때 남편에게 전화 할수 있음에 감사 했다.

만일 남편이 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면 이런 순간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을까 ...

여보 저녁에 일찍 들어와요, 맛있는것 해 놓을께요.

아침에 출근하면 큰일이 없는한 저녁까지 서로 전화를 하지 않는

부부였다. 그 만큼 서로를 믿고 있다고 생각 하기도 했다.

친구중에는 모임날에도 몇번이나 핸드폰을 울려대는 남편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면 특별한 용무도 없이 그냥 확인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녀는 주전자는 받아오지 못했지만 집앞에 있는 생선 가게에서

남편이 좋아 하는 생태를 샀다 . 무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생태찌개

를 오늘 저녁에 소주를 곁들여서 남편과 함께 먹고 싶었다.

하필이면 그 사람을 만나서 주전자는 이제 물 건너 갔지만 그래도

내 남편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서 오히려 잘된것 같기도 했다

그가 나를 못 알아 보았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으랴,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