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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는가?


BY 블루 2000-11-01

엄밀히 얘기하자면 우리가 아니고 내가 과연 아버지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냐는 문제다.

우연일지는 몰라도 나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내 주위의 모든 아버지들 중 정상적인 아버지는 없다. 빚이 너무 많아 도망다니는 아버지, 집문서 팔아다가 첩의 가게를 차려주는 아버지, 여기저기 명의를 빌려주어 오도가도 못하는 아버지, 일하고 들어온 아내 바람났다고 패는 실업자 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이혼남, 실업자, 알콜중독자, 정신질환자이다. 나이는 올해로 50세. 창창한 나이이다. 처음부터 우리 아버지가 비정상적인 아버지는 아니었다. 아들이 뭐길래 아들보자고 애들을 네명이나 낳아서 젊은 나이에 고생을 하더니 그 스트레스를 모두 어머니한테 풀었다. 우리 어머니처럼 맞고 산 분도 드물것이다. 밥상이 이게 뭐냐고, 집에서 기르던 개가 아프다고, 막내가 거짓말했다고, 문 늦게 열어줬다고... 그리고 권투에서 우리나라가 졌다고 수없이 패댔다.

내 자아가 눈을 뜰 무렵인 중학교 때 어머니가 가출을 하셨고, 언니까지 나갔고 셋째는 정상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시설에 보내졌다. 물론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나오면서 나와버렸다. 아니 쫓겨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절대 정확하다. 막대인 아들은 아직도 거기에 남아있다. 난 집을 나와서 엄마에게 와버렸다. 엄마는 식당을 하고 계셨다. 물론 어머니도 미웠지만 이해할수 있기에 난 어머니를 사랑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일주일에 다섯번은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했다. 학교도 못가고 숙제도, 시험공부도 못했다. 주위의 신고로 아버지는 알콜병동이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막내와 함께 둘이 그렇게 살았을때가 가장 행복했다.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왔다. 어렵게 얻은 가게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래도 술마시고 구타하기는 그대로였다. 막내는 때리지 않고 나만 때렸다.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두고보자 다짐했다.

집을 나와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모으고 남자를 만나서 난 지금 결혼1년차 주부다. 결혼식도 혼수품도 신혼여행도 모두 내 돈으로 마무리했다. 내가 최고급으로 뽑아드린 양복을 입은 초라한 아버지도 내 결혼식에는 와 주셨다. 와서 하신 말씀은 결혼자금에서 남은 돈은 주고 가라는 말씀이셨다. 바쁜 와중에 그냥 넘겨버렸지만 그건... 슬.펐.다. 결혼 직후 술드시고 병원에 입원하셔서 전화를 하셨다. 지금 빨랑 입원비 가져오라고... 슬.펐.다. 그래도 그렇게 했다. 용서를 했다.

하지만 이젠 용서를 할 수가 없다. 얼마전 보호시설에 문제가 생겨서 뇌성마비인 동생이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난 아버지와 동생이 분명 같이 살수 없음을 알았고 나또한 시부모님을 모시는 처지라 지옥에 갈 것을 알면서도 다른 보호시설을 알아보는 도중 막내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마신 아버지가 셋째동생을 비오는 날 밖으로 내쫓아 없어졌다고. 며칠간 미친듯이 찾아다닌 동생은 한 보호시설에서 다 죽어가고 있었다. 병원으로 데리고 와서 한동안 웃음을 보이던 동생이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고통이란... 난 동생에게 말했다. 차라리 죽으라고. 그리고 용서하라고. 뼈만 남은 앙상한 동생일 말한다. 언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사랑한다고... 다행히도 어머니가 나랑 교대한 그때 어머니 곁에서 생명의 줄을 놓았다. 아버지 인생에 걸림돌이 된다던 그 동생이 진짜로 가버렸다. 그런 동생에게 난 죽어버리라고 했고...

이런 아버지를 용서해야 하나? 아님 나조차도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 되어버린 건가? 과연 내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지, 그럴 자격이라도 있는지 한심스럽다.

작은 방 한구석에서 화투와 텔레비젼만을 벗삼아 살아가시는 우리 시아버님. 예전의 죄값을 치루시며 갈곳이 없어 자식들에게 얼굴 한번 제대로 못들며 짐이 되어 살아가시는 우리 시아버님.

내 아버지의 미래를 보는 듯 머리가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