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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로 태어난 죄


BY 모란동백 2014-08-06

그때그시절  

장미희님 " 똑 사세요 !! "

육남매를 집에다 두고 엄마는 떡을 팔며 큰딸은 동생을 돌보고...

기억속의 장미희님 시청자들에게 제일 아름다운 부분으로 남아 있을것 같다.

 

난 여섯자매의 큰딸로 태어났다.

아주 어렸을적을 기억해보면 부모님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첫정이니까.

식모 언니도 있었고... 엄마는 어느글에서 표현 했지만 양장점 쥔장이었고

아버지는 동물병원원장님 이셨다.

상상해보면 그럴듯하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시절에 나의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나의 멘토는 식모언니였었고...그 언니가 나에게 고전무용을 가르쳐주었지만

아버지의 전공서적을 엿으로 바꿔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책이 없어져 온집안이 뒤집혔던 기억도 나고.

귀하디 귀한 일본산수술도구를 멍게하고 바꿔 먹었던

식모언니는 지금도 나의 뇌리속에 정확히 남아있다.

이사건을 알아챈 엄마는 식모언니를 요즘의 말로 잘라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다섯여동생들의 엄마가 되어버린 상황이 왔다.

 

초등시절 올망졸망 다섯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은 저 한구석에서 나 뒹글고..

숙제도 해야하고 복습,예습도 해야되고..공부를 좀 잘했다. 

젠장 왜 나는 그림을 잘 그린걸까 ? 선생님께서 미술책 어느 페이지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오라고 했다.

무슨 캠페인이 벌어지면 포스터를 그려오라고도 하고... ㅠㅠ

동생들에게 치여서 그려가지 못한 포스터 숙제땜에 선생님께 많이도 혼났었고..

어느 선생님은 목소리 곱다며 합창반에 들어가서 합창단원이 되라네. 

미술반 선생님과 합창반 선생님은 나를 두고 각축전을 벌렸나보다.

 

그럴듯한 집안배경... 그러나 나의 엄마는 내가  때묻지 않은 음색과 그림을 잘 그렸다는 사실도 모른다.

내나이 60 인데도 모르더라. 그저 착하고 성실했단건만. 

남편으로 부터 독립한다고 글 한번 쓰고 내나름의 힐링으로 들어가다

어렸을적 추억에 젖어 5동생중에 그래도 내가 가슴으로 낳은자식 한명 있었으니

47살짜리 미혼의 여동생 생각이났고  늘 궁금하고 걱정되던 내가 전화한통 넣었다.

 

각설하고....

짜증나고 히스테리 묻힌 여동생의 목소리가 나의 폐부를 찔러댄다.

버릇이 너무 없구나.늘 그랬지만.(골드미스의 한 이라 생각하고 )

나 13살때 태어난 그 여동생은 내가 업고 젖병 물리며 내품에서

고운 음성의 큰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 듣고 (엄마가 섬그늘에... ) 그동생이 밷어낸 배설물의 기저귀를 빨아가며 그렇게 내가 길렀다.ㅠ

엄마는 뭐했냐고.. 양장점에서 마나님들 옷만들기했지. 뭐, 잘먹고 잘살자 그때 그시절은 그랬다.

 

이어린 큰딸이 엄마가 줄줄이 낳아준 여동생들과 갓난이 다섯째와 아버지의 엄한 교육속에서 나는 주눅이 들어 이미 초등시절부터 엄마가 되어 있었다.그 다음해는 막내 여섯째가 태어났다.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초등학교와 중등때는 갓난이들 키우고

2,3,4째들을 챙겨서 저녁밥 먹인다고 정신없고...

생각만해도 어린 내가 어떻게 해내었는지. 그런데 엄마는 하나도 모른다. 모르쇠다.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부산의 명문여고를 합격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로 보내더라 .

그리해서 나의 고등생활과 이후의 서울생활은 이모네 집에서 시작되고..

지금 유명 연예인이 된 이모의 아들이 사촌동생인데 걔도 내가 업어 키웠다.  그런데 모른다. 내가 말을 안하니까 ㅠ 활발한 방송을 하는데 쟤도 똥기줘기 오줌기줘기 빨고 지네엄마 (이모) 미역국 내가 끓였는데..

활발한 방송 활동하는거보면 마냥 귀엽다.

 

나이가 먹어가고 세월이 흘러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하며 그 디딤돌로 해서 나의 애들을 잘 키워냈다. 난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나의 운명이 만만치가 않았다. 결혼생활내내 다툼이요 치열하게 살아내는 나를 보고 거지 발싸개같은 남편만나 화목하고 예쁜가정 일굴거라고 눈물로 살았건만 철딱서니 없는 남편이라는 남자는 지금도 뭐가 소중한지 모르고 바깥으로 나가돈다. 술이 신앙이요 테니스라켓이 인격이요 ㅠ

 

엄마의 부재로 졸지에 다섯여동생들의 엄마가 되어 훈육하고 교육했던 나는

엄한 언니의 모습으로 결혼후 흔들리는 언니의 모습으로 그렇게 남아 있나부다.

엄마에게 이 나이 먹도록 한번도 해보지 못한 내가 엄마를 가르쳤다.

 

" 엄마, 나도 엄마 입니다. 선생질하는 여동생이 그렇게 위대합니까 ?  엄마가 낳아준 다섯 여동생들이

지금도 내눈에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으로 보이니 그 심정 알기나 하십니까 ?  돌아가시전에 이 큰딸의 자존심 제대로 세워주고 짓밟힌 이 큰딸의 과거를 바로 세워주세요 ."

 

엄마의 대답은 형님만한 아우 없으니 그래도 네가 용서하거라.

엄마의 답변이다. 난 언제까지 늘 왜 참아야만 하냐구 ? ㅠㅠ

큰언니가 무슨 죄 이니?

소위 선생이라고 하는 애가 너무 버릇없어 전화를  했더니  무슨죄를 지었는지

받지를 않는다. 문자 넣었다.

언니가 언니다워야 된다는 잔인한말에 대해서 너는 동생이 동생다웠니 ?

그래도 내품에서 기른 자식같은 동생들이 큰언니 요즘 힘든고비 넘긴다고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거니 ? 아무리 그때그시절 막 낳아재끼던 시절에 첫번째 태어났단 죄로

동생들에게 도마위에서 난도질을 왜 당해야 하는데....왜 그래야 되는데 ... !!

선생이라하는 다섯째여동생이 부끄러워 이 글을 쓴다 고발하는 맘으로.......

싸가지 없이 구는 그 행동들을 나는 많이도 참았다 .큰언니이니까 ㅠㅠ 

난 큰언니로서 손색이 없었으며

지금도 내가 자랑스럽다. 나를 쏙 빼다 닮은 나의 다섯동생들 나름 잘살고 있다. 나만 빼놓코...

반듯하게 자란 동생들 내동생들이 자랑스럽다. 전화 한통 주지 않아도.. 미소 한번 던져주지 않아도..바라만 보아도 흐뭇한건 어렸을 적 추억때문

그래서 큰언니는 엄마이다.

 

아내의 자존감은 남편이 세워주는 법

어떤 넘때문에 내동생들에게서도 나는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엄마도 이제는 밉다. 정뗄려고 그러는지.

참으며 말없이 살아온 나를 엄마도 동생들과 한몫 했었다.

엄마 그래도 그건 아니지 ...치매도 아니면서 그러면 안되지.어린 날 

 딸 다섯명을 나에게 맡겨놓고...지금쯤은 나도 엄마께 고맙고 미안했다라는 말한마디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