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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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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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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맡겨야지


BY 매실 2014-06-27

실로 오랜만에 교회식구들과 함께 기도원에 다녀왔다. 

마침 청소년 목회를 하신다는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는데

마치 나를 위한 말씀 같았다.

 

자식은 그저 기도하면서 믿고 맡겨야지 내뜻대로 억지로 하려하면 안된다.

내 믿음 잘 지키고 헌신 봉사하다보면 어느 순간 잘 되어있을 것이다.

전에는 반신반의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점점 확신이 생긴다.

 

사실은 아침부터 애들 문제로 남편과 대판했었다.

나도 자식키우는 데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보니 그 동안 강력하게 내주장을 펴지못하고 살았다.

 

그러니까 남편의 요구사항은 점점 더 늘어만 가고 그 욕심이 그칠 줄 모른다.

이러다간 애가 가출을 하든 뭘 하든 뭔가 큰 일이 나겠어서

내가 요즘 남편이 한 마디 하면 더 펄쩍 뛰며 반대편에 서고 있다.

 

아들딸이 졸업반이거나 취준생이라 나도 좀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애들 자신이 제일 고민하고 있을텐데 남편의 조급증은 극에 달한다.

일관성 없이 이랬다 저랬다하면서 왜 자기뜻대로 안 되느냐고 난리다.

 

주로 집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겐 한창 젊은 나이에 방구석에 처박혀있다고 뭐라하고

친구 만나러 잠깐 나가면 지금 그러고 돌아칠 정신이 있느냐고 난리고

술도 안 마셔서 해떨어지면 곧장 집에 들어오는 애를...대체 어쩌라는건지.

그야말로 그게 조급증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디 가서 정말 스펙을 훌륭하게 갖춘 남의 자식이야기라도 듣고 오는 날이면

은근히 사람을 잡는다. 차라리 대놓고 직선적으로 말을 하는 게 낫지

 

웃기는게, 지금 그 집 이야기에 자극받아서 이러는 거냐고 하면

자길 뭘로 보고 그렇게 받아들이느냐며 더 펄쩍 뛴다.

단순히 질투심 많은 걸로 비치는건 또 싫은가보다.

자긴 어디까지나 자식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기 때문에

쓴소리도 하는 거란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애들만 잘 되면 자긴 아무래도 좋단다.

 

당신이 25살, 27살 때는 부모님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그렇게 시키는대로만 하고 살았느냐? 그땐 자신이 다 큰 어른인 줄

알지 않았느니까 아무런 대답을 못한다.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애들이 내 양쪽 귀에 대고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해주느라

여념이 없고 우리 셋은 언제나 하하호호 즐겁다.

나는 집이 그렇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가서 그 에너지를 쏟지.

 

그런데 남편은 저쪽 구석에서 왕따처럼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 앉아있다.

애들이 아버지와 대화조차 꺼리기 때문에...

언제나 교훈적인 말만 하는 아버지라서 입을 여는 순간 트러블이 생겨난다.

 

이제 머리 큰 자식들이 논리적으로 항변을 하면 말발이 딸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 나를 잡으려 든다. 애들에게 잔소리 좀 하고 야단 좀 치라고,

애들이 시행착오 겪는 꼴 그냥 두고보지 말라고.

사실 내가 조금이라도 야단을 치면 역성을 드는 게 아니라

애들을 더 혼을 내니 내가 아빠 앞에서 애들 험담을 하거나 야단을 칠 수나

있겠는가?

 

사람이 살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스스로 느끼는 것만큼 좋은 산교육이 어디있나?

탄탄대로로만 가면야 좋겠지만 그건 부모 생각이고 그저 조언이나 해줄 뿐이지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가되, 물을 강제로 먹일 수 있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애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란 말인지?

 

자꾸 말싸움을 하다보니 이젠 나도 점점 말발이 느는 것같다.

진작에 이렇게 말을 조리있게 할 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애들도 밖에 나가면 나름 엄친아다.

공부속을 한 번 썩여봤냐? 이성문제로 골치아프게 해봤냐?

술먹고 자기관리를 못 하고 돌아다니냐?

우리집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 잘 하면 된다.

자식들이 나중에 시집 장가갈 때 걸림돌이나 되지 말아라.

걔들이 좋은 집안 자식이더라는 소리 듣게 할 수 있겠느냐?

우리애들의 친구,선후배들의 부모들 잘나고도 잘난 사람들 많다.

그 사람들 그렇게 잘 나갈 때 우린 해놓은 게 뭐가 있느냐?

우리 애들은 눈이 없나? 귀가 없나? 그들과 비교하지 않는 걸 감사해야지.

그리고 나는 못 해준 것만 기억나고 미안한 일만 많은데

당신은 어쩜 그렇게 해준 것만 기억하고 서운한 것만 많으냐?

그리고 이미 우리애들이 이뤄놓은 스펙 따윈 인정 하지않고 갖지 않은 것만

요구하느냐?

당신은 그 잘난 학원에 취직했다고 눌러앉을 심산이냐고 난리를 치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애가 잘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지

그 결정이 뭐든 애를 좀 존중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나는 이 시골에도 이런 인재들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고 한 원장님 말이

너무나 감사하고 우리애들이 작게나마 인정받은 것같아 뿌듯한데

왜 그깟놈의 학원이라고 하냐? 중고생 가르치는 입시학원이 그깟 놈의 학원이냐?

당신 입으로 주경야독하라지 않았느냐? 그래서 파트타임 일자리 구했더니

공부하는 애가 일용직 근로라도 해야 된다는 얘기냐 뭐냐?

(사실 우리애들이 그런 알바도 학교때 잠깐씩 다 해봐서 장단점을 다 안다)

공부시간 확보하려고 그러는건데 도대체 뭐가 못마땅하다는거냐?

공치사 하려면 이제부터 돈도 절대 대주지말아라.

지들이 알아서 벌어 쓰게.

 

자기가 언제 공치사 했느냐고 펄쩍 뛰지만

기껏 없는 돈에 비싼 돈 들여 인강 신청해주려고 하는데 공부를 종일 하지 않고

자기가 볼 때 쉬었다고 난리면서 그게 공치사가 아니면 뭐가 공치사일까?

그럼 애가 초등생처럼 아빠 눈앞에서 공부하는 척이라도 매번 하라는건지 원.

공부할 때가 있고 쉴 때가 있는거지.

 

웬만하면 애 보는 앞에서 안 싸우려고 했는데

저놈의 인강문제 때문에 한 소리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벌어서 인강 신청하라고. 아버지 돈으로 하지말고.

그래야 너도 할 말이 있고 떳떳하다고. 급할 거 없다고, 차근차근 하라고.

 

아들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하겠단다.

 

급할거 없댔다고 남편이 또 소리지른다.

조급하게 굴어서 당신은 오십 평생에 이뤄놓은 게 뭐 있느냐?

나는 이렇다. 배째라 했다.

나도 오기가 있지

 

애가 너무 부모 말을 거역을 못 해서 혹시나 내가 잘못 인도할까봐 걱정이구만

때로는 부모말도 안 듣고 자기주장을 펴야 큰 일을 도모하지

부모 말에 무조건 순종만 하는 모범생 아들을 어디다 쓰겠다는건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내가 "아들아~ 너무 부모말에 순종해도 안된다. 때로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네 뜻을 굽히지 말아라" 이렇게 당부할까?

 

아들이 "네"하며 또 피식 웃는다.

 

아버진 이랬다 저랬다 자기말만 들으라 하고

엄마는 말을 듣지말래니 아들이 누구 장단에 춤을 추겠는가?

이게 뭔 챙피인지 모르겠다.

좀 더 현명하고 자식에게 귀감이 되는 아버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이 밖에 나가서는 엄청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니

나참 기가 막혀서....

교회에서는 청년부장을 맡으라고까지 하는 모양이다.

남들은 이 사람이 집에서 저러는 줄을 알까?

우리집 청년들에게나 좀 잘 하지.

 

말발로 남편이 아내를 이길 수 있나?

점점 더 입을 다물더니 알았다고, 당신 하라는대로 이젠 입을 열지 않을게.

당신 없을 때 아들과 단둘이 밥도 마주앉아 먹지 않을게. 한다.

 

내가 오죽하면 이런 주문을 하겠느냔 말이다.

 

며칠이나 그 약속을 지킬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엔 내가 확실히 이긴 듯하다.

다시 우리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이 끝난 게 아니고 잠시 휴전상태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식의 미래일을 누가 알겠는가?

살아보니 그렇더라. 뜻하지 않게 일이 잘 풀릴 수도 있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일들도 종종 일어나고.

 

추가>>

남편이 딱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당신들은 물려받은 부모재산이나 야금야금 팔아가며 일도 안하고 살면서

자식들에게는 바라는 게 워낙 많았다고한다.

자식들 제대로 입히지도 못하고 배까지 곯리면서 뭔 주문이 그렇게 많았을까?

어렸을 적에는 공부하라고 늦은 밤까지 잠도 못 자게 하고

어머니가 뒤에서 지키고 있었단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고 피곤해도 하는 척만 하고 있었다고.

중학교 때도 집에서 공부하는 척하느라고 정작 수업시간엔 딴 생각만 했다는데

다른건 모르겠고 한자나 영어 국어 상식을 보면 정말 혼자 독학한 티가 난다.

가끔 쓰는 순서나 문법이 엉망이라는 얘기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이 집중력도 있고 공부머리가 나보다 좋은 편인데

저렇게 강제로 교육열(?)이 높은 부모만 아니었더라면

가만놔둬도 더 잘 됐을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자기가 똑같이 재현하고 있으니

이래서 비극은 대물림이 되는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