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에 친정에 다니러 간 날,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던 남편이 부른다.
"여기 이게 고장이 났네? 드라이버 찾아와봐"
'헉 별일이야~ 집에선 뭐가 고장나도 고칠 줄도 모르고 못 하나 박을 줄
모르는 사람이 누구 앞에서 주름을 잡으려고 드라이버를 다 찾아?'
남편은 기계치에, 길치에, 하여튼 솜씨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고
반면에 친정식구들은 그런 것에 남다른 재주를 가졌는데
아니 왜 집에서도 안 하던 짓을 한다는거야? 괜히 망신만 당하면 어쩌려고?
걱정스러우면서도 난 드라이버를 찾기 시작했다.
안방에 계시던 아버지가 나오시더니 "뭐가 고장이 났어?"물으신다.
잠시 후 그건 고장이 아니라 최첨단(?) 세면기 마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도 세면기를 막는 마개가 그렇게 터치식인 것이 있는 줄 몰랐는데
낼모레 여든인 우리 아버지가 그런 걸 사다 고쳐놓으셨을 줄이야~
"어머...거참 신기하다...어머 재밌다" 나는 그 마개를 눌러보고 또 눌러보았다.
한 번 누르면 닫히고 또 한 번 누르면 열리는 식인데 난 그런 걸 이제야 처음 봤다.ㅎ
내가 하도 신기해하니까 여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냐며 아버지가 웃으신다.
'헉! 우리 아버지보다 내가 더 구세댄가?' 좀 충격이다.
*
여동생이 얼마전에 새차를 샀는데 나는 그저 겉모양만 훑어보았을 뿐
별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신기한 것을 보았다.
얼마전에는 동서가 소형차를 샀는데 자동차키에 자동개폐 기능이 다 달려있어서
신기했고 또 운전석 높낮이가 다 조절 돼서 나처럼 덩치 작은 여자들도
자기 신체에 딱 맞게 의자를 조절할 수 있어서 참 편리하다 생각했는데
내동생차는 중형이어서 그런가? 더 신기한 것이 많다.
자기집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배웅하느라 핸드백이며 짐을 들어다 주는데
"어? 안되네. 이리 가까이 와봐" 하더니 멋모르는 내가 다가가자
트렁크를 딱 눌러 여는 게 아닌가?
"어?자동개폐 기능이 있는 자동차 키의 버튼을 눌러 개폐하는 것이나
시동을 거는 것도 편리하다 했는데 이건 뭐 아예 키를 꺼내지도 않고
맨손으로 눌러?"
"ㅎㅎ이런거 처음 봐? 키를 가방 안에 넣고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차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열게 돼있어"
"어머 그래애? 신기하다. 아주 편하겠다. 난 짐 잔뜩 손에 들고
키를 찾아서 누르고 그것도 안 되면 키를 꽂아서 돌려야만 되는데"
"이거 차문도 그렇게 열어. 운전도 그렇게 해"
"헉!그래애? 언제까지? 가다가 키 꽂아?"
"ㅎㅎ목적지까지. 키 안 꽂아. 키 꽂는 데가 없어, 아예"
"뭐야? 키를 안 꽂고 운전을 어떻게 해?"
"ㅎㅎ가방 안에 키가 있잖아. 그러면 그냥 차에 달린 버튼을 눌러서 시동 걸어
이젠 그게 습관이 돼서 남의 차를 타도 키도 안꽂고 버튼을 찾아.ㅎ"
거참 신기하다. 정말 신기하다. 키를 꽂는 곳이 아예 없는 자동차라니?
나는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만 쓰면 신세대인가 했더니 내가 이렇게 구세대였나?ㅎ
자동차 사본 지가 하도 오래라 요즘 차가 이렇게 옵션이 잘 되어 나오는지 정말 몰랐다.
나만 몰랐나 해서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는 줄 알았느냐고 물어보니
내주변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긴지 나와 똑같은 반응이다.ㅎ
내가 너무 시골에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