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는데 무언가 날아와 내 머리위를 사정없이 내리치고 떨어지는
물체가 있었다.
순간 너무 놀라고 좀 아프기도 해서 멍하고 서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뒤를 돌아다보니
전선을 정비하는 중인지 사다리차 같은 걸 타고 있는 인부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웃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죄송합니다" 하는데 미안한 기색은 전혀없고
여전히 히죽히죽 낄낄~
나는 너무 놀라고 머리도 좀 아픈데 어쩜 저럴 수가 있을까?
내가 무엇에 맞았나 내려다보니 저만큼 나가떨어진 굵은 철사줄 토막이 보인다.
다가가 주워보니 제법 굵은데다 겉에 딱딱한 플라스틱 커버도 있다.
그게 그냥 슬쩍 떨어진 거라면 별로 아프지 않겠지만 그 인부가 강제로 잘라내다가
튕겨지며 떨어진데다 꼭대기에서 내려오면서 가속이 붙어서 아픈 게 당연한데
그 사람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팩 질렀다.
"아니 아저씨 지금 웃음이 나와요? 이걸로 한 번 맞아 보실래요?"
그 순간 화도 나고 놀란 마음에 도로 집어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웃음이 가라앉지 않는지 슬쩍 돌아앉으면서 전혀 진심이 담기지 않은 어투로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는데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을 하는데 이 무더위에 가족들을 위해 돈 벌자고
저 꼭대기에 매달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참자. 나는 믿는 사람이니까
남에게 나쁘게 대하지 말아야지.
그 짧은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막 교차하고 있었다.
더 소리를 질러봤자 내 작은 목소리가 제대로 위로 전달될 리도 없고
저 사람이 자기 잘못을 느끼게끔 설득시킬 방법도 없고 자꾸 말하다 보면 나도
좋은 소리가 안 나가게 되고 그러면 저 사람도 기분이 상해서 미안한 마음이 생기려다가도
싹 가셔버리는 게 아닐까?
뉴스에 보니 지나가다 공사장에서 벽돌 맞고 숨지는 사람도 있던데
내가 다친 데도 없고 살짝 아픈거야 좀 있음 가라앉겠지
그냥 돌아서는데 바로 앞 위쪽에 매달려있는 다른 인부가 크게"우이씨~~~"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 더위에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겨우 그까짓것 가지고
시비야?여편네가.' 이런 뉘앙스가 담긴 것같아 더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ㅠ
그럴 때 정말 미안한 얼굴로 죄송하다고 사과만 했더라도 머리가 아프다가도 안 아파졌을텐데
어쩜 그렇게 사과할 줄 모를까?
분한 마음이 집에 오는 내내 가라앉지를 않았다.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이르니 첨엔 좀 놀라다가 멀쩡한듯한 내모습을 보곤
"에이 그럴 땐 그 자리에 쓰러졌어야지" 이러구 농담만 한다.ㅠ
아니 그까짓 작은 철사쪼가리 맞고 쓰러지기엔 내 양심이 허락지 않지.
그냥 그가 나중에라도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나한테 미안해하기를...
내가 더이상 나쁜 막말 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준 것을 고마워하기를...
잠깐 기도했다.
인터넷에서 본 끔찍한 이야기를 아들이 들려주는데 그야말로 진심 담긴 사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시츄가(원래 시츄는 순한 편인데 안 그런 강아지도 있나보다) 어느 집 아기 발을 물었단다.
화가난 부모가 개 주인에게 따졌더니만 사과는 대충 한 모양인데
돌아서서 나오는 부부 등뒤에서 "그까짓 조그만 개가 물면 얼마나 물었다고 저 난리야?" 이러구
혼잣말을 했단다.
그걸 들은 애기 아빠가 시츄를 잠깐 보자고 하더니 데리고 나가 12층에서 던져 죽이고는
대물손괴죄로 신고할테면 하라고 했단다.헉!
사과를 진심으로 안하고 그 따위로 해서 남을 더 속상하게 한 사람이 우선 나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차라리 주인을 때리든지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를 어떻게
산 채로 밖에 내던져 죽일 수가 있을까?
그것도 그 누구보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내 자식에게 나쁜 영향 같은거 없기를 바라면서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야할 어린 아기 아빠가...
그 일을 당한 개주인은 얼마나 독한 마음을 품고 상대에게 두고 두고 저주를 퍼부을지
짐작이 가는데 그래서 서로에게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내가 보기엔 둘 다 똑같이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