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시동생 군대 가려고 휴학계 낼 때 너희 시아버지가 따라오셨더라ㅎㅎ"
라고 친구가 놀렸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그 얘기하면서 웃는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시골 할아버지 같은 분이 아들이 다 커서 군대 가려고
휴학계 내는데까지 따라가신 게 무척 의아했던가보다.
시동생은 짐작컨대 아주 질색팔색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해서 함께 갔을텐데
지금이야 자식수가 워낙 적다보니 헬리콥터 부모,캥거루 부모 그 종류도 다양하다지만
그 시절만 해도(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드문 일이라 시동생이 친구들 사이에서
참 부끄러웠겠다.
그 일은 내가 시집오기 직전의 일이고 시집와서 보니 형제간 나이차가 많아서
남편과 띠동갑인 막내시동생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얼마나 과보호와 간섭이 심했던지
집과 학교 가고 오는 길 밖에는 그 좁아터진 춘천바닥 지리를 전혀 몰라서
길이라도 잃으면 집도 못 찾아올 지경이었다.
길눈이 어두운 편이긴 하지만 학교 끝나면 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고 있는 아버지를
거역하지 못하는 아주 착하디 착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와서 집에 도착할 시간에 도착을 안하면 교무실에다 전화까지 하셨다.헉!
다 큰 남자고등학생을 집에 십분 늦었다고 학교에 무슨 일이 있느냐?
우리애가 아직 집에 안 왔다. 그런 전화를 하면 학교측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ㅎ
아직 해도 떨어지지 않은 훤한 대낮에 그러니(네다섯시쯤?)
그를 잘 아는 담임선생님이 아니라면 무슨 큰 문제아인 줄 짐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땐 저런 시동생이 커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지 그게 참 걱정스럽더니
그래도 직업군인으로서 제앞가림을 하고 사는 게 용하다.
하지만 길눈이 어두워서 여러 가지 고생을 많이 했다는 소린 한다.
하도 다녀보질 않아서 길눈이 더 발달하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친척집에도 생전 보내지 않으셨단다.
가다가 차사고 나면 어떡하냐? 배 뒤집어지면 어떡하냐? 하면서....ㅎ
내남편이 회사에 출근하고 나면 별일도 아닌 것을 빨리 회사에 전화해보라고 난리였다.
아니 아내가 일터에 있는 남편에게 별 용건도 없이 전화를 걸어도 말려야할 분이...
시어머니도 가세해서 "너는 그렇게 사람이 무심하니? 남편이 직장에 가서 잘 있는지
전화도 못 해보니?" 아이구....
나중에 남편에게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기절초풍을 한다.
누굴 곤란하게 만들려고 일과시간에 바빠죽겠는데 전활 하냐고....ㅋㅋ
시동생들은 과보호가 너무 싫었던지 본인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말 잘 듣는 모범생 첫째아들인 내남편은 싫어하면서 닮는다더니 너무 많이 닮았다.
애들 학교다닐 땐 빨리 촌지들고 학교 가보라고 채근을 하질 않나?ㅋ
자기 학교 다닐 땐 부잣집 아들이랑 차별대우 받아서 우등상도 뺏겼는데 우리애들도
그러면 어쩌냐고?ㅋ 아이고....
그 사이에서 내가 중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라
옳지 않은 일은 끝까지 안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부분은 떳떳하다.
그런데 아들을 군대 보내고 나서 한 번 빵~ 터져버렸다.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혼자만 아들 군대 보낸 것처럼 눈물을 꾹꾹 짜고ㅋ
아들이 자대배치 받게 되자 아들보다 먼저 그 부대를 찾아가 사전답사를 하질않나?
그러더니 소소한 편법을 저질러 결국 아들을 완전군장하고 연병장 도는 기합을 받게 만들었다.
군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을 아버지가 저질렀기 때문이다.ㅠ
선임에게서 "너는 여기가 아직도 학굔 줄 아느냐?"는 소리까지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는 줄 아느냐고
다른 사람들도 너무 신기한 물건 보듯이 쳐다봐서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아들이 아직까지도 원망을 한다.
나중에 울아들이 그런 찌질한 놈이 아니라는 게 밝혀질 때까지 무척 곤란했나보다.
누가 아들 군대보내고 부대에까지 참견을 하고 나서겠나?
보통 아버지들은 마음이야 그렇다해도 함부로 나서지 않고 아들에게 맡겨둘텐데...
그러니 그들에게 이 집 부자지간이 얼마나 신기해보였을까?
밤새 기껏 힘들게 경계근무 서고 자려고 돌아왔는데 기합받을 일이 두 번씩이나 연거퍼 기다리고 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 줄 아느냐고.
나는 엄마만 믿었는데(아빠 단속 좀 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입대했었다ㅎ) 엄만 도대체 안 말리고
뭐하셨느냐고. 수수방관한 엄마도 똑같이 나쁘다고.
아니 내가 말릴까봐 나도 모르는 새에 저지른 일인데 난들 어떡하냐고요?
최근에 함께 TV를 보는데 군대 처우에 대해서 어느 아버지가 나와서 항의하는 내용이 방영되고
있었다. 들어보니 정말 분개할 일임이 틀림없다.
그 때 남편 왈,"아니 저 아버지 저렇게 나와서 다 말하면 아들은 남은 군생활을 어떻게 하라고?
곤란해질텐데....아혀..."
그러자 아들이 그런다
"아버지, 다른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해도 아버진 그런 말할 자격이 없어요. 아셨죠?"
지금이야 웃지만 아들이 겨우 작대기 하나 단 이등병 때 집에 전화해서는
울고 불면서 "내가 정말 군생활 멋지게 잘 해내려고 했고 그럴 자신도 있었는데
아버지땜에 꼬였어요.엉엉~" 하던 옛날 얘기 나올까봐 그런지 입을 꾹 다문다.ㅎ
평소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걱정할까봐 숨기고
"저는 잘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 감기 조심하세요" 그러던 아들인데...
자신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같기도 하다.
알고서야 그렇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