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남짓한 짧은 유럽여행을 마치고 친구가 돌아왔다.
다녀와서 시차적응도 안됐을텐데 곧바로 출근해서 밀린 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친구를
막 졸랐다. 어땠는지 소감을 말해달라고.
내가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그 친구 부부는 가족끼리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여행을 많이 다녔던지라
새삼스럴게 없는데 내가 왜 이 난리인지...?
몇 년 전에는 서남부유럽을 다녀왔다고 했는데 이번엔 동유럽쪽이라 어떤가 궁금하기도 했다
전에는 그냥 '좋더라' 한 마디면 끝이던 친구가 체코에 홀라당 반해서 말수가 많아졌다.
넘 멋있더라. 너도 꼭 한 번 가봐라. 프라하도,부다페스트도 정말 좋아.
오래된 건물에 지금도 사람들이 그대로 살고 있어서 문화유적이 멀리 느껴지는 게 아니라
생활자체더라. 너무 멋있더라. 한마디로 반했다.
돌아오면서 또 다시 가고 싶더라.
음식은 뭐가 맛있더라. 중간에 김치찌개도 한 두번 사먹으면서 다녔고
어디 가나 있는 중국식당에도 자주 갔다. 먹거리는 크게 걱정 안해도 돼.
예전에는 우리나라 대학생 배낭여행객과 일본인들이 많더니 지금은 눈에 안 띄더라.
어디를 가든지 중국사람들만 엄청 많아서 아쉽더라.
인천공항엔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니 다 어디로 갔을까?ㅎ
간접경험이라도 나에겐 너무나 재밌는 여행후기다.
인천공항에 있던 사람들? 동남아시아로 다 갔나? 요샌 그리로 많이들 간다고 하더니...ㅎ
친구는 여행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 신랑이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지금도 꿈이 세계일주란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곳을 많이 보고 죽는 게 꿈이라는...
여행계획을 짜고 예약을 하는 건 전부 그 신랑의 몫이어서 내친구는 몸만 딸려가면
된단다.
정말 편하겠다.
나는 내가 다 짜느라 몇 날 며칠 머리 써야 하고 남편 양해를 구해야하고
남겨질 남편 먹거리며 회사일이며 다 정리정돈을 해야만 떠날 수 있는데...
물론 여행이란게 계획단계부터 설레고 행복한건 사실이지만.
너 남편 잘 만났다. 했더니
음 예전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좀 그런 생각이 들어.
(그 친구도 종갓집 맏며느리로 죽게 고생했기 때문에 지금은 포상휴가인 셈이다)
여행을 안할 땐 잘 몰랐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가 있더라.
가면 갈수록 자꾸 또 가고 싶은 데가 생기고 간 데도 또 가고 싶어.
나도 그 기분 알 것같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다음 여행 계획 세우는 기분을...
그 친구가 무슨 떼부자여서 그렇게 여행을 많이 자주 다니는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서민일 뿐인데 평소에 외모나 겉치레에는 너무한다 싶을 만큼
투자를 안 하고 의식주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집장만이나 기본적으로 해야할 것들의 불문율이 있는데
그 집은 그걸 보기좋게 깨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걸 더 얻은 것 뿐이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 제각각이고 그건 자기의 선택사항이니까.
젊었을 때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늙어지면 못 노나니...여행은 젊어서 다녀야지
늙어서 다니면 안쓰러워" 그래서 갸웃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대별로 여행느낌이 다 다를 것같다.
어렸을 적 다르고 젊었을 적 다르고 늙어서 다르고...
일도 젊어서 해야하는 거지만 즐기는 것도 늙은 다음으로 미루기만 할 게 아니라
젊어서 부지런히 병행해야할 것같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든다.
그런데 마지막 말에는 내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늦동이 아들이 군대에 가는 그 시점에 두 내외가 1년간 세계일주를 떠나기로
작정을 했단다.
아니 군대가면 휴가날만 손꼽아 기다리는데 아들이 모처럼 휴가받아 집에 와도
엄마 아빠는 해외여행 떠나고 없으면 너무 억울하고 서럽지 않을까?
안그래도 군대에서 혼자 고생하는 게 억울한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건 너무 했다.
'아들 군대 갔다오거든 가든지 그 전에 가~' 했더니 '휴가 나오지 말라면 되지 뭐' 한다.
쿨하다.ㅎ
그 집 아빠가 군대경험이 없어서 아마 군생활의 고단함이나 애환을 잘 몰라서 그럴게다.
그 때 되면 아마 아들이 애잔해서 아무데도 못 가고 전전긍긍할지도 모르면서...ㅎ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