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우리 매리는 우리와 한 식구처럼 살게 되었다.
한 침대에서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운동하고...
아직도 나는 혀로 핥는 것은 싫어하는 편인데
우리딸은 사람과 개를 구분하지 않는다.
강아지가 핥으면 아예 자기손을 강아지 입속에 넣고 잠자코 있으니...윽
아무리 예뻐도 자기 똥코도 혀로 핥고 온갖 것을 다 혀로 핥는 놈인데...
아침에 딸에게 과일주스를 갈아주고 돌아섰더니 제가 반만 먹고 나머지를
매리에게 먹이고 있었다.
혀가 컵 안에 까지 날름날름~ 으악~!놀래서 더럽다고 난리를 치며
병균이 어쩌고 저쩌고 했다고 우리딸 삐져서 아침도 안 먹고 학교에 갔다.ㅎ
그렇게 사랑스러운 매리를 더럽다고 했다고 그까짓거 설겆이 하면 되지
도무지 엄마의 반응을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생전 안하던 말대답까지 하고.
밥을 풀 때도 강아지를 안고 퍼서 개털 날린다고 뭐랬다고 싫어하더니..
컵을 모두 팍팍 삶았다.
예쁜건 예쁜거고 이건 너무 심하다.
매리는 우리식구들이 하나 하나 돌아오면 현관에 달려나와
몇 분간 두 발로 펄쩍 펄쩍 뛰다가 발냄새를 맡기도 하고 몸부림을 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반겨준다.
항상 이런 세리머니로 누구보다도 더 우릴 반겨주는데 우리집에 세식구가 사는 걸 아는지
누구라도 한 사람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면 꼭 현관 근처에서 기다리며 잔다.
그러다 깨서 하염없이 현관문을 바라보고 또 졸고.
마침내 세 식구가 다 집으로 돌아와야만 제자리인 남편 곁으로 간다.
우리집에서 남편이 가장 강아지를 예뻐해서 아침 저녁 밥을 주고 나몰래 마음가는대로
간식도 많이 주고 날마다 운동시키고 목욕을 시키는 담당이니까
우리 매리에게 있어서 남편이 1순위다.
과일을 워낙 좋아해서 싱크대에서 과일울 깎는 눈치만 보이면 멀리서도 쏜살같이 달려와
점프를 얼마나 잘 하는지 그 조그만 덩치로 싱크대를 훌쩍 뛰어넘을 태세다.
취향도 분명해서 수박을 자르고 있으면 되돌아가고 참외나 토마토를 깎고 있으면
줄 때까지 스카이 콩콩 처럼 펄쩍 펄쩍~ 뛴다.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괜찮은데 문제는 우리 가족이 한사람씩 외출을 할 때 생긴다.
딸이 먼저 나가면 그냥 욱욱 거리며 울음을 참는 편인데 그다음 남편이 나가고 나면
'으~~앙~~~억억'하고 울기 시작해서 그쳤다가는 또 울고 다시 생각해가며 또 울고
무슨 강아지가 멍멍 짖지를 않고 으~~앙~~으~~앙인지 원
앞집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아랫집 사람들도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
우리 매리를 만나면 무척 예뻐해주는데 오직 윗집 사람들은 볼 때마다 낮에 개가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어떻게 조치를 좀 취해달라고 한다.
밤에는 우리 가족이 다 있으니 울일이 없는데 낮에 몇 번씩 우니까..
그렇다고 다른집 개처럼 멍멍 큰소리로 짖는게 아니고 저렇게 울 뿐인데...
우리는 매리의 우는 모습도 귀여운데 남들이 시끄럽다니까 최대한 울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모두 바깥 활동을 하다보니 떼어두고 나올 수밖에 없는데 낮에도 가끔 운다니
성대수술을 해줄 수도 없고-아파서 고생하고 돈도 드니까- 생각다 못해 내가 데리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겨울에야 추워서 마당에 둘 수가 없지만 지금은 여름이니까 가능할 것같아서.
남편은 개가 좀 울기도 하고 그렇지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냐고 하는데
에이...이러다 민원 들어가고 관리소에서 문제삼고 이웃간에 분쟁 생기면 서로 골치아파지니까
그러기 전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어서 내가 우겼다.
사실 좀 서운한건 사실이다.
우리는 그 집 소음을 오랫동안 참아왔다.
꼭 밤10~11시만 되면 온집안을 청소하는 청소기 소음, 바닥이나 가구에 탁탁 부딪치는 소리
왱왱 기계음...간혹 싸우는 소리 물건 던져서 굴러가는 소리
그 청소기 소리 때문에 한동안은 아주 노이로제가 걸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일하고 밤늦게 들어와서 어쩔 수가 없나보다 하고 말 한 마디 안하고 꾹꾹 참았는데
어쩜 자기네가 우리 괴롭히는 줄은 모르고 당장 저럴까 싶다.
그래도 강아지 우는 소리를 문제삼기 시작하면서는 저 청소기 소리는 좀 준 것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이 동네는 시골이라 그런지 남에 대한 배려도 없고 또 남들이 그걸 문제삼지도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밤12시가 넘도록 바로 코앞 놀이터에서 애들이 소리소리 지르고 뛰고 별짓을 다해도
뭐라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인심도 좋아) 새벽 2~3시에 젊은 애들이 술먹고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누구 하나 항의하는 주민도 없다. 경비아저씨는 대체 뭐하시나?
서울같으면 난리났을텐데...
나는 언제쯤 저 소리가 멈출까? 누군가가 항의할까? 아무리 기다려도 다 나처럼 생각하고
기다리고만 있는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실컷 저희들 하고싶은대로 다 하다가 지쳐야만
그 소리가 사라졌다.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누군가가 반상회에서 제안이라도 했는지 소음이 많이 준 편이다.
매리를 데리고 나오려니 늘 하던대로 두고 갈 줄 알았다가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무척
흥분한 상태로 길길이 뛰었다.
차에 타니 내무릎에 앉아서 옮겨갈 생각을 안한다.
운전하는데 여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두었다간 에어백노릇을 시키는 게 될까봐
야단을 쳐서 다른 자리로 가게 했더니 그제야 조금 조용해진다.
우리 매리는 순하고 착하긴한데 좋게 말해서 발랄 명랑하고 나쁘게 말하면 아주 정신사납고
천지분간을 못하고 먹어도 먹어도 거절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식성이 너무 좋은 강아지다.
집에서 생전 묶어놓지 않고 풀어 키우다가 회사에 와서 마당에다 자리를 깔고 묶어놨더니
아침 내내 풀어달라고 아주 발광을 하다가 이제 간신히 잠이 들었다.
앞으로 날마다 데리고 다니면 익숙해지겠지?
다만,매일 매일 목욕을 시켜야하는게 문제다.
남편 덕분에 내가 뒤늦게 애견인의 길로 들어서서 이게 뭔 고생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쁘긴 엄청 이뻐서 생전 안 보던 TV동물농장까지 팬이 되었다.
유기견의 애처로운 눈빛을 보거나 강아지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두뇌도 좋고 꾀가 말짱해서 웬만한건 다 아는데 사람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 되는 동물이
너무 불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