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또래들에 비해 사고가 많이 열려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데
딸과 대화를 하다가 역시 나는 구세대구나 느낀 적이 있다.
무슨 드라마인가 함께 보다가 딸이,
"아니, 자식 낳고 안 낳고는 부부 자신의 문제인데 그걸 왜 부모가
나서서 낳아라 말아라 몇을 낳아라 그럴 수가 있어? 그런 게 어딨어?
낳고 싶으면 낳고 둘이서만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다 자기네가
결정하는거지. 그건 가장 심한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인데.." 이러면서
막 흥분을 한다.
물끄러미 보던 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할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궁색하게도 이렇게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시부모들이 더 고루해서 그랬고
지금은 한 둘 밖에 안낳아 키운 자식을 결혼시키는 네엄마 아빠 세대가
더 자식에게 애착을 느껴서 더 간섭하고 싶어하고
헬리콥터 부모 노릇을 하고 싶어해서
요즘은 더 심하게 간섭하는게 한국 현실이야.
그게 옳은건 아니지만 그래.
우리나란 결혼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가족간의 문제라고 하는 게
바로 그래서야.
부모 자식이 아주 긴밀하게 엮여있거든.
자식을 못 낳으면 할 수 없는 거지만 낳을 수 있는데도 일부러
안 낳는 자식부부를 이해할 부모는 한국에 아마 거의 없을거야
너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와 엄청 부딪친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젊은 사람이 어른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지.
평생 그렇게 살아온 어른을 바꾸려고 하면 그게 가능하겠니?
그리고 연애를 할 때도 실증이 나는데 부부가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반드시 실증날
때가 있는 법인데 그럴 때 적당한 시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자식을 끈으로 더 끈끈하게 부부애가 이어지기도 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르는대로 순리대로 사는 게 좋아"
내딸은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시집가면 아이를 최대한 많이 낳겠다고 말하는 앤데도
내가 흥분해서 말을 길게 했다.
"내친구네 이모는 일부러 아이를 안 낳고 사는데 이모부가 이모에게 엄청 잘 해준대
그렇게 사는 것도 좋지뭐"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곧이 안 들리고 '그게 언제까지 가겠니?' 요런 소리가 나오려하니
역시 고루한 엄마여서 그런가?ㅎ
/
딸이 대학에 합격한 직후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이란 걸 한다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니 애도 아니고 이제 대학생인데 무슨 학부모까지 오래? 입학식도 아니고
오리엔테이션을? 그러면서도 궁금해서 우리 부부는 참석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그 날 아침 딸이랑 함께 나서려는데 딸의 옷차림새를 본 우리는 경악~!
진작에 아주 밝은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도 못마땅하던 차에
눈에는 스모키화장을 하고 쫄바지와 짧은 치마로 된 하의를 입고
위에는 징 박힌 가죽자켓에, 역시 수많은 징이 박힌 가방을 어깨에 메고
양말이나 티셔츠로 군데 군데 빨강색 포인트를 준, 영락없는 힙합전사 차림
왜 옷이 이렇게 야하냐고 뭐라 하니 딸이
"까만색이 뭐가 야해? 어디 노출한 데도 없구만 도대체 뭐가 야하다는거야?
야하다는 단어는 이런 때 쓰는 게 아니잖아" 이러구 박박 우겼다.
평소의 조신하고 나서기 싫어하는 딸의 성격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차림이라
아주 전위적인 사고를 가진 날라리로 보였다.
이왕 집 나서는 시간에 기분 상하게 해봤자 서로 좋을 게 없겠어서
농담삼아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어라~'하고 전철을 타고 학교로 향했는데...
학교에 가보니 역시나 울딸만 너~~무 튀는 차림새였다.
약 100여명의 같은 단과대 학생들이 다들 어쩜 '나는 공부만 하는 범생이에요'
이런 얼굴과 방금 교복을 벗은 고딩같은 모습으로 가득 앉아있었다.
머리모양은 고등학생보다 더 조신한 모습들...ㅠ
그 속에서 우리애의 밝은 갈색머리는 완전 노랑머리로 보이고
스모키화장은 어찌나 진해보이는지...
마치 '난 날라리 재수생이에요'이런 모습이었다.ㅠ
흘끔흘끔 곁눈질 하고 인상까지 쓰는 몇 몇 엄마들 속에서 우린 의연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내속으로 낳은 자식이래도 내맘대로 못 하는 것을..
그 날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우기던 딸이 한 학기가 지나자 고백을 했다.
그 날 자기가 남들에게 빠지지 않으려고 잔뜩 멋을 내고 간건데
다른 애들이 남녀불문하고 너무 꽉막힌 모범생들같은 차림을 하고 와서
흠칫 놀랬다고, 그리고 나중에도 친구들이
"너 그 때의 그 노랑머리지?그 날 너 장난 아니더라~" 이래서 첫인상을 망쳤다고...ㅎ
아무리 조신하게 있어도 다들 안 믿어준다고...그 때 자기가 그렇게 튀었냐고.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말해주었다.
"그런 와중에 끝까지 잔소리 안하고 참아준 너희 부모가 참 대단한 거야
옆의 다른 부모들이, 특히 아들 가진 엄마들이 인상 쓰는 걸 눈치채고
얼마나 민망했는 줄 알아? 아마 속으로 혀를 끌끌 찼을거다."라고.
이후에도 딸과 부딪칠 일은 많았다.
짧은 미니스커트나 허벅지까지 다 찢어져서 맨살이 보이는 청바지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중에 가장 나은 게 스키니진이었다.
몸에 착 붙으니까 더 날씬하고 예뻐보여서...
그런데 대학로에 가보니 맨 그런 애들 뿐이어서 우리애가 튀는게 아니라
그저 보통일 뿐이란걸 알게 되어서 더이상의 부딪침은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작은 엄마의 하의실종 미니스커트를 본 이후에는
"엄마, 내 치마가 결코 짧은건 아니란걸 이제 알겠지?"
"그래.네치마는 아주 롱스커트더라~"하면 딸도 호호 웃는다.
오늘도 딸이 입은 스커트를 보니 엉덩이에서 한 뼘이나 내려와 있다.
아주 긴 미니스커트다.ㅋㅋ다리도 훨씬 날씬하고 나이도 훨씬 젊은데..
스모키화장은 딸의 친구와 우연히 백화점에서 마주친 이후 고쳐졌다.
그 친구가 센스있게 자신을 잘 가꾸기로 소문났고 백화점 의류코너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세련된 친군데 그 애가 나와 함께 서있는
울딸을 보자마자 "허억...너 아주 아이라인을 떡칠을 했구나.
살짝 자연스럽게 해야지, 그게 뭐야? 초보티가 팍팍 난다" 이래서 고치게 된 것이다.
그 친구가 어찌나 고맙던지.
애들은 부모말보다 친구말을 더 잘 듣는데 그 친구의 반응을 보고나서야
엄마의 잔소리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으니...
/
내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따로 있다.
미래의 며느리에 관한 부분이다.
내딸이 자기주장도 너무 강하고 살림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자기 몸이나 씻고 쏙 빠져나가지 1년이 가도 제방 청소조차 하지 않으니
며느리도 뉘집 귀한 딸이라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짐작을 하고
남다른 기대 같은 걸 하지 않는 것
나는 아들에게도 늘 말한다.
"국적불문 지혜롭고 현명한 여자를 골라와라~똑똑한 며느리 들어오면
엄마는 앉혀놓고 밥을 해바칠 용의가 있다"
며느리손에 밥을 얻어먹고 대접을 받겠단 생각을 안 하는 것
그게 뭐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또래들도 대부분 "너 그 말이 씨 되면 어쩌려구 그래?너 그거 농담이지?" 하며
기겁을 한다.
특히나 국적불문이란 데서는 신기한 물건 보듯 하는 친구도 있다.ㅎ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문화가정이 늘어가고 있는데도...
하지만 진심이다.
남편도 이 부분은 선입견이 없다.
사람이 중요하지,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 오히려 서로 적응해가는 과정이 더 재밌지.
이렇게 생각한다.
오히려 아들은 한국여자가 좋단다.
다른 나라 애들은 너무 문화차이가 나서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마지막에 내가 힘주어 하는 말은,
"아들의 눈을 믿는다. 아들이 좋다고 하는 여자는 무조건 나도 좋다.
어느 부분이 부족해도 좋고 넘쳐도 좋고. 네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니
네가 좋으면 나도 다 좋다"
나중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선
객관적으로야 어떻든 아들 눈에 가장 좋아보이는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게
내 바램이다.
그리고 딸보다 아들에게 살림을 더 가르치며 키웠다.
한국 정서상 딸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살림을 시작하게 되는 분위기지만
아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지 않으면 나중엔 못하고
그래서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게 된다고 믿기에.
빨래 청소 설겆이 음식...모두 딸보다 아들이 훨씬 낫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해서 며느리와 함께 다니러 온다면
나는 두 내외를 함께 주방에 들여보낼거다.
그리고 또 하나 남편이 먼저 제안한 것이 있는데
명절에 돌아가면서 한 번은 우리집으로, 한번은 처가로 보낸다는 것.
말하자면 설이나 추석에 아예 우리집이 아닌 처가(친정)로 보낸다는 것.
딸가진 집에서도 딸이 보고 싶어서 기다릴텐데 아들 가진 집에서만 독차지하면
안된다는 생각때문이다.
남편은 요즘 신조어인 '딸바보'에 속하는 사람이라 자기 딸을 생각해서
저런 페미니스트가 된거다.
아들보다도 딸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고 여자가 더 큰 인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나도 거의 대부분 찬성한다.
이만하면 나도 그렇게 꽉 막힌 중년은 아닌 것같은데
그래도 이건 나만의 착각일까?ㅎ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가장 보수적인 부분은 옷차림인 것같다.
사람은 나이에 걸맞는 차림을 해야 더 우아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체형을 어느 정도 커버하는 옷차림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딸과는 어느 정도 간신히 타협점을 찾았는데 이번엔 또 아들이 문제다.
전역후에 자꾸 살이 찌는데도 요즘 유행을 따라 가느라 상의는 짧고 아래위가 다
몸에 붙는 옷차림을 해서 옆에서 볼 때 S라인이니 마치 터질듯이 더 살이 쪄보여서...
날씬할 때에야 그런 차림이 쌔끈하게 잘 어울렸지만 지금은 여엉 아닌 것같은데도
엄마가 뭘 알겠느냐고 한다.
조금만 헐렁하게 입어서 나온 배와 엉덩이를 카바해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인데
그 유행이란 게 뭔지 ㅉㅉ
다이엇트 하라고 잔소리 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