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밖에서 나름 긴장하고 있다가 들어와선지
엎드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저녁 6시쯤.
갑자기 배가 고프다.
밥솥을 열어보니 세 명이 먹기에는 약간 부족할 듯싶어 쌀을 씻어 새로 앉혔다.
밥솥에 남아있던 밥은 김치야채밥인데 그걸 보니 갑자기 허기가 져서
좀 비벼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밥을 조금 펐다.
먹으려고 하다가 또 남편이 혼자 말도 없이 먼저 먹었다고 뭐라고 할 것같아서
저쪽 방에 있던 남편에게 소리쳤다.
'나 배고파서 먼저 밥 먹는다아~'
컴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뛰어나오며 난리를 친다.
왜 혼자 밥을 먹냐고,다같이 먹어야지.
가족이 왜 뿔뿔이 각자 다른 시간에 밥을 먹냐고,
일요일 오후라도 한 자리에 앉아서 먹어얄 거 아니냐고,
그렇게 가르치니까 애들도 다 그게 당연한 줄 알잖냐고,
1년에 몇 번이나 온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겠냐고,
밥상머리 교육도 모르냐고?
배가 고플 것같으면 진작에 미리 준비해서 이 시간에 같이
먹으면 되지. 그렇게 아무렇게나 사냐고?
그러게 영화는 왜 보냐고? 밥이나 하지.
우띠...배고파서 밥 한 숟갈 먹으려다 봉변 당했다.
듣고 보면 아주 그른 소리도 아니어서 할 말은 딱히 없지만
부아가 나서 숟갈 꽂았던 밥을 개밥 주머니에다 확~ 쏟았다.
나 화났으니 봐라 이거지.
아니 근데 영화는 왜 걸고 넘어지는거야?나 영화 보는데 보태준거 있나?
내가 생전 놀아달라고 보채길 하나? 어디 가자고 바가지를 긁길 하나?
나혼자 조용히 잘 노는데 왜 그걸 걸고 넘어져?
갑자기 짜증이 몰려온다.
사실 조용히 각자 따로 편하게 살고 싶지 마주 보면서 밥먹고 싶지도 않은데...
배고파서 밥 한 숟갈 먼저 먹는게 그렇게 잘못인가?
그래서 오기를 부리기로 했다.
그래?그렇게 규칙을 잘 지켜?그럼 본인부터 지켜보시지?
남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키라는 규칙만 많이 만들지 말고.
내가 밥 할테니까 설겆이 햇! 그렇게 규칙 좋아하는 사람이
나 힘든건 왜 몰라? 나가나 들어오나 나만 부려먹구.
자기 먹은 설겆이 좀 하면 어디가 덧나?
잘 차려 먹이면 자기 먹은 그릇 한 개도 안 씻고 쏙 빠져나가는
뒷모습 볼 때 얼마나 얄미운 줄 알아?
가족 생각은 혼자 다 하는 척 하면서 왜 나만 부려먹어?
밥은 없으면 미리 좀 앉히면 어디가 덧나?
내가 잠들어서 몰랐지 일부러 안했어?
배고파도 밥도 못 먹게 난리야~
이제부터 집안이 더러우면 보는 사람이 먼저 청소기 들고 걸레질도 햇!
딸, 너도 네 그릇 니가 씻어. 청소도 하고.
더러운 줄 모르면 그게 사람이야? 돼지지.
가만 있던 딸에게까지 불똥을 튀겼다.
속이 좀 시원하다.ㅎ
나중에 궁시렁 대면서 설겆이 하는 남편을 보니 아주 고소하다.
이번이 며칠 전에 이어 평생 딱 두번째 하는 설겆이다.
손에 금띠를 둘렀는지 절대 물을 안묻히려고 한다.
내가 멀리 나갔다 오면 며칠 먹은 설겆이를 그대로 담가놔서 설겆이통을
산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
그러면서 가만히 있는 나를 왜 건드려?
근데 밥 앉히다가 배고파서 주방장이 밥 좀 먼저 먹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